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형사법연구회(회장 김병수)와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정웅석)가 지난 12월 4일, “형사절차법의 변화에 따른 형사재판의 모습”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온라인)를 열고 심도 있는 논의를 가졌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모성준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의 실무적 함의: 대형 형사사건의 재판진행을 중심으로”를 발표한 바, 모 판사는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조명부터 시작하여 이해의 바탕이 될 증거법 및 복잡소송에 따른 형사소송실무를 짚어보고, 형소법 제312조 개정에 따라 변화가 예견되는 실무적 쟁점들과 그에 대한 법원의 대응 방안을 제언하며 발표를 맺었다.
■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법원은 어떤 한계에 직면해 있나
세계 각국은 여러 형사법적 기본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자기부죄금지, 일사부재리, 무죄추정, 공개재판’이나 형법 및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소급효금지, 위법수집증거 배제, 전문증거 배제’ 등은 대부분의 나라가 인정하고 있는 원칙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형사제도는 나라마다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인다.
이에 대해 모성준 부장판사는 “형사소송제도나 형사소송실무의 구체적 내용이 헌법이나 법원칙 또는 특정한 도그마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형사법 체계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은 ‘형사법 원칙’이 아니라 ‘제약조건(restraints)’”이라는 게 모 판사의 설명이다.
어느 형사법 체계에 속하느냐에 따른 차이는 심대한데, 모 판사는 특히 ‘판사 역할의 차이’를 짚었다. 그에 따르면 영미법계에서 판사는 분쟁해결방안을 고안하여 문제해결 과정에 관여하는 ‘주체’의 지위를 갖는다. 미국 형사법상 각종 증거법칙과 디스커버리 제도, 복잡소송에 대한 절차운영실무 등은 미국 법원에서 도모한 문제해결 방안들이 그대로 법제화된 성과다. 반면 우리가 속한 대륙법계에서 문제해결의 주체는 입법기관이고, 판사는 일관된 법률해석과 적용을 하는 데 그친다.
모 판사는 이 때문에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법원이 갖는 현실적 한계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법원에 대한 일반의 기대와 규범의 불일치’다. 우리 판사의 역할은 제도적·체계적으로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한정됨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기대하는 일반의 인식으로 인해 각종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쟁의 중심에 자주 법원이 부각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둘째, 입법부가 실무에서 꾸준히 개선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은 도모하지 않고(‘입법기관의 문제해결 능력 및 의지의 부재’), 기존 법제도와 체계정합적인 검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법관이 입법흠결에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형사소송법상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인적·물적 지원의 부족’이다. 모 판사는 “공판중심주의 및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등의 선언은 언제나 존재하였으나, 절차와 실무를 위한 지원이 전무하여서 실현이 안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 증거법과 복잡소송 실무, 어떻길래
모 판사에 따르면, 대륙법계인 우리 형사증거법 실무는 일부 영미법계 증거법을 채택하여 체계상 충돌이 내재되어 있고, 이로 인한 일관성 결여가 불가피한 구조다. 특히 1심 법원은 증거법적 판단에 대단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데, 증거능력 판단 절차(주체 및 방식)가 체계적으로 구현되어 있지 않고, 항소심이 사후심이 아닌 속심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 판사는 “형사재판이 사실상 민사소송과 유사한 형태로 증거인부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절차진행이 지연되고 증거조사기일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한계는 복잡소송 실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모 판사의 설명이다. 복잡소송이란 ‘집중적인 사건관리가 요구되는 사건’을 통칭하는 말로, 형사에서는 조직범죄단체 관련 사건이 전형적이고, 민사에서는 다수당사자 손해배상소송 또는 집단소송이 전형적이다. 단일 피고인과 단일 피해자를 전제로 하는 우리 형사소송법은 특히 복잡소송의 대응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우리 형사재판에서 복잡소송의 추이를 살펴보면 ‘1960년대 주류도매업 및 매춘업→1970년대 건설업체 입찰개입→1980년대 유흥업소 및 고리대금업→1990년대 파친코 또는 슬롯머신업소 운영 및 경마경륜 승부조작→2000년대 금융피라미드 운영, 부동산 및 상가분양, 재개발재건축, 무자본 M&A 및 주가조작, 인터넷도박, 스포츠토토’ 등으로 이어지며 복잡성의 정도가 점차 강화되어 왔다. 2020년대인 현재에는 보이스피싱과 음란물 유포,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 판사는 “범죄단체들은 점점 국제화, 온라인화, 점조직화되는 특징이 있고, 경제사범은 금융감독원도 대응이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화, 고도화되어 갈수록 복잡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잠입수사나 통신감청, 유죄협상과 같이 복잡사건을 위한 수사특례 규정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개정된 형사소송법 제312조, 무엇이 달라지나
이런 상황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12조가 개정됐다. 기존 규정은 검사의 경우 실질적 진정성립과 특신상태 규정에 의해 전문법칙을 완화하여 법정에서 그 증거능력이 부정된 경우가 드물었던 바, 개정법은 이러한 완화 규정을 삭제하고, 검사 작성 조서도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것과 그 요건이 동일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향후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검사 작성 피신조서라도 그 증거능력이 부정되게 된다.
대법원은 큰 문제될 것 없다는 인식을 보였다.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회의 입법 문제이고, 현재 재판실무가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어 (법률 개정안에 의하더라도) 실무상 형사재판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만 “이로 인한 재판 과중은 법원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지만, 입법부의 법 개정과 행정부 예산 지원을 통해 판사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반색했다. △검찰 피신조서도 원칙적으로 전문법칙이 적용되는 전문증거인 점 △자백진술 확보 중심의 수사를 유도해 인권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점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 구조적으로 불리한 작용을 하는 점 △법정 외에서 한 진술을 증거로 인정해 공판중심주의를 약화했던 점 등을 지지 근거로 들었다.
모성준 부장판사는 여러 가지를 우려했다. 첫째,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의 효력이 전적으로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은 곧 형사절차 진행에 관한 주도권이 피고인에게 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즉, 현행과 같은 상황에서는 법원의 직권주의적 사건진행 가능성만 차단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둘째, 재판절차의 지연과 재판운영의 비효율이다. 특히 개정법은 수사 과정에서 획득한 정보가 종합적으로 담긴 검찰 조서를 단절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절차 지연과 재판운영 비효율은 기정사실화 됐다. 영장전담판사와 제1심 판사의 심증 간에도 적지 않은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셋째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에 대해서도 접근이 곤란하다는 점이다. 모 판사는 실제 검찰 피신조서를 분석한 결과를 공유한 바, 총 20면의 조서 중 절반 넘는 분량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채워졌다. 이는 검사의 ‘객관 의무’ 때문인데, 우리 형소법상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증거도 함께 제출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넷째는 공모관계 판단의 어려움이다. 이는 특히 복잡사건에서 두드러질 것이라고 모 판사는 전망했다. 공범에 대한 검찰 피신조서가 피고인의 내용 부인으로 증거능력이 부정되면, 공모관계 입증의 부담을 온전히 법원이 떠안게 된다.
다섯째, 영장과 관련해서는 인신구속영장의 발부과정에서부터 공모관계에 대한 무죄가능성 또는 재판지연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양형에서 무죄율 증가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섯째,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 필요성이 낮아짐에 따라 수사과정이 왜곡 또는 축소되고, 진술 청취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법원이 피고인에 대한 문답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구도로의 전환이다.
■ “실로 거대한 변화”...법원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모 판사는 “우리는 ‘외양상’ 직권주의와 결별하고 당사자주의를 채택한다는 것이지만(공판중심주의), 현 상황에서 법원의 좋은 재판이 가능해지려면 직권주의적 요소를 재도입해야 하고 당사자주의적으로는 핵심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먼저 법원은 피고인 신문 등을 한층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피고인의 변소와 그에 대한 수사기관의 검증,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 및 양형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재판자료로 편입해야 한다(직권주의적 요소). 아울러 조사자증언, 증거보전절차 등을 적극 활용하고, 미국 제도의 핵심인 arraignment(공소사실 신문), plea bargain(사전형량조정제도), suppression hearing(증거배제심리) 등의 도입이 있어야 한다(당자자주의적 요소).
증인 소환 불응에 대한 불이익 강화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소환 불응에 대해서는 과태료(제151조 제1항), 구인영장(제152조), 감치(제151조 제2항, 7일 이내)의 처분이 가능한데, 모 판사는 “공범 또는 피고인측 증인의 소환불응시 감치재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 등을 거부하는 경우 재판절차 등 절차 종료시까지 18개월의 한도에서 구금이 가능하고, ‘사법기능을 방해하기 위한 부정행위나 법원의 적법한 영장, 절차, 명령, 판결, 결정 또는 강제집행에 대한 불복종 또는 저항행위’가 있을 시 ‘법원모욕죄’로 규율하는 것도 참조할 만하다.
검찰피신조서를 탄핵증거로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과, 전자장치부착법 제31조의2에 규정된 전자보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향후 무죄판결의 비율 증가가 불가피할 것과 관련해서는, 무죄 주문을 “무죄(증거불충분)” 또는 “무죄(죄가 안됨)”로 구체화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모 판사는 “당사자주의 소송구조에서 형사1심 재판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항소심과 상고심은 어떠한 경우라도 하급심의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에 서둘러 개입하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형사항소심 및 상고심은 사후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형사1심에 우선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분배하고 형사재판의 책임성을 감퇴시키는 법관인사 및 사무분담은 지양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