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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시사점을 줄 만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결정(2020년 9월 29일자 사건번호 1 BvR 1550/19)이 있어 주목된다. 독일은 원전의 전면 가동 중단 목표 기한을 2022년으로 선언한 대표적인 탈원전 국가로, 이번 결정에는 원자력 발전소 운영 기업에 대한 보상 등에 관한 사법적 판단이 담겼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원자력 발전소 운영기업의 재산권을 제한함에 있어 비례의 원칙에 따라 보상이 필요한 경우 명확하게 적절한 보상을 규정해야 함을 선언했다.
<출처: 헌법재판연구원>
■ 2016년 헌재 결정이 부과한 입법의무,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제16차 개정
사안은 2016년에 선고된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입법자가 적절히 이행했는지 여부가 그 발단이 된바, 2018년 7월 10일에 있었던 제16차 원자력법 개정 법률(이하 ‘제16차 개정’)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소원이다. 2016년 당시 연방헌법재판소는 “제13차 원자력법(이하 ‘제13차 개정’) 개정이 대체로 기본법에 합치되지만, 2010년에 추가적으로 보장된 잔여 전기생산량에 대한 신뢰하에 이뤄진 투자에 대해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독일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핵연료 용융 및 수소폭발 사고에 대한 대응으로 개별 원자력발전소의 구체적인 폐쇄시점을 확정한 제13차 개정을 했는데, 제16차 개정은 이에 대한 2016년 판결을 이행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청구인은 2016년 판결의 청구인이기도 했던 스웨덴 기업 Vattenfall과, Vattenfall이 지분을 갖고 있는 두 원자력발전소의 운영기업이다. 이들은 “제16차 개정이 형식상의 이유로 발효되지 아니하였으며, 설령 시행이 되었다고 하여도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어 이미 확인된 기본권의 침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16차 개정에서 입법자는 판결을 이행하기 위해 소진될 수 없는 전력량의 보상(원자력법 제7f조) 및 이와 관련한 행정절차(원자력법 제7g조) 규정을 원자력법에 추가했다. 법률의 시행과 관련해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äische Kommission)가 보조금에 대한 인가를 내리거나 그러한 인가가 필요 없다는 기속력 있는 결정을 하는 날에 발효된다”고 규정했다.
독일의 행정청들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제16차 개정안에 대해 알렸으나,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108조 제3항에 따른 공식 통보는 하지 않았는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하위부서인 경쟁총국(Generaldirektion Wettbewerb)은 서신을 통해 “위원회 본부에서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108조 제3항에 따른 형식상의 통보가 필요하지 않으리라고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연방 환경부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보조금과 관련된 인가가 필요 없다는 기속력 있는 결정을 내렸으므로 제16차 개정이 2018. 7. 4. 발효되었다”고 연방공보에 게재했다.
청구인들은 “제16차 개정을 통해 추가된 원자력법 제7f조 제1항과 제2항 및 제7g조 제2항 제1문을 통해, 나아가 연방헌법재판소가 요구한 새로운 규정을 입법자가 제정하지 않아서 독일 기본법 제14조 제1항에서 도출되는 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보조금 관련 인가를 하지 않았고, 그러한 인가가 필요 없다는 기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으므로 제16차 개정이 발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발효되지 않은 법률로 기본권 침해 지속되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입법자가 제16차 개정을 통해서건 다른 법률을 통해서건 새로운 규정을 발효하지 않았으므로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으며, 입법자는 여전히 새로운 규정을 제정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헌재는 판결이유에서 “기본권 침해의 근본 원인은 제13차 개정에 있으며, 이는 제16차 개정을 통해 제거되어야 했지만 제16차 개정은 해당 개정의 제3조에 열거된 두 요건 중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않아서 발효되지 않았다”고 봤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인가는 내려지지 않았으며, 경쟁총국의 2018년 7월 4일자 서신은 제16차 개정 제3조상의 ‘기속력 있는 통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오히려 경쟁총국의 서신은 “유럽연합법의 관점에서 기속력이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는 보조금과 관련한 선제적 접촉에서의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보조금절차 이행의 행동지침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비공식적이며 기속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법률의 효력발생 여부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보조금 조치 요건에 연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독일 기본법 제82조 제2항 제1문과 합치된다고 했다. 하지만 “법률규정의 적용시점을 정하는 것은 그 영향력이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규범의 수범자가 자신의 권리나 의무의 시작 시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충분히 적확하게 확정되어야 한다”면서, “제16차 개정 제3조상의 ‘위원회의 기속력 있는 통지’에 경쟁총국의 명시적인 기속력 없는 통지도 해당되는지는 예측불가능한 사안이므로 충분히 명확하게 규정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2016년 판결이 원자력발전소의 폐쇄시점을 확정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제13차 개정이 재산사용의 가능성을 제한하여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확인했다는 점도 짚었다. 2002년에 할당된 잔여 전력량을 해당 기업들이 온전히 소진하지 못하리라는 점이 예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한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고, 따라서 입법자는 비례의 원칙의 기준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 추가된 원자력법 제7f조 제1항의 규정을 통해서는 재산권 침해에 대한 비례의 원칙의 기준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보상의 특수한 헌법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법률에 미진하게 규정된 보상의 구체화를 관련 기업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며 “해당 규정은 명확성이 결여되어 헌법에 위배된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