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법원 2020도8016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바) 상고기각- 성폭력 피해 다음날 피고인을 찾아간 피해자에 대한 “피해자다움 결여” 주장이 배척된 사건
대법원(주심 대법관 민유숙)이 9월 7일, “피해자가 전날 강간을 당한 후 그 다음날 스스로 피고인의 집에 찾아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피해자의 행위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사정이 되지는 못한다”고 판시하며 원심을 수긍했다. 이 언행을 문제삼아 “피해자다움의 결여”를 주장한 피고인의 주장은 배척됐다.
피해자는 당시 14세로, 피고인에게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이 적용됐다. 2018. 1. 26. 자신의 주거지에서 피해자를 강간한 피고인은 그 다음날 사과를 받기 위해 혼자 찾아온 피해자를 또 다시 강간했다. 피고인은 “1월 26일에는 합의 성관계”라고 주장하는 한편 “그 다음날에는 피해자를 만난 적도 없다”고 하면서 “전날 심각한 폭행 후 강간을 당하였다는 피해자가 사과를 받기 위해 혼자 피고인을 찾아가 피고인만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다시 강간을 당하였다는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심은 “범죄를 경험한 후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피해자가 선택하는 대응 방법은 천차만별인바,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반드시 가해자나 가해현장을 무서워하며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는 볼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해자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거나 피하지 않고 나아가 가해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피해자로서는 사귀는 사이인 것으로 알았던 피고인이 자신을 상대로 느닷없이 강간 범행을 한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그 해명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리가 성폭력을 당한 여성으로서는 전혀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피고인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 또한 “원심이 위와 같이 판단하여, 범행 후 피해자의 일부 언행을 문제 삼아 피해자다움이 결여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다투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 대법원 2020두38744 조합설립인가처분취소 (나) 파기환송- 법정동의서에 추정분담금 등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설립동의 효력을 부인한 사건
대법원(주심 대법관 이기택)이 9월 7일, “추진위원회가 법정동의서에 의하여 토지등소유자의 조합설립 동의를 받은 경우,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를 받기 전에 토지등소유자에게 추정분담금 등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정동의서에 의한 토지등소유자의 조합설립 동의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추진위원회가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조합설립 동의를 받기 전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5조 제8항에 따른 추정 분담금 등 정보 제공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보고, 토지등소유자들의 조합설립 동의가 모두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은 파기환송됐다.
이 사건 추진위원회는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받은 법정동의서의 ‘공사비 등 정비사업에 드는 비용’란에 철거비 약 53억 원 내외, 신축비 약 3,048억 원 내외, 그 밖의 사업비용 약1,522억 원 내외, 합계 약 4,623억 원 내외라는 정보를 기재하였다. 하지만 원심은 “추진위원회는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를 받기 전에 ‘토지등소유자별 분담금 추산액 및 산출근거’, ‘그 밖에 추정 분담금의 산출 등과 관련하여 시·도조례로 정하는 정보’를 토지등소유자에게 제공하여야 한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5조 제8항, 시행령 제32조)”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토지등소유자들의 조합설립 동의가 모두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은 “추진위원회가 법정동의서에 의하여 토지등소유자로부터 조합설립 동의를 받았다면, 그 조합설립 동의는 도시정비법령에서 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른 것으로서 적법·유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단지 그 서식에 토지등소유자별로 구체적인 분담금 추산액이 기재되지 않았다거나 추진위원회가 그 서식 외에 토지등소유자별로 분담금 추산액 산출에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나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개별 토지등소유자의 조합설립 동의를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두8291 판결, 대법원 2014. 4. 24. 선고 2012두29004 판결 등 참조)는 종전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이와 같은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이 사건 추진위원회가 법정동의서에 의하여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조합설립 동의를 받았고, 그 법정동의서에 분담금 추산에 필요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으므로, 그 개별 동의서가 위·변조되었거나 그 밖에 동의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법정동의서에 의한 토지등소유자의 조합설립 동의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 대법원 2017다269442 원상회복 등 청구의 소 (가) 파기자판-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에 소촉법 적용이 문제된 사건
대법원(주심 대법관 김재형)이 9월 3일, 신탁계약상 우선수익권자인 원고가 신탁원본 및 신탁수익을 수취할 권리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수탁자인 피고가 이에 위반하여 수익금을 공탁하여 수익자의 채권자들에게 배당됨으로써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사안에서,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에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하여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한 원심을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의무의 성질을 단순한 금전채무로 본 잘못이 있다”며 파기했다.
이 사건 아파트 개발사업의 시행사인 A는 시공사 B(원고)에 아파트 신축공사를 도급하고, 수탁자 C(피고)와 부동산처분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A를 위탁자 겸 수익자로, B를 우선수익자로 정했다. 아울러 “우선수익자인 B(원고)가 수익자인 A보다 우선하여 신탁원본 및 신탁수익을 수취할 권리를 가진다”는 특약사항을 뒀다. 피고는 원고 및 수익자와 자금관리대리사무계약을 체결하여 자금관리계좌를 개설했는데, 이 계좌에 입금된 돈이 이 사건 신탁계약의 우선수익권 지급 재원 중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후 D은행이 원고와 수익자에 대한 연대보증채권을 청구채권으로 하여 가압류결정을 받았고, 소외인 등 47인은 수익자에 대한 판결금 채권에 기초하여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다. 위 가압류결정과 압류 및 추심명령이 피고에게 송달되자, 피고는 자금관리계좌에 있던 돈이 수익자 A에게 지급되어야 한다고 잘못 판단하여 피압류채권을 ‘A에 대한 이 사건 자금관리계약상의 채무’라고 특정하여 민사집행법 제248조 제1항에서 정한 이 사건 공탁을 하였다.
이후 피고가 “우선수익자인 원고에게 지급되어야 할 돈인데 수익자에게 지급의무가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공탁하였다”면서 위 공탁에 관하여 불수리신청을 하였으나, 피고의 공탁은 결국 수리되었으며 공탁원인을 변경해 달라고도 청구하였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아 위 공탁금은 결국 수익자의 채권자들에게 배당되었다. 이에 원고는 피고가 수탁자로서의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하여 이로 인해 신탁재산에 손해가 생겼다고 주장하며 신탁법 제43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위 자금관리계좌에서 인출된 돈을 신탁계정에 지급할 것을 구하는 방법으로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을 청구했다.
원심은 이러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의무의 성질을 단순한 금전채무로 보아, 자금관리계좌에서 인출된 돈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이란 신탁재산의 원상회복을 청구하는 청구권자에게 신탁재산을 원상으로 회복한다는 뜻이 아니라, 신탁재산이었던 원물을 다시 취득하여 신탁재산에 편입시킴으로써 신탁재산을 원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면서 “따라서 의무를 위반한 수탁자가 부담하는 신탁재산의 원상회복 의무는 그 편입 대상인 원물이 금전인 경우라도 단순히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금전채무와는 구별되고, 달리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민법과 그 특별규정인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에 정한 이율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