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한인섭)이 지난 9월 4일, 호주형사정책연구원, 태국사법연구원, 호주국립대학교 규제 및 글로벌 거버넌스 대학,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유엔 범죄예방·형사사법 프로그램 네트워크와 함께 “제1회 아태지역 형사사법 전문가 컨퍼런스- 코비드19 팬데믹의 형사정책적 과제: 범죄환경 및 동향의 변화”를 개최했다. zoom 웨비나 형식으로 개최된 이번 컨퍼런스는 한국시간으로 오후 3시부터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한인섭 원장은 “코비드19로 인한 범죄 동향 변화 예측과 그에 대한 형사정책적 대응책 강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팬데믹으로 인한 일상적 상호작용 방식의 급격한 변화가 범죄환경과 범죄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장이 필요했다”면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연례행사로 개최하던 국제 행사를 이번에는 호주형사정책연구원, 태국사법연구원 등과 함께 ‘아태지역 형사사법 전문가 컨퍼런스’로 마련하게 됐다”고 전했다. 나아가 “세계의 전문가를 국내 개최 행사에 섭외하려면 일정조정과 비용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로 인해 불가피하게 개최하게 된 화상회의가 국제컨퍼런스의 어려움과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수월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바이러스로 변화한 일상, 범죄도 진화한다”
태국사법연구원 특별자문관으로 재직 중인 매티 요우센(Matti Joutsen)은, COVID-19가 우리 일상을 크게 변화시키면서, 범죄 양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각국에서 격리와 여행·이동 제한, 집합 금지 조치를 취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실내에 머무르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가정 폭력과 같은 가족 단위 범죄와 온라인을 통한 범죄가 증가했다. 사기 범죄를 비롯한 각종 사이버 범죄는 그 수법이 진화함에 따라 다양한 신종 범죄가 나타났고, 피해액과 규모도 커지고 있다. 마약이나 인신 매매, 밀수 등의 범죄를 하는 개인 및 조직도 국경과 교통에 제약이 생기면서 그 방식을 새로운 유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매티 요우센은 “팬데믹에 대한 공포가 마스크나 의약품에 대한 도난과 (방역 또는 의료 기능이 없는) 위조품 생산 등의 범죄를 촉발하기도 했다”고 하는 한편, 자가격리 위반을 범죄로 규율하는 국가가 많아지면서, 관련 범죄도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변화한 경제구조로 인해 일자리와 소득원을 잃은 빈곤층이 많아진 것은 잠재적 범죄자의 범위도 넓어졌다 의미”라는 설명과 함께 “밀집 환경인 감옥의 높은 전염 위험성 때문에 엄청난 수의 수감자를 석방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와 그에 따른 범죄의 진화는 각국 정부와 사회에 중요한 도전이 되고 있다”면서 “효율적이면서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범죄를 관리하는 적절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팬데믹 시대에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 통계로 나타난 COVID-19로 인한 범죄 변화
호주형사정책연구원 부원장인 릭 브라운(Rick Brown)은 18세 이상의 호주 여성 15,000명을 대상으로 COVID-19 가정폭력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제했다. 그는 온라인으로 모집한 패널들에게 지난 3개월 동안 경험한 신체적·정신적 폭력, 학대, 폭언 경험 등에 대해 질문한 바, 조사에 따르면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 명 가량의 여성이 가정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신체적·성적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417명 중 53%에 해당하는 응답자는 “코로나 이전보다 폭력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했다”고 했으며, 강압적 지배 유형의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640명 중 47%가 “코로나 이전보다 지배의 정도와 빈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COVID-19가 한국에 미친 영향은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의 김혜진 연구원이 발제했다. 김 연구원은 2019년부터 2020년 7월까지 접수된 112 신고 중 무의미한 신고 건을 배제하고 총 1700만 건 가량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가장 큰 감소를 보인 범죄 유형은 뺑소니(52% 감소), 교통법규 위반(42% 감소), 사기(37% 감소) 순이다. 반면 교통방해와 교통사고는 각각 8% 감소, 약 6% 감소에 그쳐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다. 가장 큰 증가를 보인 유형은 재난 신고(303% 증가), 공갈·협박(86% 증가), 위험 동물(46% 증가) 순인데, (층간) 소음 신고의 경우 증가율은 15.8%에 그쳤지만 지난해 17만 여 건이던 신고 건수가 올해 20만 건을 넘어선 것은 주목된다.
■ “국제공조 통한 대응, 방역과 인권 간 조화도 중요한 문제”
호주국립대학교 로데릭 브로트허스트 교수는 국제적으로 형성된 다크넷 시장을 통해 COVID-19 관련 의료 제품의 밀매가 이뤄지는 상황을 짚었다. 그는 지난 2020년 7월에 발표된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며 “표준 이하의 부적격 의료 기기나 위조된 의료제품 등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시행가능한 규제 수단의 부재는 전세계 개인과 공중의 보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는 일관적인 접근 방식과 시스템을 개발·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온라인 마약 판매와 의약품 등의 불법 온라인 판매에 대한 심층 분석 △다층화하는 사이버 범죄 및 온라인 경제 구조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 △조직범죄의 영향력 확장에 대한 경각심 등을 당부했는데, 실제 이탈리아 남부에서 마피아 조직이 자선 단체를 가장하여 코로나 피해 또는 소외 계층에게 물품 등 지원을 한 사례와 멕시코에서도 범죄 조직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 사례를 소개하면서는 “국제적인 범죄 집단이 점차 합법적 경제 활동 영역으로 진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강태경 국제관계팀장은 “팬데믹 시대에 바이러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인권이 과도히 침해당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강 팀장은 세계적으로 잘된 사례로 꼽히는 “K-방역”의 다층적 구조를 짚어보면서, “확진자 동선 추적·공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보호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시민은 방역의 효과성 면에서는 우수한 대응을 보였다고 평가되지만, 개인정보 문제에 있어서는 ‘필요하고 적절하며 비례적인지’를 살피는 책임성과 투명성의 개선이 요구된다”면서 “방역 또는 개인정보 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해 희생하는 구도가 아니라 양자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