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공지능법학회(회장 고학수 교수)가 지난 2일,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개인정보 거버넌스 실현 방안’을 주제로 웨비나(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웨비나는 발표자와 토론자 등 총 8명을 포함한 행사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진행을 하고, 미리 참가신청을 한 참여자들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실시간으로 질문이나 진행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남길 수 있었다.
고학수 회장은 “지난 1월 개정되어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하여는 다양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사회적 관심은 주로 데이터의 활용가능성에 집중됐지만, 이번 웨비나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강력한 조사 및 법집행 권한을 쥐게 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점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세미나 취지를 전했다.
이날 발표는 임용 서울대 법전원 교수가, 토론자로는 강신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정교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홍대식 서강대 법전원 교수가 참여했다.
■ 새로운 개인정보 거버넌스 시스템의 개막
임용 교수는 “데이터3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가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로 격상됐다”고 평가했다. 그간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개보위 등 세 곳에 산재되어 있던 데이터의 이용과 보호에 관한 감독·집행 권한이 개보위로 통합되면서, 새로운 개인정보 거버넌스 시스템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번 데이터3법 개정의 배경에는 안전한 데이터 이용을 위한 사회적 규범 정립이 시급하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령과 감독기능이 분산되어 있는 상황도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임용 교수에 따르면 개정 전 개보위에는 심의·의결권만 있을 뿐 대부분의 집행·감독 권한은 타 기관이 가졌다. 이처럼 다수의 감독기구가 존재하는 거버넌스 체제는, 효과적인 정책 집행이나 전문성 확보에는 오히려 장애가 됐다는 것이 임 교수의 설명이다.
개정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된 개보위는, 직원인사권과 예산안편성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면서 위원회의 중요 사무에 대하여는 국무총리의 지휘감독권을 배제할 수 있는 등 독립성 확보를 보장받게 됐다. 나아가 기존의 심의·의결 권한에 더하여 집행·감독 권한까지 보유하게 되면서 한층 권한이 강화됐다.
위원회는 장관급의 위원장 및 차관급 부위원장을 상임위원으로 하고, 위원장이 제청하는 2인의 비상임위원과 교섭단체가 추천하는 5인의 비상임위원을 포함한 총 9인으로 구성된다. 개보위의 전문성·독립성·중립성을 위해 위원의 신분보장, 겸직금지 및 결격사유 규정을 도입하고 위원에 대한 제척·기피·회피 규정을 뒀다.
임용 교수는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에 대한 제언으로 “개보위가 프라이버시 정책 선도를 위한 주창(advocacy)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려면 프라이버시의 개념과 내용, 한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 개정을 통해 개보위로의 통합과 일원화가 일정 부분은 이뤄졌지만, 여전히 국가인권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법원, 검찰, 경찰, 시민단체 등 다양한 관련기관과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개보위가 집행기관으로서는 신생 기관인 만큼, 전문성·독립성·적법절차의 측면에서 신뢰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호 및 집행 대상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개인정보보호의 컨트롤 타워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초기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면서, 지속적인 내부검토와 모니터링을 통해 외부 평가가 향후 개보위의 위상과 집행 효과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도 말했다.
■ ‘개인정보 이슈 확실히 책임지는 기관’이라는 신뢰 얻어야
6명의 토론자들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바람직한 구성 △개보위에 새로이 부여된 조사·처분 등 강력한 법집행 및 감독 권한의 적절한 행사와 노하우 축적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관행과 절차 수립의 방법 △‘데이터 시대’로의 흐름을 개보위가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주창(advocacy)’ 기능의 적극적 발휘 △기술변화 및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국내외 논의에서 개보위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점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강신욱 변호사는 “(위원회 구성이) 일부 위원은 교섭단체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점에서 중립성 확보에 신경을 써야 하고, ‘보호’라는 것은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위원의 다양성 확보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위원들의 전문성 못지 않게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처 직원들의 전문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한편 “현안이 되는 이슈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가 중시되기도 하고 반대로 경시되기도 하는데, 개보위가 개인정보이슈에 관해서는 중심축을 확실히 잡고, 하나의 커다란 개인정보의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개념으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교화 변호사는 “법이 개정된 취지를 충분히 내면화하고, 법의 수혜자이자 보호 대상이 되는 국민들에게 명확한 비전과 통찰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인사들이 위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면서 “위원들은 법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머신 러닝과 같은 AI 관련 기술에 대한 전문성도 갖출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또한 “위원회가 국민의 신뢰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으려면, 여러 아젠다 중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할지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한편 “개보위의 주창 기능(advocacy)은 법령의 재개정, 고시, 가이드라인 등으로 발휘되는 만큼 특정 기술에 얽매이지 않는 기술 중립성 원칙을 비롯하여 원칙과 위험에 기반한 접근 방식으로 관련 법령의 조화를 도모하면서, 국제적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 확보와 국제 표준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환경 변호사는 “4차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산업 전반에 대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로 위원회가 채워져야 한다”면서 “집행·조사 등의 권한 행사와 법 해석에 있어서는 일관성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 “개보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다른 부처들과의 협력과 조율을 잘 해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서 “개인정보 보호가 어느 한 기본권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재판 받을 권리 기타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개보위는 효과적인 보호를 위한 기술적 솔루션까지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진 교수는 위원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리더십 및 타기관과의 관계형성 능력을 언급했다. 위원들의 리더십은 전문성과 보편성으로 뒷받침되는 구성원들의 다양성에서 나올 수 있으며, 이들은 타 부처를 설득하는 한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관계형성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정부는 위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연구 지원과 예산 확보 등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하는 한편 “개보위는 사후적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깨어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로부터 ‘개인정보 보호는 확실히 책임져주는 기관’이라는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모든 관련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리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위원회 구성의 정치적 중립성은 무엇보다 정부가 특별히 지켜줘야 한다”면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사례들처럼 위원들이 단순히 정부의 하명을 반영해 주는 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김 변호사는 또 “개보위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타기관과의 현실적인 긴장 관계는 남아 있기 때문에, 위원회는 이를 풀어갈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이번 코로나 대처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과 같은 사례가 쌓이면 자연히 얻어질 것”이라면서 “n번방과 같은 관련 이슈가 터지면 앞으로는 개보위가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대안과 입법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식 교수는 위원회에 비상임위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사와 집행, 제재 등 개보위의 역할이 더 커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2명의 상임위원으로 충분할지 고민이 필요하며, 위원을 선임할 때 전문분야별로 안배하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개보위의 강력한 법집행 및 감독 권한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서는 “심판관리관실이 별도로 존재하는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심의, 의결 절차 지원조직을 분리하는 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또한 “지위와 권한이 격상된 개보위는 실질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중앙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된다”면서 “제도가 형성된 후 뒤늦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다, 데이터 관련 이슈에서는 정책이 형성되는 초기 과정에서부터 참여하여 타 부처와 대등한 위치에서 덜 침해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