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지난 12월 20일, ‘개정 형사소송법의 평가’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논의는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률안(이하 ‘공수처 법안’)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전제로 하여, 세부 조항에 대한 보완 의견과 후속 입법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집중됐다.
이찬희 변협회장은 “이번 법 개정은 우리 형사사법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될 수 있으려면 학계의 깊이 있는 연구와 실무가들의 적극적 의견 교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원 (전)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우리 형사사법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온 2007년 형소법 개정 당시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개정 내용에 대한 논의가 오고간 끝에 (개정이) 이루어졌다”면서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오늘 학술회가 더 나은 제도를 구상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는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1주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검토’에 대하여, 홍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2주제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안에 대한 검토- 조사자증언은 과연 최우량증거인가?’를 발제했다. 제1주제 토론자로는 김종구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허윤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이 참여했고 제2주제 토론자로는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인석 대전고등법원 판사, 이순옥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필우 대한변협 제2기획이사, 김주미 한국법학원 연구원이 참여했다.
■ 국회 문턱 넘은 공수처법 최종안, 수정된 부분은...
당초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공수처 법안은 두 개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안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발의한 안으로, 이 중 백혜련의원안이 상정될 것으로 예측되다가 최종 불발됐다. 이에 12월 24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대표발의로 수정안을 제출하였고, 이어 28일 권은희 의원이 또다시 수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최종적으로 지난 30일 국회를 통과한 것은 윤소하의원안이다.
윤소하의원 외 155인은 수정안을 마련한 이유에 대하여 “수사처의 독립성과 대통령 관여금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후보추천위원회의 의결 요건, 수사처 검사 및 수사관의 자격요건,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 자율적 규칙제정권 등과 관련하여 원안의 일부 수정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수사처 검사의 자격을 ‘변호사 자격이 있고 10년 이상 재판, 수사, 조사업무의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 중’으로 정하던 것을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한 자로서 재판, 수사 또는 수사처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경했다.
인사위원회 위원 구성도 바꿨다. 원안(제9조3항 3호~5호)은 처장 및 차장 이외에 ‘법무부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국회의장과 각 교섭단체대표의원이 협의하여 추천한 3명’을 위원으로 정했으나, 수정안은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처장이 위촉한 사람 1명(3항)’,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추천한 2명(4항)’, ‘앞의 교섭단체 외 교섭단체가 추천한 2명(5항)’으로 수정했다.
수사처 수사관 자격 및 구성원 수도 변경됐다. 원안(제10조1항)에서 수사관 자격을 ‘5년 이상 변호사 실무경력이 있거나 조사, 수사, 재판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하던 사람 중 처장이 임명한 사람’으로 정하던 것을 수정안은 ‘변호사 자격을 보유한 사람(1호)’, ‘7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조사, 수사업무에 종사하였던 사람(2호)’,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3호)’으로 바꿨다. 인원도 원안 30인에서 40인으로 늘렸다.
수사처와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를 정한 제24조의 변경도 크다. 원안의 규정은 제1항 ‘수사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는 처장이 수사의 진행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 제2항 ‘처장은 피의자, 피해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추어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로 정했는데, 수정안에서는 기존의 제2항을 제3항으로 이동하고 새로이 제2항과 제4항을 추가했다.
신설된 내용은 각각 ‘②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하여야 한다’, ‘④ 제2항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등 사실의 통보를 받은 처장은 통보를 한 다른 수사기관의 장에게 수사처 규칙으로 정한 기간과 방법으로 수사개시 여부를 회신하여야 한다’이다.
■ “법 시행 6개월 남은 시점, 후속 입법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제1주제를 발표한 하태영 교수는 “법 시행이 6개월 남은 이 시점에 독소조항과 문제조항들을 정비하고 법률문체와 법률문장도 다듬어야 한다”면서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의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을 지적했다. 지금의 수사처 조직으로 감당하기에는 대상 범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수사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대상자에 포함시킨 것은 과거정권 불법청산용이자 공포용, 보복형으로 수사처가 운용될 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고 하는 한편 “퇴임 후 민간인이 된 사람과 그 가족까지 수사처에서 수사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수사처에서 수사와 공소를 모두 담당하도록 한 것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규모가 작은 수사처가 모두 감당하지 못할 때엔 결국 사건을 검찰에 이관할 수밖에 없는데, 검찰이 수사처의 하부조직이 아닌 이상 어려움이 생길 거라는 견해다. 하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철학 ‘더 깊이 더 신중하게’를 인용하며,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면 작은 조직을 신중하게 만들고, 차분히 시행하면서 운영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사위원회 위원에 수사처장과 차장을 모두 포함시켜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원안이 법무부와 법원의 인사는 위원에 포함시키면서도 변협 인사를 포함시키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인사위원회 구성이 편향되면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인사위원회는) 중립성이 보장되도록 구성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탄핵을 받아 파면된 사람이라도 5년이 지나면 임용이 가능하도록 한 규정은 그 자격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의 경우에는 최소 5년이 지나야 한다는 견해다.
하 교수가 가장 문제 있는 규정이라고 본 것은 제16조 공직임용 제한 규정이다. 수사처장과 차장이 2년 뒤 헌법재판관, 국무총리, 검찰총장, 중앙행정기관, 대통령비서실 등의 정무직 공무원 및 검사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한 규정인데, 이는 직무에서 정치 중립을 지킬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최소한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에는 다른 공직 취임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 제22조가 정치 중립과 직무 독립을 정하면서도 이를 위반한 경우에 대한 벌칙규정을 두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정치 중립과 직무 독립을 해친 것은 범죄 불법이 크기 때문에, 10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된다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게 하 교수의 견해다.
제24조 ‘다른 기관과의 관계’ 규정에 대해서는 “수사처가 검찰청, 경찰청 또는 그 밖의 수사기관보다 우위에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며, 강력한 중심역할을 담당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조항은 수사처장이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 업무분장권을 갖도록 하고, 수사처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위임할 권한도 갖도록 한 것”이라며 “수사기관 간 관계를 명백히 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규정은 항상 기관 간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고 했다.
수사처장이 수사처 소속이 아닌 서울지방검찰청 사건처리 검사에게 사건 처리 결과를 통보받도록 한 규정(제26조) 역시 “수사처를 상급기관으로 규정함으로써 검찰권을 통제하도록 한 조항”이라는 평가다.
하 교수는 “헌법에 근거를 두지 않은 공수처는 조직과 구성원 임명, 임기, 탄핵, 국회 동의절차 중 어느 것도 헌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면서 “특별검사제도 상설기구로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영상녹화 없는 조사자증언, 형사소송법 핵심 가치 실현할 수 있을까
검경 수사권 조정안(채이배의원안)이 지난 1월 9일 본회의에 상정됐다.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규정된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이하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사법경찰관 작성 피신조서의 증거능력과 동일하게 인정하도록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제312조는 피신조서를 작성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증거능력에 차등을 두는바, 검사가 작성한 피신조서는 실질적 진정성립과 특신상태를 기준으로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반면, 사법경찰관의 피신조서는 내용인정까지 이뤄져야 증거능력을 부여한다.
제2주제를 발표한 홍진영 교수는 “이 안이 수정 없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수사기관에서 한 피의자 진술은 조사자증언을 통하여서만 법정에 현출될 수 있게 되고, 영상녹화물은 (제312조 제2항이 삭제됨에 따라) 피의자신문조서의 실질적 진정성립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즉 “영상녹화가 의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조사자증언이 과연 공판중심주의와 피고인 방어권 보장이라는 형사소송법의 핵심 가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증거방법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조사자증언의 오·남용이 피의자신문 절차의 불투명한 운용과 결합하여 수많은 오판 사례를 낳은 것이 밝혀진 바 있다. 미국은 이러한 조사자증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그 대안으로서 피의자신문 과정을 영상녹화하고, 그 영상녹화물을 피의자 진술에 관한 증거로서 법정에 현출시키고자 하는 흐름이 ‘형사사법 절차의 개혁’이라는 기치 하에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홍 교수는 “수사기관에 대한 피의자의 진술이 증거로 활용될 필요성 자체에 대하여는 긍정하되, 다만 공판중심주의의 실천적 의미에 부합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피고인에게 법정에서 충분한 변론의 기회를 줄 것 △수사기관에서 획득한 피의자 진술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대하여 법정에서 충분한 공방이 이루어지고, 법정에서 피고인의 진술과 비교·검토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법관과 배심원이 심증을 형성할 것 △사실인정의 주체가 위와 같은 공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에 현출된 피의자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확증편향을 형성하지 않도록 할 것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영상녹화에 대한 전향적 인식 변화 필요하다”
홍 교수는 “개정법 시행 이후 피의자신문에 대한 적법성 통제와 감시 역할을 해야 할 자백배제법칙이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등의 증거법 원칙들이 제 몫을 할 수 있으려면, 모든 피의자신문에 대한 영상녹화가 의무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의무를 영상녹화물 녹취서 작성의무로 갈음할 것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에 대해서는 “조사자증언과 영상녹화물을 통한 증거조사에 따라 재판이 어느 정도로 장기화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실인정의 주체에게 편견과 예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영상녹화물을 법정에 현출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여 그 구체적인 내용을 대법원규칙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검찰에 대해서는 “수사검사가 조사자로서 법정에서 증언해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므로, 개별 사건의 처리에 있어 공판검사와 수사검사를 전면적으로 분리하고 현재처럼 수사검사가 소위 ‘직관’ 사건으로 직접 공판에 관여하는 관행을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피의자신문조서와 영상녹화물을 증거의 세계에서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근본적으로 고민을 다시 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경찰과 검찰 사이에 차등화 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요건에 맞춰 상향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칫 조서재판으로의 회귀를 낳을 수 있으므로 영상녹화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영상녹화물의 객관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위험하다”는 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유형의 증거에 대하여도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논변”이라며 반박했다.
나아가 “(형소법이) 조사자증언과 피의자신문조서에 본증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여 증거능력을 일정한 요건 하에서만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영상녹화물에도 일단 본증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합리적인 제도 설계를 통해 편견이 유발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는 방식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처럼) 영상녹화물에 본증으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여 수사기관이 모든 사건에서 영상녹화물을 정확하게 보존해야 할 유인과 의무를 갖도록 하면, 더욱 공판중심주의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