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체인법학회(회장 이정엽)가 지난 2월 21일, ‘공정하고 혁신적인 암호자산 세제를 디자인하다’라는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 논의되는 가상자산 혹은 암호자산에 대한 과세문제를 짚어보고, 특히 국내에서 최초로 암호자산 과세 문제를 논의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암호자산 거래소 ‘빗썸(bithumb)’에 대한 800억대 세금 부과 사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정엽 회장은 “가상통화 혹은 암호자산 생태계의 성장은 인류의 부를 획기적으로 성장시켜 줄 것이고 우리 사회를 네트워크정보사회로 진화시켜 줄 것”이라면서 “과세제도를 어떻게 새롭게 디자인하여 암호자산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인지는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나아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국적이 다른 구성원들이 많고 중앙이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과세 제도로는 적절한 해법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새로운 과세제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논의는 박세환 한국회계기준원 상임위원의 ‘암호화폐 회계기준 개관’으로 시작하여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의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과세의 법률적 쟁점’,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한국조세정책학회장)의 ‘암호자산 과세의 조세법적 제문제’ 발표가 있은 후 김용민 한국블록체인협회 세제위원장, 서연희 법무법인 지유 변호사, 최호창 한빗코 준법감시인의 토론이 이어졌다.
■ “투자목적 무형자산을 다루는 별도의 국제회계기준서 제정될 필요 있다”
박세환 상임위원은 ‘가상통화를 보유한 법인의 회계처리‘에 대하여 “국제회계기준(IAS) 8.10에 따르면 경영진은 그 판단에 의해 회계정책을 개발하여 회계정보를 작성할 수 있는데, 해당 가상통화 거래가 회계정책을 개발할 사항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회계처리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상임위원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는 2018년 7월 가상통화 회계처리에 대한 최초 논의를 시작하여 지난해 6월 ‘Final Agenda Decision’을 발표했다. 해석위원회는 가상통화가 금융자산인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인지, 무형자산인지, 재고자산인지를 검토했는데 “가상통화 보유목적이 통상적인 영업과정에서 판매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재고자산으로 분류하며, 그렇지 않다면 무형자산으로 분류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기업이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할 경우, 가상통화는 무형자산 정의 규정 중 ‘보유 목적; 재화의 생산이나 용역 제공, 타인에 대한 임대·관리에 사용할 목적으로 보유’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무형자산이 아니게 된다. 박 상임위원은 “일반기업회계기준 적용 시에는 가상통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회계기준이 없으므로 관련 회계규정과 개념체계 등을 고려해 회계정책을 개발하여 회계정보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통화 회계처리 전반에 대한 제안으로 “단기적으로는 투자목적 무형자산이 적용범위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IAS 38의 무형자산 정의를 수정하고, 장기적으로는 투자목적 무형자산을 다루는 별도의 IFRS 기준서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한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SAB)는 오는 9월 정보요청서(RFI)를 발표하여 공식의견 수집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빗썸 거래소에 대한 국세청의 800억 과세, 법률적 쟁점은?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에 803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빗썸을 통해 가상통화를 거래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로 출금해 간 금액을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으로 보고 원천징수의무자인 빗썸에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한서희 변호사는 빗썸 과세 소송의 법률적 쟁점을 깊이 있게 검토했다.
한 변호사는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 형태의 가상통화라 하더라도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므로 소득세법 제119조의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는 국세청의 해석에 대하여, “가상통화는 실체가 없는 무체물에 해당하여 ‘재물’이 아니므로 몰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수원지방법원 2017고단2884 판결을 들어 반박했다. 열거주의를 취하는 소득세법상 부동산 외의 국내자산이란 부동산에 준하는 것으로서 관리가능한 유체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세청의 과세는 “가상통화 거래로 인한 기타소득 금액 계산이 불가능하여 빗썸 거래소가 출금액 전액을 기타소득세 원천징수 대상금액으로 보아 원천징수했어야 했다”고 해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가상통화는 최초에 유상취득 하는 것이어서 매도가액이 유상취득가액보다 높을 경우에만 ‘차익’ 내지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것임에도 이와 관계없이 비거주자의 ‘원화예수금 출금합계액 전액’을 기타소득으로 보아 과세한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 변호사는 빗썸의 원천징수의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소득세법에 따른 원천징수의무자는 비거주자에게 ‘국내원천소득을 지급하는 자’ 또는 ‘그 지급자의 대리인 또는 수임인’이어야 하는데 빗썸은 이에 해당하지 않고, 자본시장법상 투자중개업자에 관한 규정도 준용 또는 유추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조세조약상 가상통화 거래이익은 국내 과세가 가능한 과세소득에 해당하지 않으며, 기타소득으로 보더라도 비거주지국인 우리나라는 과세권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 “증권거래세 운영 경험 살려 암호자산 거래 시 과세하는 ‘거래세’로 과세하자” 주장도
오문성 교수는 선결문제로 ‘가상화폐’, ‘암호화폐’ 등으로 일컫는 용어를 ‘암호자산’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암호화 과정을 거친, 화폐의 기능보다는 ‘자산’에 가까운 성질을 갖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현재의 상태로는 가치변동성에 치중하여 양도차손익을 보게 되는 주식과 비슷하면서도 엄밀히는 성격이 다른 ‘신종금융자산’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암호자산 양도차익의 과세문제에 대하여 “법인의 경우 ‘순자산증가설’에 따라 암호자산 양도차익으로 인해 순자산이 증가했다면 법인세법상 아무 문제없이 과세할 수 있다”고 하는 한편 “소득세법이 ‘소득원천설’, 즉 ‘열거주의’를 취함에 따라 개인사업자와 사업자 아닌 개인의 경우에는 법문에 열거되어 있지 않아 과세가 어렵다”고 했다.
빗썸 사례에 대한 해석도 내놓았다. 오 교수는 “빗썸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는 암호자산이 자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 선 것이고, 빗썸을 투자중개업자로 보면서 비거주자의 국내원천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의무자로 본 것”이라면서 “자산에 대한 명칭조차 세법에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종자산인 암호자산을 국세청의 해석처럼 ‘부동산 이외의 자산’으로 간단하게 포섭할 것은 아니고, 이번 과세가 거주자보다 비거주자에게 먼저 행해졌다는 점에서 OECD 모델협약 제24조의 ‘내외국인차별금지’에 따른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그는 “암호자산의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것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과세대원칙에는 부합하지만, 양도가액과 취득가액을 모두 알기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렵고 양도차손의 세무상 처리방법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증권거래세’를 운영해 본 경험을 살려 암호자산의 거래 시에 과세하는 거래세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 “과세 인프라 갖춰지기 전까지 과세를 미루는 것도 방법”
토론자인 김용민 세제위원장은 주요국가의 가상화폐 과세현황에 대하여 “스위스를 제외한 주요국가는 가상화폐를 경제적 가치 있는 자산으로 파악하여 가상화폐 매매차익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고 소개했다. 열거주의를 취하는 우리와 달리, 포괄주의에 따라 소득세를 부과하는 일본의 경우 가상화폐 수익을 기타소득(잡소득)으로 분류해 최대 55%의 세율을 부과하는데, 탈세가 많이 이뤄져 과세당국의 고민이 깊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가상화폐 과세방안으로 ‘양도소득세, 기타소득세, 거래세’ 과세의 방안 세 가지를 검토하며 “과세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 양도소득세 도입은 무리로 보이고, 일시적·우발적 소득에 부과되는 기타소득세로 하는 것은 조세원리상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양도소득으로 과세하는 글로벌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현행 증권거래세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 낮은 수준의 거래세를 도입한 뒤, 향후 과세인프라가 정비된 시점에 양도소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서연희 변호사는 “지금보다 더욱 확대될 가상화폐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근본적인 세제개혁과 완전히 새로운 과세제도 창안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면서 “이번 빗썸 사례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상화폐를 법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서 변호사는 “가상화폐가 현실 통화와 교환이 가능해지기 이전, 즉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만 거래되는 상황에서는 양도소득세로 과세하는 것에 무리가 따를 것”이라면서 “다만 세제를 디자인함에 있어 과세편의주의나 규제 측면에서의 접근보다 실용적 과세 관점과 산업 육성을 도모하려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 중 유일한 시장 종사자인 최호창 준법감시인은 “빗썸 사례는 그동안 제도권 밖에 있어 무분별한 거래소 난립과 많은 부작용을 낳았던 암호자산 산업이 정식으로 제도권에 편입되어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꾀하고, 금융권에 준하는 여러 제도적 보완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암호자산 시장의 다양하고 새로운 특성을 제대로 반영할 세제 디자인을 위해서는 과세 인프라가 갖춰지기 이전까지 과세를 미루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신중하고 세심하게 진행하되 산업의 보호와 육성의 관점에서 장기적 로드맵을 갖고 ‘최소한 적용’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