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오재성 부장판사)가 지난 2월 1일, “법관의 업무 부담 분석과 바람직한 법관 정원에 관한 모색” 토론회(웨비나)를 개최했다. 주최측은 이번 토론회가, 법관대표회의만의 내부적 논의를 넘어 외부 논의를 반영하고 심층 논의를 진행하게 된 첫 토론회로서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 및 재판독립에 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데, 이번 토론회는 그 의견 표명을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오재성 의장은 “법관이 부담하고 있는 업무량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재판절차와 충실한 심리구현을 위한 인적조건 마련을 연구하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기획했다”며 “법관에게 적절한 업무량을 부과하는 것은 법관의 개인적 복지 충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법률에 따른 재판업무를 수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자 법관독립 보장을 위한 사법행정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날 ‘분석적 관점에서 본 법관의 업무 부담 설정’ 세션에서는 한국과 미국, 독일의 법관 업무 부담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평가와 분석이 이뤄져 많은 시사점을 줬다. 이 논의는 오는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검사 작성 피신조서 증거능력) 실무와, 그에 따른 향후 민형사 재판에 대한 법관인력의 배분 비율을 재검토할 때에도 논의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판사 한 명이 주당 55시간 일할 때 소액사건에 30분 투입”
김두얼 한국법경제학회장(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은 “한국의 법관 업무 변동 분석”을 발제했다. 그는 “판사 인력과 업무부담을 관장하는 법원정책의 핵심은, ‘공정성, 신속성, 비용’이라는 세 요소를 동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른바 ‘삼각난제(Trilemma)’를 중심에 두고 고려해야 한다”며 “판사의 업무부담은 판사의 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법원의 의무인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사건의 난이도를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인 소송가액은 2019년 현재 51조원 수준이며 2010년 이후 50조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점을 찍은 2010년도에는 민사소송 가액이 100조원을 넘기도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판사정원은 3,228명이나, 충원율이 92%에 불과하여 현원이 2,966명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충원율이 100%였던 것과 달리 현재 이렇게까지 하락한 데 대하여는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2008년~2014년의 기간 동안 사건수를 기준으로 한 업무부담은 감소했지만, 사건별 난이도를 반영한 업무량은 감소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 “그러한 추세는 201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한편 한국법경제학회가 2010년 기준, 어떤 사건이 접수되고 종결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판사가 실제 투입하는 사건당 평균투입시간을 분석한 결과, 소액 사건에 30분, 단독에 3시간 20분, 합의에 7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판사 한 명이 주당 55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김 교수는 “주당 55시간이라는 극단적으로 긴 시간을 기준으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이처럼 충분치 않다는 분석 결과는, 법관의 업무부담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재 조사되는 본안사건 처리율은 100%에 육박하지만, 사건의 처리 기간은 지난 40년 동안 계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 기준으로 최저점을 나타낸 1985년의 처리 기간이 2개월도 안 됐던 것에 비하여 최고점을 찍은 2019년에는 5.5개월을 넘어섰다. 이 같은 경향은 소액, 합의, 단독 모든 경우에 동일한데, 김 교수는 “법관이 사건을 분류하여 쉬운 것을 먼저 처리하고 어려운 것은 미루는 식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높은 사건처리율이 나타나면서도 처리 기간은 길어지는 동시 상승 현상이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정성의 지표가 되는 항소율 또한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김 교수는 “판사 정원은 증가했으나 최근 2년간 인력 증원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고,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소액심판 소송가액 인상 역시 제도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인력 증원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법원 간 인력 배분 효율화와 합의심 제도 개선, 소액심판제도 정상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미국, 검증 거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자료 통해 법관 증원 요구
의정부지방법원 윤민 판사는 “미국의 법관 업무 부담 결정 방식”을 발제했다. 그는 대법원 제7기 외국사법제도연구회 미국사법제도연구반의 ‘2020년 미국의 법관 업무 부담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공동 집필자로서, 해당 연구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방식으로 발제했다.
윤 판사에 따르면, 미국은 법관의 업무부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하고 객관적 자료와 수치를 통해 법관수요를 산정하여 법관 증원 요청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연방법원 행정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연방사법회의(Judicial Council)’는 ‘사법자원위원회(Judicial Resource Committee)’에 ‘사법통계 분과위원회(Subcommittee on Judicial Statistics)’를 두고 있고, 사법통계 분과위원회는 필요에 따라 ‘연방사법센터(Federal Judicial Center)’에 연방법관의 업무부담 분석을 의뢰한다. 미국 주 법원의 경우, 주 의회에 법관 증원 요청을 하기 전에 주법원 행정처가 ‘국립 주법원 센터(National Center for State Courts, ‘NCSC’)’에 법관업무량 분석을 위임하고, NCSC로부터 제출받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주 의회에 법관업무량 분석에 관한 최종보고를 하면서 법관 증원 및 예산 요구를 한다. 2021년 현재 NCSC는 30여개 주에 대한 법관업무량 분석 보고서를 제출했다.
윤 판사가 소개한 구체적인 업무부담 산정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연방대법원이 2년마다 의회에 연방지방법원 소속 법관의 증원을 요구할 때 사용하는 ‘사건가중치’ 산정방식과, 연방사법회의가 D.C.연방항소법원을 제외한 나머지 연방항소법에 대해 인력 충원을 검토할 때 사용하는 ‘연방사법센터가 분석한 결정 요소’다. 연방대법원은 사건가중치를 고려한 연간 사건 수가 연방지방법원 소속 법관 1인당 430건을 초과하고 해당 법원의 요청이 있을 때 의회에 증원을 요구하며, 연방사법회의는 3인 재판부당 500건이라는 정량적 기준에 따라 인력 충원을 검토하되 연방사법센터가 업무부담 가중요소가 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사건가중치(Case-Weights)’는 종래 사건처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용하였는지 조사하는 방식(시간조사, Time Study)을 따랐는데, 연방사법센터는 지난 2003년 절차조사(Event-Base Study) 방식을 새로 도입하여 ①사건 유형과 절차의 분류 ②개별 절차의 빈도 ③법관의 처리시간 등 세 가지 정보를 기초로 하여 산정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의회에 증원을 요구하는 기준 건수인 430건도 이렇게 산정된 사건가중치가 반영된 수치로, 이를테면 무게가 3인 특허사건 1건은 3건으로 간주하여 계산하는 식이다.
여기서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개별 절차는 네 유형으로 구분됐다. ▲재판 및 증거심리절차(Trials and Other Evidentiary Hearings): 배심재판, 비배심재판 등 ▲비증거 심리 및 협의(Non-Evidentiary Hearings and Conferences): 신청심리, 기소인부절차 등 ▲판사실 내에서의 사건 관련 업무(In Chambers Case-Related Activities): 판결이나 결정문 작성 등 ▲사건특성에 따른 조정(Case Adjustments): 당사자가 5인 이상인 경우, 통역이 필요한 경우 등이다.
사건가중치는 이러한 개별절차 빈도에 그 절차의 처리시간을 곱하고, 각 절차별 수치를 모두 더해 평균 처리시간(raw case-weight)을 도출한 다음, 평균 처리시간이 중간 정도인 사건의 사건가중치를 1.0으로 하여 다른 모든 유형의 평균 처리시간을 그에 비례한 상대적 수치로 변환하여 산정한다. 사건가중치가 가장 큰 사건은 사형재심신청(Death Penalty Habeas Corpus)으로 12.89다. 그 다음이 환경사건(4.79), 특허사건(4.72), 마약조직범죄(4.36) 순이고, 사건가중치가 가장 낮은 유형 순으로는 과지급으로 인한 원상회복사건(0.10), 보호관찰부 석방‧집행유예 취소 사건(0.14), 경범죄 사건(0.18) 등이다.
3인 재판부당 500건이라는 정량적 기준에 따라 인력 충원을 검토하는 연방사법회의는 사건가중치를 원칙적으로 1.0으로 하고, 본인소송의 경우에만 0.33으로 산정한다. 연방사법센터는 연방항소법원 사건들이 가지고 있는 업무부담 가중 요소들을 조사했는데, 윤 판사는 이에 대해 “소송제도의 차이점으로 인해 이를 그대로 원용하기는 어렵겠으나, 최소한 당사자의 수, 참가인의 존재, 변론과정의 길이, 수차례 항소 및 파기가 있었는지, 쌍방항소 여부, 원심 기록의 두께, 판결문 분량 등은 우리 법원의 사건부담을 파악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나아가 미국에서 얻는 시사점을 바탕으로 그는 △사건 유형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하되, 우리의 경우 서울권과 지방권 간 상당한 차이도 반영할 필요 있음 △현원이 적은 법원일수록 결원에 따른 업무가중이 더 커지는 만큼 법관 재배치에 각 법원별 현원의 업무량 비율을 산정하여 반영할 필요 있음 △우리 법관이 사건처리 외 업무를 수행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는 만큼, 전체 근무시간에서 일정시간을 공제하여 업무부담을 산정하는 것도 필요 △다른 법관에 비해 상당한 정도의 추가행정업무를 부담하는 법원장에 대한 고려와 배려 필요 △로클럭, 변호사직원, 사건관리자 등 재판 보조인력의 충원과 내실화 절실 등을 주장했다.
■ 독일, 법관의 업무부담 문제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차원에서 논의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하상익 부장판사는 “독일의 업무 부담 결정 방식”을 발제하면서, ①수치 자료를 통한 정량적‧통계적 방법과 ②인터뷰 등을 통한 정성적(定性的)‧제도적‧실무적 방법으로 구분하여 파악한 뒤 ③시사점을 주는 독일 연방직무법원의 법리들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2002년경부터 적정한 사법인력 수요를 산정하는 시스템인 ‘PEBB§Y (PErsonalBedarfsBerechnungsSYstem, ‘펩시’)’를 도입하여 운영해 왔다. PEBB§Y는 연방 및 주 법무부가 법관 증원 여부를 결정하거나 각급 법원 내부적으로 사무분담을 정함에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로 실제 활용되고 있는데, PEBB§Y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는 ①업무유형(Produkt): 적정 인력수요를 산정하는 기본 단위가 되는 사법업무 유형 ②기본수치(Basiszahl): 특정 업무유형을 처리하는데 평균적으로 투입되는 것으로 조사된 분 단위 시간이자 PEBB§Y의 핵심 요소 ③사건수(Menge): 원칙적으로 신건수를 의미하나 필요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수를 포함 ④연간근로시간(Jahresarbeitszeit): 주당 근로시간에서 휴가‧병가‧출산휴가 등을 제외하여 산정되는 1년간 실제 근로시간 ⑤인력수요의 구체적 산정방법: (기본수치 × 사건수)/연간근로시간 이다.
하 부장판사는 PEBB§Y에 대한 평가로 “법관의 적정인력 수요를 산정함에 있어 객관적이면서도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으나, 자료수집시 법원 업무의 양적(시간적)인 측면만 고려할 뿐 해당 절차가 적정하고 형평에 맞게 처리되는지와 같은 질적인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점, 업무유형별 평균적 처리시간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추상적‧가정적‧의제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하 부장판사는 2019년 12월, 다양한 사무분담에 종사하는 총 13명의 독일 법관들과 심도 있는 서면 및 현장 인터뷰를 진행하여 얻은 결과들을 공개했다. 그는 통상적 근로시간, 재판기일, 심리시간, 사무분담, 판결서 작성 등 법관 업무부담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절차적‧제도적 사항에 관해 질문한 뒤, 그들의 진솔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통해 그 특징적인 내용과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독일 법관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다른 법원으로 전보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현재의 사무분담에 오랜 기간 종사하는바, 1년마다 대규모 전보인사 및 이에 따른 사무분담 변경이 이뤄지는 우리 법원과 차이가 있음 △독일은 법관이 준수해야 할 법정 업무시간이 없어 초과근로, 야근, 주말 근무 등의 개념도 없는데, 대부분 1주일에 40~50시간 근무 △일반 법관이 법원행정 및 사법행정 업무 중 일부를 위촉받아 담당하는 경우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법원행정 및 사법행정 업무는 이를 공식적 사무분담으로 전담하는 법관에 의해 처리되고 있으며, 법관이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승진 내지 법원장 보직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사법행정을 담당한 경험이 사실상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음 △원칙적으로 한 사건 당 1시간의 법정 심리 시간을 배정하고 1회 주 기일에 사건을 종결하는데, 핵심적 법률 쟁점 내지 당사자가 간과한 법률 쟁점에 대한 법원의 석명의무가 재판 실무에 특히 강조되며, 이러한 법원의 석명이 1회 주 기일에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하고 종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 △사건 접수 후 주 기일이 열리기까지가 비교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편인데, 사건이 많은 재판부의 경우 1회 기일 지정까지 1년 8개월이 걸리기도 함(칼스루에 고등법원 건설재판부) △판결서는 작성 보조 인력 없이 법관이 직접 작성하는데, 일반적으로 법관들이 판결서 작성 업무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바, 사실관계의 구체적 기재에 있어서는 당사자가 제출한 준비서면, 조서, 기타 서류 등을 인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독일 연방 통계청은 매년 방대한 항목에 걸쳐 매우 자세한 사법 통계를 작성하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고, 특히 ‘한눈에 보는 사법’이라는 별도의 통계를 통해 국민의 이해를 돕고 있음 △승진으로 인한 보수 차이가 크지 않고 주거지를 옮기거나 중요한 사건 부담 등으로 인해 독일 법관들은 대부분 승진을 원하지 않으며, 따라서 좋은 근무평정을 위해 사건처리율 등 통계수치를 높이려는 압박을 느끼지도 않음 등이다.
하 부장판사는 “독일 연방직무법원은 여러 판결을 통해 법관의 근무형태 내지 업무부담이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면서 “법관의 업무부담 문제를 법관 개인의 과로, 소송사건의 적체, 변론기일의 형해화 등 현상적‧실무적 차원에서 주로 바라보았던 우리에게 새롭고도 귀중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연방직무법원의 대표적 설시는 ▲“법관은 자신의 재판 업무를 적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개인적 업무리듬에 맞게 자신의 근무시간을 스스로 배분할 수 있어야 하므로, 법관에게 특정 시간대에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이 원칙은 법관이 법원 청사, 집무실 등 재판을 위한 물적 시설을 어떤 시간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사법행정기관이 법관의 업무 태만 내지 사건처리 적체를 질책하고 훈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이 조치가 해당 법관에게 ‘일반적으로나 다른 법관들에 의해서도 적정하게 처리될 수 없을 정도의 업무량 처리를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될 경우, 이러한 질책과 훈계는 법관 독립의 침해에 해당한다. 또한 단지 통계상 평균수치에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질책‧훈계는 법관 독립의 침해에 해당한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