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국회 개원을 보름 앞둔 지난 5월 15일, 한국경찰학회(회장 이상훈 교수)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한인섭 교수)을 비롯한 5개 기관(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경찰청,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동으로 “자치경찰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쟁점과 그 해법” 세미나를 개최했다.
2018년 자치경찰제 도입 초안이 마련됨에 따라 관련 법안이 국회에 다수 발의되어 있었지만, 지난 20일 열린 제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자치경찰제는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자치분권 실현의 한 요소이기도 한 만큼, 제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그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경찰학회 이상훈 회장은 개회사에서 “(이번 세미나는) 국가의 치안서비스 제공시스템을 보다 세분화하여 자치분권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우리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자치경찰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의미 있는 자리”라면서 “대한민국은 세계적 치안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는 것은 국가주의와 세계주의라는 편향적 가치로 인해 소외되었던 시민과 지역사회 공동체의 치안수요에 보다 부응하고, 특히 경찰정책의 우선순위를 시민 눈높이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자치경찰의 전면 도입에 앞서 지난 2018년 4월부터 사전준비 격으로 진행된 제주자치경찰에 대하여 “치안행정과 지방행정의 연계 서비스 개발은 물론 국가·자치 경찰 간 협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2년 간의 선제적 시범운영이 현재는 안착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업무중복·혼선 등 시범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명확한 사무분담과 처리절차 등 전면 시행에 대비한 업무 매뉴얼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 청장은 특히 “지역 현실을 잘 아는 자치경찰은 자치단체와의 연계로 지역 맞춤형 치안활동은 물론 여성·노인·어린이·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인섭 원장은 “지난한 논의만 반복했던 자치경찰제도의 문을 여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라면, 한국 현실에 맞는 자치경찰제도의 길을 설계하는 것은 학계의 역할”이라면서 학계의 관심과 비전 제시를 촉구하는 한편 “형사사법은 양날의 검과 같기 때문에 자치경찰제와 동행하며 감시하는 국민의 참여가 더해져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자치경찰제에 대한 우려와 지적에 대하여는 “91년에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할 때도 같은 우려와 지적이 있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에는 훌륭하게 제도가 안착하여 코로나 사태에 최적의 대응을 한 것을 우리가 보았다”면서 “지방자치제도로 인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견인하면서 국가 발전을 이뤄가는 것과 같이, 자치경찰제도 우리 치안서비스를 민주적이고 창의적이면서 우수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검찰개혁 협상카드로 기능하던 자치경찰제, '주민 삶에 큰 변화 미칠 거란 인식 부족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라광현 부연구위원은 “자치경찰제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치안에 대한 중대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그 논의가 검찰개혁을 중심으로만 전개됨에 따라, 정작 국민의 이해와 참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경찰활동에 대한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형사정책상 혁신 개념들을 통해 그 주장을 뒷받침했는데 ‘지역사회 경찰활동’, ‘절차적 정의 이론’, ‘회복적 사법’이 그것이다. 이 개념들은 현재의 국가경찰체제 하에서도 전부 또는 일부 적용되고 있지만, 자치경찰제도와 더욱 정합성이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라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지역사회 경찰활동의 관점에서 시민은 경찰의 단순한 협력자가 아닌 치안서비스의 공동생산자라는 점 △절차적 정의 이론 혹은 경찰정당성 관점에서 형사사법체계를 지탱하는 근간은 법집행의 강제성이나 형벌의 억지력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순응과 법집행에 대한 지지와 협력이라는 점 △국가 주도에 따라 실질적인 범죄피해자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가 소외되는 기존의 형사사법제도와는 달리 회복적 사법은 범죄행위를 피해자 및 지역사회에 대한 침해행위로 여기고 이들이 형사사법제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 등이 각 이론과 자치경찰제가 부합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자치경찰 운용에 대한 시민의 접근과 참여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에는 형사정책상 혁신도 실패할 뿐 아니라 자치경찰과 지방 토호세력과의 결탁 및 자치경찰의 사병화라는 최악의 상황에 치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제주자치경찰에 나타난 한계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2020년 3월 기준 제주자치경찰본부에는 국가경찰 파견자 260명, 기존 자치경찰 156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으며 자치경찰 지구대는 3개소가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박병욱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제주 전체로 보았을 때 국가경찰 지구대·파출소 인원이 비중상 7이라면 자치경찰 지구대 인원 비중은 3에 불과하다”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주자치경찰이 ‘시범의 시범’ 단계라고 평했다. 국가경찰-자치경찰 간 업무경계 획정 문제, 하나의 단일화된 흐름으로 경찰 사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 선택과 집중 및 협력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 등으로 업무의 신속성이 저해되고 비효율성이 높아져 그로 인한 국민 불편이 초래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실제 자치경찰업무로 이관된 단순 주취자나 단순시비 신고출동업무의 경우, 신고현장에 도착한 이후 사건이 폭력 사건으로 발전했다면, 자치경찰은 수사권이 없어 해당 폭력행위를 기록만 하고 수사 관련 사항을 국가경찰 지구대로 이관해야 한다. 기존에 일련의 절차로 진행되던 것과 비교하면 국민 불편이 야기되는 지점이다. 또한 이전에는 경찰서 교통순찰차가 교통사고 처리로 바쁘면 인근 지구대 순찰차가 와서 다른 교통사고 건의 초동조치를 도와주거나 특정 지구대가 대형 사건으로 인력이 부족할 시 다른 지구대에서 출동해 도와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하나의 칸막이가 되어 이런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제주자치경찰에서 보이는 이 같은 한계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국가적 법익과 관련된 보안수사와 외사수사, 전국 또는 2개 광역자치단체 이상에 걸친 일반수사사무 정도만 국가경찰사무로 하고 지구대·파출소 단위의 업무는 전면적으로 자치경찰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자치경찰과 지역 유착 방지할 민주적 통제 방안은?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황문규 교수는 “자치경찰제는 경찰로 하여금 정치권력이 아닌 국민의 눈치를 보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자치경찰의 민주적 통제에 대한 쟁점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치경찰의 독립성 및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자치경찰의 장(자치경찰본부장)이 지자체장에 줄서기 할 가능성은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자치경찰에 의해 오남용되는 경찰권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했다.
황 교수는 먼저 ‘시도 경찰위원회를 통한 통제’를 들었다. 자치경찰안에 따르면 시도 경찰위원회는 5인으로 구성되고 시도지사가 임명한다. 이러한 시도 경찰위원회는 “지자체장에게서 자치경찰로 이어지는 개입과 영향력을 차단하는 방어막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이를 위해 자치경찰을 통제하고 관리할 책임 주체는 지자체장이 아닌 시도 경찰위원회가 되어야 하며, 자치경찰의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도 경찰위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장과 자치경찰본부장 간에 유착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황 교수는 자치경찰본부장에 대한 통제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적합한 조사권한 및 활동상에 대한 공개권한이 부여된 경찰외부적 통제장치가 있어 경찰권의 오남용과 정치화된 경찰활동을 통제해야 하고, 경찰조직 내 구성원들에 의한, 즉 경찰직장협의회를 통한 통제도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국가경찰과 마찬가지로 수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게 되는 자치경찰의 수사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간과할 수 없다”면서 “국가경찰과 비교하면 자치경찰의 수사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 자체를 놓고 볼 때 작은 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지역 토호세력의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자치경찰 재원확보, 어느 항목에서 가능할까
한국행정연구원의 탁현우 부연구위원은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비한 재정격차 보완책을 제시했다. 탁 부연구위원은 먼저 재정격차 현황과 관련, 현재 서울특별시 및 경기도와 여타 광역자치단체와의 재정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격차는 2013년 이후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부세나 보조금 등을 통한 수직적 재정조정이 있은 이후에도 세입 격차는 크게 줄지 않았는데, 다만 광역시와 도 간에는 유의미한 재정격차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치경찰 재원확보는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재정분권의 주요 쟁점과 유사하다”면서 그 목표를 풀뿌리 민주주의, 균형발전, 경제성장, 공공서비스 효과성, 재정규율에서 찾았다. 나아가 “자치경찰 재원확보 방안은 중앙과 지방 간 재원 분담 방식, 자치경찰 사무(기능) 이양과 재원 이양의 연계 방식을 비롯해 지방 간 치안서비스 격차 해소와 국가직과 지방직 간 형평성 확보, 자치경찰 효과성 및 책임성 제고 등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가 제시한 재원확보 방안으로는 △현재 내국세 총액의 19.24%인 지방교부세의 비율을 증가시켜 교부세 규모 확대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제주계정 보조금 사례와 같이 자치경찰 포괄보조금 신설 △지방정부가 세목 및 세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재원을 마련하도록 보장 △경찰업무와 관련되는 과태료나 범칙금을 세외수입으로써 자치경찰 재원으로 활용 △소방안전교부세와 유사한 자치경찰교부세 신설 △지방채 활용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