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과대학교수회(회장 박정원 교수)가 지난 4월 17일 “방통대 및 야간 로스쿨 정책의 배경과 과제”를 주제로 원격 화상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논의는 4·15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서 방통대 및 야간 로스쿨을 공약으로 내건 점을 바탕으로, 향후 실제 정책으로 추진될 경우를 대비해 관련 논점을 짚어보는 자리로써 마련됐다.
박정원 회장은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법과대학, 법학부, 법(률)학과의 발전과 미래를 고민하면서 법학의 진흥을 위한 길을 꾸준히 찾아 나가고 있다”며 “여기에는 로스쿨과의 병존 노력과 함께 법과대학, 법학과의 생존 대응책 마련도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방송통신대 및 야간 로스쿨 도입은 법학 발전을 위한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다”면서 “당장 결론을 도출하기보다 관심과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총선에 맞춰 민주당이 발표한 정책공약집은 ‘직장인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방송통신대·야간 로스쿨 도입’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현행 3년 과정의 주간 로스쿨이 정한 입학기준, 학사 및 설치기준을 방송통신대·야간 로스쿨에도 동일하게 유지하여 교육의 질을 담보 △도입취지에 맞게 ‘경력자 및 사회배려자 전형’ 등은 각 학교에서 탄력적으로 운영 △정원은 기존 로스쿨 수준에서 시작하되, 합격자는 전체 로스쿨 총정원 대비 75% 합격률 수준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결정 △등록금은 현재 평균 1,000만원에 가까운 로스쿨 등록금보다 저렴하게 1/4 또는 1/5 수준에서 결정함 등이다.
■ 이호선 교수, “야간 로스쿨, 정답을 놔두고 돌아가선 안된다”
이날 기조발제를 한 국민대 법과대학 이호선 교수는 “최악의 상황은 이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나오는 것”이라며 “제발 선거철에 한 번 써먹은 빈말이기를 바란다”며 반대의사를 강하게 표명했다. “자신들이 도입한 로스쿨 체제를 일정 부분 허무는 결과를 가져오리란 것을 충분히 알지 않느냐”고도 반문했다.
이 교수는 “자신들이 붙인 공약의 제목이 ‘방송통신대·야간 로스쿨 도입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라는 것은 현행 로스쿨 체제에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라며 “사법시험이 폐지되어 법조인 양성 제도가 로스쿨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로스쿨에 대한 모든 문제 제기를 차단하는 폐쇄적 이기주의를 보여온 결과, 법조인 선발의 공정성 문제는 이제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가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직장인과 사회적 약자’라는 그룹은 유의미한 범주 설정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를테면 “장차 취업이 예정된 사람은 야간 로스쿨 입학 대상이 되는 건지 아니면 원서조차 내지 못하는 건지 의문”이라며 “입학 시험에 재직증명서를 요건으로 하는 로스쿨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방통대 및 야간 로스쿨을 졸업한 학생들은 변호사합격률 산정에서 모수만 늘려주고, 정작 자신들의 합격률은 낮음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정규 로스쿨생들을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현행 로스쿨 체제와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이 두 로스쿨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 고정 사다리’가 될 거라는 예측이다.
이 교수는 방통대 및 야간 로스쿨의 도입 대신 학부를 로스쿨 식으로 운용하는 안을 제안했다. 학부 기간을 늘려 4+1년제를 생각할 수도 있고, 학부 등록금과 장학금으로 기존 로스쿨의 폐쇄적 금전 장벽에 우회로를 둘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기존 로스쿨이 학부로 회귀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어야 하고, 이들을 위한 예비시험 및 로스쿨 졸업생들과 함께 응시하는 ‘판검사 채용시험’을 두어 진정한 공정성을 구현해야 한다고도 했다.
끝으로 그는 “방통대·야간 로스쿨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기존 로스쿨 제도 전반을 근본부터 다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라면서 “이제는 지엽적인 미봉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 사법시험(판검사 임용시험)이나 학부 부활과 같은 근본적인 고민을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용상 교수 “법조유사직역 통폐합 측면에서도 야간 로스쿨 실익 있어”
동국대 법학과 정용상 교수도 현행 로스쿨 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현재의 로스쿨은 “무늬만 로스쿨인 ‘기형의 로스쿨’”이라면서 “로스쿨을 도입했으면 일정한 요건을 정해놓고 학부 법과대학과 상호호환이 가능하도록 소통의 통로를 구축해야 할 것인데도 철옹성같이 로스쿨 진입장벽을 쌓아서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새로운 법조특권층을 형성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로스쿨은 그 제도적 본질이 법조인을 대량생산하는 제도”라면서 “근본적으로 자율과 경쟁체제에서 운영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타율과 과도한 통제·규제 하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입학정원과 대학별 정원, 로스쿨 선정까지 모든 것을 정부가 독점하면서부터, 이미 기형의 로스쿨이 탄생하리라는 불행은 예고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렇게 형해화된 로스쿨을 온전한 로스쿨로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야간 로스쿨 도입 논의가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봤다. 야간 로스쿨제도가 가지는 장점이 그에 수반되는 단점이나 비용에 비해 현저하게 크다는 것인데, 정 교수는 그 근거로 △낮 시간을 활용할 수 없는 직장인 등의 로스쿨 접근성을 확장함으로써 법률가 사회의 다양성, 전문성, 특수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점 △야간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 송무시장으로 몰리는 것이 아닌 현업에 복귀하게 함으로써 사회전반적인 법의 지배와 국가의 법치주의 및 법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점 △법조유사직역 종사자들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어 법조일원화를 이룩하는 데 가장 좋은 통로가 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정 교수는 “로스쿨 개혁의 핵심은 사회적‧경제적 위치에 관계없이 누구나 손쉽게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해야 할 것인가에 있다”면서 야간 로스쿨이 관료법조체제로 획일화되어 있는 우리 법률가사회의 다양성 확보와 사회적 유연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에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아가 “과거 사법시험체제하에서 야간 법과대학 출신 합격자 수가 만만치 않게 배출된 경험은 야간 로스쿨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라면서 “발전적으로는 법조인 배출의 다양화를 위해 신사법시험, 예비시험제도 등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 단초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성배 교수 “일부 로스쿨 적자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
국민대 법과대학 김성배 교수는 민주당 정책공약집이 제시하는대로의 제도 도입은 로스쿨 제도의 본질적 개혁이 아닌, 보여주기식 개혁에 그칠 뿐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야간 로스쿨이 성공하려면 △주경야독할 수 있는 상황 △야간 로스쿨 교육의 높은 질 △야간 로스쿨 출신의 진로 대책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면서, “이런 전제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하는 야간 로스쿨은 자살 행위이자 공멸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직장인이 야간교육에 참여한다면 평균적으로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평일기준 평균 최대 5시간 정도, 주말에 최대 12시간 정도인데, 이렇게 최대한으로 시간을 할애한다 해도 주간 학생들과 동일하지 않은 사회적·개인적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며 “출발선이 다른 육상경기, 기본적인 도구가 다른 경주를 설계하고서 ‘공정하다’고 한다면, 이 경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했다. 이 경기가 공정하려면, 변호사시험의 절대평가화 또는 운전면허시험과 같이 전형적인 문제은행에서 출제되는 시험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야간 로스쿨 도입이 일부 로스쿨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시혜적 존재로만 기능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교육의 질이나 법학서비스 개선 등 공익적 차원으로 접근한 정책이 아닌, 기존 로스쿨의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한 인공호흡기 대여와 같은 의미로 접근한 정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 제도 도입 취지를 분명히 하되, 상업적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은 냉정히 제외하고서 제도를 설계해야 합리적 개선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상현 교수 “기존 법학 석사 과정 활용이 더 나은 대안”
숭실대학교 법학과 이상현 교수(뉴욕주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를 소개하며 의견을 개진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는 4-5년 과정의 야간 로스쿨(part-time JD)이 있고, 주 방송통신 강의의 경우 석사학위(LL.M)는 가능하지만 변호사시험 응시가 가능한 정규 3년 JD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이점은 주별 변호사시험을 관리하는 각 주 변호사협회가 합격률이 일정 수준 미만으로 지속되는 로스쿨의 인가 취소를 고려한다는 것인데, 이 교수는 “우리도 이 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일제로 수학하는 현행 로스쿨 제도에서도 합격률이 30% 미만에 불과한 학교들이 나오는데, 그보다 단축된 과정인 방통대·야간 로스쿨의 합격률이 높지 않으리란 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면서 “미국처럼 로스쿨에 대한 엄격한 성과 관리를 병행하지 않고서는 별도로 방통대·야간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이 전체 로스쿨 제도 운영에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김 교수는 “오히려 기존 법학 석사 과정을 활성화하여 법학사(법학전공 학부생)들이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법학 석사 과정 수료자에게 가칭 법학능력시험을 시행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면서 “법학석사 과정이 야간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기에 별도의 야간 로스쿨을 둘 필요가 없고, 우수한 법학능력 보유자들이 기존 교육과정을 통해 법학능력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나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