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공법학회와 법제처, 헌법재판연구원,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가 지난 13일 공동으로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공법적 과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는 종래 지방자치 관련 학문적 성과와 사법부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회고하고, 그러한 성찰에 기초해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법이론과 법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날 환영사를 전한 박종보 헌법재판연구원장은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이념을 작은 단위에서 실현하고 지역별로 혁신적인 정치실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정치질서가 형성되는 계기를 제공하는 기제”라면서 “지방자치가 현대국가에서 수행하는 이 같은 중요성에 비추어 지방자치에 대한 공법학의 각별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중앙과 지방 간 관계에 있어서는 중앙집권현상이 여전하고, 진정한 지방분권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현실에서 향후 통일 국면에 대비한 지방분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날 기조발제는 한국공법학회 고문이자 한국지방자치법학회 명예회장인 홍정선 전 연세대 교수가 했다. 홍 교수는 한국 공법학계의 지방자치법 연구 70년을 회고하는 한편 당면한 과제를 제시하면서 “지방자치의 순기능은 증대시키고 역기능을 줄여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법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지방자치법의 발전을 이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공법학자들이 지방자치법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게재한 역사는 30년에 이르며, 논문 수량은 900편에 달한다. 그는 “지방자치의 중단기와 지방자치 발아기에서의 지방행정·지방자치법뿐 아니라 구한말과 강점기의 지방행정·지방자치법에 관한 연구가 더 이뤄져야 연구의 완결성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통일시대의 지방자치·지방자치법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기에 남과 북이 각각 지역 특성을 살리며서 주민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적합한 조직형태를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종래 지방자치 관련 학문적 성과와 사법부 판단,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제1주제 ‘지방자치의 패러다임 재설정- 지방자치 관련 기본명제의 재구성’에 대해서는 동국대 법과대학의 최봉석 교수가 발표했다. 최 교수는 지방자치에 관한 현재의 명제를 총 8가지로 정리하고, 이러한 명제들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지방자치의 본질을 ‘제도적 보장’으로 보는 시각을 ‘제도보장’으로 정정하여 완전하고 충분한 헌법적 보장을 지향할 것 △지방자치의 주체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으로,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을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지방자치의 내용을 ‘주민의 권익(주민주권) 보장’으로 수정할 것 △주민에 의해 구성된 지역결사체로서 민주적 정당성 확보의 표장으로 ‘지방정부’라는 명칭을 인정할 것 등이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통폐합은 정당성을 갖춘 적법절차에 따라 인구·경제·정보화 등 여러 정책적 목적에서 가능함 △지방자치에 관한 중요 내용이 꼭 법률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국가-지방 간 협정(협약, 계약) 등 수평적 관계의 법률행위를 통해서도 가능함 △침익적 조례에 법률유보를 요구함으로 인해 위축된 조례제정권 보장을 확대·현실화할 필요성 등을 말하기도 했다.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이 지방분권의 필수적 요건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분권의 결과일 수 있으나 분권의 요건이나 전제는 아니”라고 반박했으며, 기관위임사무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법령이 아닌 협정·협약에 의해 기관위임사무 관련 법률관계와 내용을 정해 기관위임사무의 형식 및 법리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주제 ‘조례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찰- 국가의 역할과 과제를 중심으로’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조성규 교수가 발표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본격적 실시가 근 30년이 되어가지만 지방자치나 조례제정권 확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는 조례의 준법률성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인식 및 이에 대한 법제도화 미비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정법제에 의존하는 지방자치는 지방자치의 헌법적 보장이라는 규범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동시에 ‘법률에 의한 지방자치’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는 결국 지방자치를 규범의 대상이 아닌 정책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의 지방자치는 헌법적 보장의 대상이면서도 제도적 보장의 본질상 법률유보 하에서 보장되는 결과 그 구체화를 법률에 매우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지방자치의 성패는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 법률을 선언하고 해석하는 사법부의 인식과 태도에 크게 의존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치입법권의 실질적 보장 및 확대를 위해서는 자치입법권에 대한 이론적 논의보다는 지방자치를 둘러싼 입법, 행정, 사법 등 국가권력은 물론 국민의 의식을 포함하여 지방자치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제3주제 ‘지방자치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례에 대한 분석’은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오동석 교수가 발표했다. 오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지방자치관련 중요 결정례를 분석했는데, ▲헌재의 ‘제도적 보장론’적 지방자치 이해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에 대한 ‘과소보호금지 원칙’과 지방자치(및 지방자치단체의 기본권보장의무) ▲지방자치의 보장과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보장의 구별 ▲지방자치권과 국가 감독권 간 관계에 대한 헌재 판단 등이다.
오 교수는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헌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헌재는 기대되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헌재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그는 “헌재가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적극적으로 규명함으로써 그것이 구현될 수 있도록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 한편 “중앙집권에 따른 폐해를 최소한으로라도 견제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심사척도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한국의 헌정사적 배경에서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의사에 대한 확인과 그 구현방법을 고려하는 심사척도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지방자치단체 내부의 헌법관계를 심사하는 척도의 수립도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