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가 지난 11월 4일, “평등법 제정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법 제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계속된 가운데,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 10인은 지난 6월 29일 차별금지법안을 국회에 발의했고, 그 이튿날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제시했다.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본격적인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에 앞서, 법률 전문가들이 제반 법적 쟁점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이번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차별금지법 체계 재편해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한 숙명여대 법과대학 홍성수 교수는 그 필요성을 크게 두 가지로 압축했다. 기존의 개별적 차별금지법들이 규율하지 못하는 법적 공백을 메우고, 차별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현재 다수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고 앞으로도 입법이 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과 같이) 개별 사유와 영역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두어 모든 차별금지사유와 영역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특별히 필요성이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체 차별금지법 체계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행 중인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양성평등기본법,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등이 있다. 여기에 학력차별금지법안 등 다수의 법안들이 현재 논의 중이다.
홍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또다른 필요성으로 ‘차별구제의 실효성 강화’를 주장하면서, 차별시정기구의 단일화 필요성을 함께 언급했다. 단일화된 차별시정기구에 역량을 집중하여 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범국가적 이념 목표인 ‘평등’, 모든 법률에 구현되는 게 원칙”
헌법 제11조 제1항은 평등권을 규정하면서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다. 홍 교수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범국가적 이념 목표인 ‘평등’은 원칙적으로 모든 법률에 구현되어야 하고, 나아가 한국의 헌정질서가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기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따라서) 정의당이 제출한 법안의 이름인 ‘차별금지법’보다는 ‘차별금지기본법’이 더 적절하다”고 하는 한편, “만일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정책을 더욱 체계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그러한 내용의 법은 ‘평등기본법’ 또는 ‘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고도 했다.
헌법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 세 가지를 차별금지 사유로 규정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이에 더하여 장애, 나이, 출신 지역, 혼인 여부 등 총 19가지를 차별금지 사유로 규정한다. 일각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대하여 “해외의 차별금지법제에 비해 차별금지 사유가 너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홍 교수는 이에 대하여 “차별금지사유의 개수와 법의 포괄 범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사유의 개수가 많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사유를 조목조목 나열할 것인지 또는 몇 가지만 예시로 나열하고 해석에 맡길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하면 예시적 규정으로 하되, 말미에 ‘~등, ~ 그 밖의 사유’라는 문구를 덧붙여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규정 방식은 법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넓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하여 그는 “차별행위는 차별금지사유에 해당한다고 무조건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차별 주장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거나 진정직업자격 등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의 남용이나 불합리한 결과 초래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2001년부터 규정된 ‘성적 지향’ 삭제는 무리...다른 사유 추가도 고려해야”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 지향’은 특히 논란이 많다. 홍 교수는 “성적 지향은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금지 사유로 규정된 이후 20여년 간 지속되어 왔고, 이를 근거로 많은 법령들이 운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차별금지사유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아가 “일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론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오래 규정해왔는데도 성적 지향에 대한 인권위 진정 숫자가 적다며,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이 실제로는 경미하다는 주장을 편다”면서 “이는 차별이 실제로 없어서가 아니라 차별이 비가시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성소수자 혐오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로 인한 차별을 호소하기 쉽지 않다는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 차별 진정 건수가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대폭 증가한 사례를 들어 “법 제정 이전에는 차별이 없다가 법 제정 이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분석하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줄어들면, 장애인 진정 건수 증가 사례와 같이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진정하고 보호받는 건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홍 교수는 기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된 차별금지사유 이외에 추가로 고려할 수 있는 사유들로 ‘성별정체성, 언어, 사회적 지위, 직업, 노조활동, 문화, (파트타임 등) 고용형태, 유전정보, 경제적 상황, 출신학교’ 등을 거론했다. 나아가 기존 법안과 제출된 두 법안이 직접차별(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과 간접차별(외견상 차별금지사유와 관련하여 중립적 기준을 적용했으나, 결과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불리하게 된 경우)만 규정하는 것을 지목하며, “복합차별(복수의 사유에 의해 차별을 받은 경우; 어느 사유에 따른 차별인지 입증하지 않아도 되게 함으로써 소수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취지)도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기존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던 문제 중 차별금지법에 제정된다면 큰 의미를 갖는다고 홍 교수가 지목한 것에는 ‘괴롭힘’이 있다. 차별금지법의 괴롭힘은 ‘차별적’ 괴롭힘을 금지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스토킹 등 괴롭힘과는 구분되는데, ‘소수자에 대한 편견, 차별, 적대를 확산, 정당화, 조장, 촉진, 고무하는 표현’을 뜻하는 혐오표현과는 상당한 관계가 있다.
홍 교수는 “고용, 서비스, 교육 등 영역에서 발화되는 혐오표현이 개인이나 집단을 모욕·위협하거나 그런 환경을 조성할 경우, 차별적 괴롭힘에 해당하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혐오표현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발화되는 경우, 특히 방송·출판·인터넷 등 영향력이 큰 매체를 통한 혐오표현이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차별유형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방송심의규정과 정보통신망법에도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 상위법인 차별금지법에 혐오표현 금지 규정이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과 인터넷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에 포괄적 규정인 근거규정을 두거나 선언적 규정이라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자유와 평등 길항관계 생각할 때 포괄적이고 획일적인 차별 규율은 위험해”
법무법인 산지 이은경 변호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며, 현행과 같은 개별적 규율이 맞는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헌법상 평등 이념이 모든 법률에 구현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홍성수 교수의 주장에 대해 “국가가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획일적이고 광범위하게 국민 생활영역에 사적 개입을 하면서, 모든 차별금지사안마다 대사인적 효력을 인정하려 한다면 오히려 다른 개인의 기본권을 축소 또는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며 경계했다.
실제 자유와 평등은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는 어느 한쪽이 희생되고 마는 길항관계에 있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인류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 공존해야 하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침해하거나 우선하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면서 “평등 가치 구현을 위해 제정하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헌법상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우리 법체계에서 유독 ‘차별 주장’에만 과도한 우대와 특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제시된 두 법안은 모두 “차별 피해자에게 기존 민형사법이나 근로기준법이 인정하는 정도보다 더 넓은 보호와 강한 제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법 체계상 민사는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당사자 문제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없고, 형사는 고발이 가능한 대신 무고죄의 부담이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제3자 진정이 가능하도록 하면서도 무고죄의 부담은 지우지 않아 무분별한 진정과 소송을 야기할 여지가 있게 된다.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입증책임 전환 규정과 아직 우리 법에 익숙치 않은 징벌적 배상도 모두 규정됐다.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해고를 금지하지 않지만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업장의 해고를 제한하며, 더 나아가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에 대한 차별까지 금지 사유로 정했다. 이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이는 다른 기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과 차별피해자들 사이에 또다른 평등권 시비를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사회적 공감대 형성됐다는 인권위 주장에는 비약과 왜곡 있다”
이은경 변호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거의 모든 생활 영역을 규율할 것이라면, 그러한 차별의 개념과 구분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며 사회적 공감대 없이 그들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기준을 정해 놓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한 법으로 인해 역차별을 겪는 국민은 반드시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 6월, (주)리얼미터에 의뢰한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법 제정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무르익었다”고 발표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분석·비판하면서, “법 제정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는 일방적으로 물어보니까 수동적으로 대답하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파악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국민의 의견표출을 통해 수렴된 ‘공론’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론조사 표본이 5천만이 넘는 국민 중 1천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여론조사로서의 신뢰도조차 담보되지 않은 것이며, 제시된 법안들이 담고 있는 차별개념, 차별금지사유 및 영역, 차별구제 및 제재에 대한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이 법안을 모르는 상태에서 답변을 하게 함으로써 조사 자체도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인권위의 결과 발표에는 왜곡과 비약이 있다”고 했는데, 먼저 결과 분석의 왜곡이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법안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이 ‘차별금지 법률제정’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설문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답변은 ‘매우 반대/반대하는 편/찬성하는 편/매우 찬성’의 4구간으로 설정했다. 인권위는 이 설문에 대한 응답자들의 답변 중 ‘찬성하는 편 50.8’%와 ‘매우 찬성 37.7%’을 더하여 88.5%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고 발표했는데, 시기와 조건 등 단서가 달릴 수도 있는 ‘찬성하는 편’이라는 응답까지 포함시켜 국민의 뜻을 싸잡아 “필요하다”로 발표한 것은 왜곡이라는 견해다.
설문의 부적절함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는 설문에서도 지목됐다. 인권위는 이 설문에 대한 답변 또한 ‘전혀 동의 안함/별로 동의 안함/다소 동의/매우 동의’의 4구간으로 설정했는데, 이 변호사는 “이 설문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동의하는 문장”이라면서 “반대의견이 나오기 어려운 이런 모호한 설문으로는 국민의 정확한 의사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차별금지법 논의의 공론화를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인 것처럼 취급하거나, 이들이 가짜뉴스를 생산하면서 법 제정 논의를 막고 있다고 호도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며 “이는 자신과 다른 의견은 공론의 장에 입장하는 것조차 막겠다는 의미로 여겨지고, 민주시민의식과도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 “입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해외 부작용 사례 등 충분히 살펴본 후에 도입해야”
이 변호사는 “차별을 주장할 수 있는 사유들 중 일부는 외부적, 객관적 표지에 의해 피해자를 명확히 특정할 수 없고 ‘차별하지 않았다’는 부작위는 입증하기가 어려워서, 일방적으로 고용·승진 등에서 차별받았다고 주장하며 보호를 받으려는 악의적 활용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피해자의 감정과 심리, 일방적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괴롭힘과 혐오표현을 차별로 규율할 경우, 이 법은 입막음법, 민주주의 죽이기법, 학문적 논쟁과 사상의 봉쇄법이라는 악법으로 기능할 수 있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인해 부담하게 되는 사회적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미처 보호하지 못하는 법적 공백이 실제 어느 정도이며 어떤 사례들인지, 만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현행 법체계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실효성과 효율성을 확보하여 실제 차별이 개선된다고 예상하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데이터가 제시된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법률에 이식하여 대담한 실험을 주도해 온 몇몇 해외 선진국 입법이 양산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그런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파악한 이후에 도입 여부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