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배심재판에서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의무를 적용하지 않았던 기존 선례를 뒤집고, 모든 주에 배심원 평결이 만장일치로 이뤄질 것을 적용하도록 한 미 연방대법원 판례”
- Lamos v. Louisiana, 590 U. S. (2020. 4. 20. 결정) <출처: 헌법재판연구원>
미국헌법 수정 제6조는 공정한 배심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법원과 48개의 주에서는 배심원 평결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단 2개의 주(루이지애나 주와 오리건 주)는 오랫동안 10대2 평결을 기준으로 형벌을 내려왔다. 즉, 배심원 12명 중 10명만 유죄에 표를 던져도 유죄평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다른 주에서는 무죄 쪽에 표를 던지는 단 한 명의 배심원만 있어도 유죄평결을 할 수 없다.
2019년에는 루이지애나 주도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유죄평결을 내리는 것으로 주헌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 사건 상고인은 루이지애나 주헌법의 개정 전인 2016년에 10대2로 유죄평결을 받아 문제가 됐다. 이 사건 상고인인 Evangelisto Ramos는 루이지애나 주의 2급 살인의 피고인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배심재판을 요구했고, 그 결과 전체 12명의 배심원 중 10명이 유죄, 2명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대부분의 다른 주에서였다면, 또는 개정 후의 주헌법에 따른다면 심리무효(mistrial, 미결정심리)가 되었을 것인데, 개정 전 주헌법의 적용을 받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게 된 것이다. 상고인은 주 항소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됐고, 주 대법원은 심리를 거부하여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에 올라오게 됐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 법정의견(5인 의견)은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의무를 적용하지 않았던 기존의 선례를 뒤집고, 모든 주에 이를 적용하도록 했다.
법정의견은 먼저 “왜 루이지애나 주와 오리건 주만 비(非)만장일치 유죄평결을 허용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기원은 백인들의 우위를 확고히 하려는 결과 여러 인종차별적인 정책들이 도입되면서 이들 주가 제도적으로 흑인들을 배심원단에서 배제하려던 데 있다”고 자답했다. “루이지애나 주헌법 제정회의 의원들은 공공연하게 흑인을 차별하는 모든 정책은 연방대법원이 헌법 수정 제14조의 평등보호조항 위반으로 폐기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흑인들의 배심원단 참여를 약화시키고자 하였고, 그 결과 흑인 배심원의 활동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인종중립적인 10대2 유죄평결 허용 원칙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미연방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중범죄의 유죄판결을 내림에 있어 수정 제6조상의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만장일치의 배심원 평결을 요구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이 사건의 상고를 허가하였다”면서 “반대의견도 암묵적으로는 주가 비(非)만장일치 유죄평결을 허용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듯 보이나, 루이지애나 주가 청하지도 않았음에도 ‘선례에 따라’ 주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선례변경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법정의견에 대해 반대의견(3인)은 “루이지애나 주와 오리건 주는 선례(Apodaca v. Oregon, 406 U. S. 404 (1972))를 신뢰하여 수천 건의 사건에서 비(非)만장일치 평결을 허용해왔다”면서 “(법정의견은) 선례구속의 원칙을 홀대하고, 선례를 뒤집기 위한 기준을 낮추어버림으로써 엄청난 신뢰이익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중요하고도 오랜결정을 폐기하였다”는 의견을 냈다. 나아가 “법정의견이 밝힌 루이지애나 주와 오리건 주의 비(非)만장일치 원칙의 기원은,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판단하고 있는 헌법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유럽인권재판소
“절도 의혹으로 인한 직장 내 감시 카메라 설치와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에 대한 판례”
- CASE OF LÓPEZ RIBALDA AND OTHERS v. SPAIN, Applications nos. 1874/13 and
8567/13, 17 October 2019. <출처: 헌법재판연구원>
스페인의 한 슈퍼마켓 점원이었던 5명의 청구인들은, 고용주가 설치한 CCTV를 통해 절도 사실이 발각되어 해고되자 “숨겨진 CCTV에 의한 감시가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협약’(이하,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침해했으며, 이러한 과정으로 수집된 증거의 사용은 유럽인권협약 제6조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청구인들은 먼저 고용심판원(Employment Tribunal)에 부당해고를 이유로 제소했다. 그들은 비밀카메라 감시로 인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권리가 침해되었으며, 그러한 수단으로 얻어진 녹화본들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용심판원은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으로 해고가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청구인들은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항소심도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하자,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상고가 허가되지 않았고, 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으나 기본권 위반의 부존재를 이유로 사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구인들은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와 제6조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고, 2018년 1월 9일, 유럽인권재판소 소재판부(Chamber)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위반은 인정하고 제6조에 대해서는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에 스페인 정부가 항소하여 대재판부(Grand Chamber)로의 회부를 요청했고(유럽인권협약 제43조4)),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이 사건은 대재판부로 회부됐다. 2019년 10월 17일, 대재판부는 소재판부의 판결을 일부 뒤집어 유럽인권협약 제8조 및 제6조의 위반이 모두 아니라고 판결했다.
유럽인권협약 제8조 위반을 인정했던 소재판부는 “이 사건 비디오 감시가 절도에 대한 정당한 의혹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적 제한도 없었고 계산대에서 일하는 모든 점원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근무시간 전체를 포함시키는 등 범위가 너무 넓고, 개인정보의 수집 및 처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감시의 존재, 목적, 실행에 대해 미리 알려야 할 국내법상 사전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했다. 또한 “고용주가 비디오 감시장치의 설치에 대해 청구인들에게 고지했어도 고용주의 권리는 보장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결론적으로 “국내법원들이 공정한 법익형량에 실패했고, 따라서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위반이 있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대재판부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에 의해 부과되는 국가의 적극적인 의무는 국가당국으로 하여금 상충하는 두 이익, 즉 청구인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와 고용주의 재산권 및 원활한 회사운영의 보장 사이에 공정한 이익형량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한편, 스페인 법원들이 취한 심사방식을 검토한 결과 “스페인의 법체계와 이 사건 비디오 감시를 정당화하는 고려사항들의 중대성을 모두 고려하건대, 스페인 당국이 유럽인권협약 제8조하의 적극적인 의무를 불이행했다고 할 수 없다”면서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위반은 없다”고 판시했다.
대재판부는 국내법원이 비디오 감시장치의 설치가 정당한 이유, 즉 절도의 의혹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본 것을 수긍했다. 국내법원들이 감시의 범위와 침해의 정도를 심사한 결과 감시되는 영역과 점원들이 한정되어 있었고, 감시의 지속기간도 절도의혹을 확정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를 넘지 않았다. 감시는 가게의 모든 곳이 아니라 계산대 근처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였던 3명의 청구인들은 근로시간 내내 제한 없이 CCTV 카메라에 찍혔고, 나머지 2명의 청구인들은 계산대 근처를 지날 때만 카메라에 찍혔다.
청구인들의 업무는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고 손님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이 점은 피고용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고려하는데 반영되었는데, 이 사안처럼 일반 대중도 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서 근무하는 경우 그 보호는 낮아진다. 시간적 범위의 측면에서도, 고용주가 비디오 감시의 지속기간을 미리 정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10일 동안 지속되었고, 범인이 식별되자마자 감시를 중단했다. 이 사건 감시의 결과와 관련하여, 비디오 감시와 녹화는 물건의 분실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밝혀내고 징계조치를 취하려는 목적으로만 이용되었다. 국내법원은 이 사건과 같은 상황에서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은 ‘필요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재판부 역시 “고용주가 발견한 손실의 범위로 보아 절도가 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되었고, 어느 직원에게든 고지하게 되면 절도를 범한 사람을 찾아내고 징계조치에 사용될 증거를 얻으려는 감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수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