“압수수색은 바람처럼 빠르게, 내사는 숲처럼 조용하게, 체포는 불처럼 쳐들어가서, 부당한 공격에는 산처럼 꿈쩍 않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지난 28일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 연사로 나선 봉욱 변호사가 한 말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풍림화산(風林火山) 전법을 활용한 비유인데, 봉 변호사의 이 같은 재치로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 풍림화산(風林火山) 전법
기질여풍 (其疾如風, 바람처럼 빠르게)
기서여림 (其徐如林, 숲처럼 조용하며)
침략여화 (侵掠如火, 불처럼 쳐들어가고)
부동여산 (不動如山, 산처럼 꿈쩍않는)
2017년 5월부터 2년여 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낸 봉 변호사는 지난 9월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는 검사 시절 공안 파트와 형사정책 기획뿐 아니라 현대차 정몽구 회장, 한화 김승현 회장, 태광 이호진 회장 등 굵직한 재벌 대기업 수사들을 맡기도 했다.
이날 서강대 법전원 학생들은 시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 행사를 주관한 서강대 리걸클리닉 센터 홍대식 교수는 “(봉 변호사가) 검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실 때는 특강 요청을 하기가 내심 어려웠는데, 이제 검찰을 나와 ‘자유의 몸’이 되셔서 얼른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며 “선배 법조인이 예비법조인들을 위해 준비한 이 특강 한 시간이, 여러분이 책만 보며 보낸 한 시간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법률가의 핵심 역량은?
봉 변호사가 법률가의 핵심 역량으로 강조한 점은 6가지로, ‘법리력, 팩트력, 설득력, 관계력, 마음력, 체력’이다. 그는 “법률가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이 중에서 법리력일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실제 법리 싸움이 문제되는 사건은 열 건 중 한 건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초임 시절 그의 선배 검사가 “검사가 된 지금부터는 모든 형법 교과서를 버리고, 뒷골목 이야기들이 실린 ‘선데이 서울’을 정기구독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는 일화는 이 점을 잘 나타내준다.
봉 변호사는 “특히 검사에게 중요한 힘은 팩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법리를 아무리 꿰고 있어도 팩트를 바로 보지 못하고 증거로써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관계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면서 “검사 능력의 50%는 함께 일하는 수사관과 실무관들 역량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들과 관계를 잘 형성하여 협업을 잘 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검사들이 조직에서 겸손, 배려, 경청 세 가지 덕목을 중시하도록 자주 배운다고 했다. 이러한 덕목은 피의자와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체포 현장에 피의자의 노모나 자녀가 함께 있으면 그 자리에서는 바로 수갑을 채우지 않고 기다리거나, 다른 말로 둘러댄 후 안 보이는 곳에서 체포를 하여 가족을 배려하는 식이다. 봉 변호사는 한 피의자가 훗날 자백을 하며 “체포할 때 노모가 보는 앞에서 하지 않고 배려해 줘서 고맙다”고 고백한 사연도 전했다.
■ “검찰은 본래 국민에 봉사하는 기관”
봉 변호사는 ‘검찰’의 영문명이 ‘Prosecution Service’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검사가 스스로를 권력 기관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국민에 봉사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해야 정확한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다.
“국민은 특히 죄와 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검찰과 사법을 불신하게 된다”면서 관련 화두로 아동학대 사건, 화이트칼라 범죄, 사형제, 소년 범죄 등을 꼽았다. 그가 울산지검장이던 때 터진 ‘울산계모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의 뜻에 따라 처음으로 아동학대 사건에 살인죄 구형을 한 경우”라고 회상했다.
봉 변호사는 법률가가 ‘불신’을 받을까 두려워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특정한 사람을 만나는 등의 행동을 함에 앞서 ‘뉴스페이퍼 스탠다드’를 가지면 좋다고 조언했다. "내가 하려는 행동이 뉴스에 보도된다면 나는 떳떳이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특강에는 검찰 진로를 생각하며 봉 변호사에게 검찰 면접 팁 등을 질문한 학생들도 있었다. 봉 변호사는 면접 팁과 아울러 “검찰 내에서 역할 중요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60년대~90년대 초반까지는 공안부, 90년대 중반~2010년대까지는 특수부가 핵심 부서였다면 앞으로는 국민 삶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형사부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봉 변호사는 나아가 “10년 전만 해도 가장 중요한 단서가 계좌였다면 요즘은 핸드폰이 제일 중요한 단서”라면서 “앞으로는 개인이 소유하는 AI로봇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뿐 아니라 법조계 전체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봉 변호사는 평소 4차 산업 혁명 분야에 관심이 높아 학회 활동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