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 변호사, 이하 ‘여변’)가 지난 8월 5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7조-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명령의 개선방안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법원행정처 연구용역 과제 수행 상 참조할 의견 청취 및 토론을 위한 자리로, 여변 아동청소년특별위원회 소속 변호사들로 구성된 연구진들의 발제와 주요 실무자들의 토론으로 이뤄졌다. 이날 발제는 이상희 여변 사무차장, 김수현 여변 이사, 신수경 여변 이사가 맡았고, 토론자로는 전안나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오정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장화정 아동권리보장원 아동학대예방본부장, 심은지 수원가정법원 가사조사관이 참여했다.
윤석희 회장은 “피해아동보호명령제도는 가정법원이 아동학대 사건에 유연하고도 신속하게 접근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피해아동의 원가정 복귀를 본래의 목적으로 하는 제도”라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정법원의 신속한 개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형사사건과 아동보호사건, 피해아동보호명령이 각기 분절적으로 처리됨에 따라 피해아동 보호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수사기관이 개입하지 않는 제도로 설계된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
이상희 사무차장은 발제를 통해 현행법상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를 개관했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이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수사기관의 수사에 따라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공소제기 및 형사처벌이 진행되는 경우 ▲검사 또는 법원에 의하여 아동학대 행위자가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는 경우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가정법원이 직권 또는 청구에 의해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하는 경우다.
이 중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된 2014년도부터 도입됐는데, 판사가 아동학대 행위자를 피해아동으로부터 격리하거나 접근제한, 피해아동의 시설 위탁, 아동학대 행위자의 친권행사 제한 또는 정지 등 결정을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민사적 성격의 제도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제정 이후 8차례 개정된 바, 피해아동보호명령과 관련된 개정은 2017년 12월 19일 개정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에 따라 아동학대처벌법 제47조 제1항 제5의2호에 ‘피해아동 상담·치료 위탁’ 내용이 추가됐고, 제47조 제6항이 신설되어 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보호자가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3월 24일, 법은 또 한 차례 개정됐다. 시행일인 10월 1일부터 변화될 내용 중에는 피해아동보호명령 관련 변경 사항도 도드라진다. 먼저 기존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이 청구권자였는데 10월 1일부터는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으로 청구권자가 바뀐다. 이로써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은 청구권자인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피해아동보호명령의 청구를 요청하도록 변경됐다. 피해아동보호명령 기간의 연장 단위는 기존 3개월이던 것이 6개월로 변경됐고, 기간의 상한은 기존 4년이었으나 10월 1일부터는 ‘피해아동이 성년에 도달하는 때까지’로 변경된다.
■ 아동학대 신고 3만 3천여 건 중 피해아동보호명령 청구는 “340건”
신수경 이사는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의 실효적 운용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발표했다. 이 발표를 위해 여변 연구진은 전국 단위 법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실무자들을 면접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신 이사에 따르면 현재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는 수사기관의 개입이나 분리조치에 비해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8년 한 해 아동학대로 신고된 3만3532건 중 수사기관이 개입한 것은 8천여 건이고 피해아동이 가정에서 분리조치 된 것은 3천2백여 건인데 반하여, 피해아동보호명령 청구 건수는 340여 건에 그친 것이 그 활용도 차이를 보여준다.
실무자들은 이러한 활용률 저조의 원인을 제도 자체에서 찾기보다는 절차적 어려움이나 지침 미비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했다. 구체적으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입장에서 아동학대처벌법보다는 아동복지법의 활용이 익숙한 점, 피해아동보호명령 청구서 작성이 어려운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러한 문제들의 타개책으로는 “기소와 재판 과정에 있는 검사와, 형 집행 과정에 있는 보호관찰소가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관련 사건 진행과 피해아동보호명령 간 유기적 연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 보호조치와 피해아동보호명령제도를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 “원가정 회복의 목표 달성 위해서는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분도 가능해야”
김수현 이사는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분의 부재 및 피해아동보호명령 집행·감독의 문제”를 발표했다. 현행법상 피해아동보호명령의 내용에는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중요한 임시조치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 사건이 아동보호 사건으로도 접수되지 않는 한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분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해 문제가 되고 있다.
김 이사는 “현재 실무상으로는 피해아동보호명령 사건의 기일 연장 등을 통해 아동보호 사건이 접수되도록 기다리거나, 피해아동을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에 상담·치료 위탁하는 경우 아동학대 행위자에게도 참여를 요청할 수 있게 한 아동학대처벌법 규정에 따라 우회적으로 행위자에 대한 판단 및 처분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김 이사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통해 피해아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원가정 회복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피해아동보호명령에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분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근거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아동보호명령의 집행·감독과 관련하여서는 “촘촘한 조사를 통해 피해아동 보호가 꾸준하고 면밀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소 6개월 단위로 실시해야 하며,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함으로써 아동보호를 시작한 법원이 보호의 마무리까지 담당할 수 있도록 법원이 지속적으로 책임지고 감독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 “아동복지법상 보호조치와 아동학대법상 피해아동보호명령은 목적이 다른 제도”
전안나 부장판사는 “아동복지법상 보호조치와 아동학대법상 피해아동보호명령은 그 취지나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며 “원가정복귀가 어려울 정도의 학대가정 아동이라면 아동복지법상 보호조치가 필요한 사안으로 볼 수 있고, 그에 반해 한시적으로 조치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원가정 복귀라는 목표를 향해 이뤄지는 것이 피해아동보호명령”이라고 구분했다.
따라서 “피해아동의 원가정이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더이상 특례법인 아동학대법의 테두리에 놔둘 필요가 없으므로 아동복지법상 요보호아동으로 전환하여 보호조치를 받게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면서 “단순히 절차상 어려움이나 행정적 불편함 때문에 요보호아동으로 처리했다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정희 부장검사는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 행위자로부터 격리하거나 접근금지를 하는 것과 별개로 피해아동을 복지시설에 위탁하거나 정신적·신체적 치료를 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는데, 검사에게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할 권한이 없어 보호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오 검사는 “아동보호심판규칙 제10조를 개정하거나 아동학대처벌법상 피해아동보호명령 청구권자에 검사를 포함시키는 안”을 개선안으로 제시하는 한편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국선변호사를 일대일로 매칭하는 협업체계 구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오 검사가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시행했던 제도로, “형사절차 초기부터 피해아동에 대한 법률지원을 시작하는 국선변호사는 누구보다 피해아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피해자 지원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오 검사의 견해다. 실제로 이 제도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국선변호사 양측 모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