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캠퍼스 ⓒHarvard University / 출처: 하버드대 홈페이지(www.harvard.edu)>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수 중인 김경록 판사(울산지방법원)에 의하면, 한국은 하버드 로스쿨의 외국인 비율 3위(1위는 중국)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로스쿨뿐만 아니라 하버드대 학부에도 많은 아시아계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바, “아시아계 학생들이 학업성적만을 고려할 경우 백인이나 흑인보다 우수하여 더 많은 아시아계가 입학할 수 있음에도, 입학심사에 반영되는 여러 다른 불리한 고려사항으로 인하여 불합격하고 있다”는 주장에 의해 진행된 소송이 있다.
김경록 판사는 이 사건을 다룬 “하버드 대학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위법성에 대한 연방법원의 판결”을 지난 10월 발간된 ‘해외사법소식(사법정책연구원이 제공하는 해외연수법관 보고자료) 제129호’에 게재했다.
■ 소수를 위한 듯 아닌 듯...의도가 모호했던 소 제기자
미국의 비영리 사회운동 단체인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 이하 ‘SEFA’라 한다)’은 지난 2014년 하버드 대학을 상대로 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는 미국 전역에서 관심을 끌었다.
2019년 10월 1일 선고된 연방법원의 1심 판결에서 앨리슨 버로우 연방판사는 “하버드 대학의 입학절차는 대법원의 기준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는데, 이 결과는 일응 “입학심사의 공정성을 제고하여 아시아계를 보호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김경록 판사의 설명이다. 그 이유는 이 소송을 이끈 단체 SEFA에 있다.
김 판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들을 입학이나 입사에서 우대하는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위헌성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연방대법원은 여러 판결에서 이 정책의 합헌성을 인정했는데, 이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폐지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보수적 사회운동가 에드워드 블룸이 SEFA를 후원하며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언론은 이번 사건을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폐지를 수십년 동안 주장해온 미국 내 보수주의자, 특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내세운 새로운 전략이자 소수인종 차별과 관련된 소송”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 “성적만으로 판단했다면 더 많이 입학” vs “특정한 결론 위해 데이터 왜곡”
SEFA는 “하버드 대학이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의 입학심사에서 인종균형 정책을 사용하여 아시아계 학생의 입학비율을 제한했고, 학업성적만으로 합격 여부를 판단했더라면 2배 많은 아시아계 학생이 합격 통보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아시안 학생의 평균합격률은 8.1%로 전체 평균합격률 9.3%보다 낮았던 점(같은 기간 백인은 11.1%, 흑인은 13.2%, 히스패닉은 10.6%), SEFA가 듀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피터 아카디아코노에게 의뢰하여 분석한 하버드 입학사정평가에 의하면 평가요소 10가지 중 대부분에서 아시아계 학생이 백인, 흑인, 히스패닉에 비하여 우수하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개인인성평가 항목에서만 낮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하버드 대학은 “SEFA의 주장과 증거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선입견과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데이터를 왜곡하고 있다”고 맞섰다. 하버드 대학은 버클리 대학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카드 교수에게 입학사정자료를 제공하고 평가를 의뢰하였는데, 데이비드 교수는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의 증거는 찾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교수는 또한, 지원자의 입학 가능성에 대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평균한계효과는 통계적으로 ‘0’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고, 실제로 문제가 된 6년 중 3년은 플러스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하버드 대학 입학생 중 아시아계 미국인의 비율은 2010년 이후 27%나 증가하여 2020년 현재 입학한 학생들 중 약 23%에 달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이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8년 8월 30일에는,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가 “하버드 대학은 인종적 균형을 고려하여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불법적인 차별을 하였다”는 내용으로 원고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법무부의 의견서에 대하여 하버드 대학은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오바마 정부 시절의 지침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에 법무부에서 이러한 잘못된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 “완전하진 않아도, 인종차별적이지 않다”
연방법원은 130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판결을 통해 “하버드 대학의 입학절차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인종차별적인 것은 아니고, 하버드 대학은 그들의 학문적 우수함의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다양한 입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가능한 인종중립적인 대안이 없음을 증명하였다”는 내용 의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김 판사는 그 주요 이유를 4가지로 정리한 바 첫째, 하버드 대학이 지원자의 인종을 고려할 때는 오직 지원자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혜택을 부여할 때 뿐이고 그들에게 불이익을 가하려고 검토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둘째, 하버드 대학 면접관들이 아시아계 지원자를 ‘조용하고, 열심히 하며, 즐기지 않는다’는 등으로 지원자가 아시아계임을 암시하는 전형적인 묘사를 사용한다는 원고의 주장과 달리, 흑인과 히스패닉에게도 그러한 묘사를 사용했으며 오히려 아시아계 지원자에게 그러한 묘사를 사용한 경우는 적어서 전형적인 묘사로 볼 수 없었다. 셋째, 버로우 판사는 대학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인종중립적인 대안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는데, 원고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입시에서 성적만을 고려한다면 지원자의 대부분이 만점자이므로 입학정원을 4배나 늘려야 하는 점이 언급됐다. 마지막으로, 하버드 대학의 입학정책은 인종을 고려할 때 연방대법원의 기준을 따르고 있고 여전히 개선될 여지가 있으므로 위헌적이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 판사에 따르면 버로우 판사는 판결문 말미에 흑인 최초의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이었던 루스 시몬스 전 브라운 대학 총장의 법정 증언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버드 대학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언젠가 인종적 배경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팩트에 불과하지 어떤 사람의 본질을 결정하거나 중요한 점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 시대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러한 시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는 ‘인종적 배경을 의식한’ 입학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대학들이 배움을 촉진하고 학문을 발전시키며 서로 간에 존경과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