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특별소송실무연구회(회장 안철상 대법관)가 지난 3월 8일, 제245차 연구회를 열고 ‘중간적 행정결정의 처분성’ 및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약관규제법 적용 여부’를 논했다. 이날 발표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승민 교수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홍대식 교수가 맡았다.
■ “행정의 다단계 의사결정, 항고소송 대상적격 관련하여 세밀한 검토 필요하다”
이승민 교수는 “현대 행정국가에서 행정의 기능과 역할이 지속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행정의 다단계 의사결정 방식 또한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면서, “시민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권리구제수단인 항고소송의 제기과 관련하여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 중 어떤 것을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 만약 최종 결정이 아닌 그에 앞선 단계인 ‘중간적 결정’에 대해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처분성)을 인정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을 논하기 위한 ‘중간적 행정결정’은, “종국적인 행정처분의 선행적 절차로 이루어지는 행정청의 의사결정으로서, 절차적‧내용적으로 완전히 독립되거나 완결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종래 쟁송법적 측면에서 논의되던 ‘중간처분’과 상당한 연관이 있어 중간처분의 개념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말이다.
최종적인 행정처분의 선행적 절차에 해당하는 중간처분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어서 ‘처분’이라는 용어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그 처분성이 부정된다. 다만 종래 이론은 “그 외형상 중간처분으로 보일지라도 직접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발생시키는 경우에는 그 처분성을 인정한다”는 예외를 두면서, 그 판단을 전적으로 개별‧구체적인 사안에 맡기고 있다. 이 교수는 “전체적으로 볼 때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의 범위는 실체법적 행정행위의 개념이 확장되거나 쟁송법적 처분이 인정되는 형태로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선행하는 행정결정이 그 자체로 절차적‧내용적 독립성과 완결성을 지니는 경우에는 이를 기초로 한 후행결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섣불리 중간처분이나 중간적 행정결정으로 취급할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공시지가결정과 같이 이를 바탕으로 다른 처분이 내려진 경우, 제소기간 및 불가쟁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하자의 승계 문제로 귀결시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3, 지방공무원법 제65조의3에 따라 이루어지는 공무원에 대한 직위해제가 향후 직권면직의 전제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중간적 행정결정이 아닌 독립적인 행정결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 외부성 존재하는 ‘광의의 중간처분’에 논의 실익 있어
이 교수에 따르면 중간적 행정결정은 어떤 형태로든 대외적으로 표시된 경우, 즉 외부성이 있을 때 그 처분성을 논할 실익이 있게 된다. 따라서 ‘세무서장이 내부적으로 행하는 과세표준결정, 병무청장의 최종 결정에 앞서 이루어지는 관할 지방병무청장의 병역의무 기피자 인적사항 공개 대상자 결정’과 같이 대외적으로 표시되지 않고 이루어지는 순수한 행정기관의 내부 절차는 그 처분성이 부정된다. 또한 ‘병역처분을 위한 군의관의 신체등위판정’처럼, 대외적 표시 여부를 불문하고 그 내용과 성격상 행정결정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처분성이 부정된다.
처분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위의 ‘협의의 중간처분’ 유형과는 달리, ‘광의의 중간처분’은 행정결정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 어떤 형태로든 일정한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로써 세부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광의의 중간처분과 구별되어야 할 개념에는 ‘중간단계 결정(확약, 사전심사, 가행정행위, 사전결정 또는 부분허가 등)’이 있다. 중간단계 결정은 처음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지닌 복수의 행정결정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광의의 중간처분과 차이가 있다.
이 교수는 광의의 중간처분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하나의 처분을 위한 절차에서 구조적으로 최종처분에 선행하는 중간적 행정결정이 존재하는 경우다. 이에는 ‘과세관청의 세무조사(개시)결정,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재산조사개시결정, 감사원의 징계의결 요구,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산재보험료 부과처분에 선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사업종류 변경결정’ 등이 해당한다. 둘째는, 어떤 행정처분의 직접적‧부수적 효과 또는 그러한 효과의 누적이 새로운 행정처분의 요건 내지 전제가 되는 경우에 그러한 새로운 행정처분을 개시하게 하는 내용의 행정결정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26조 제2항에 따른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영업정지 요청(의결)’이 이에 해당한다.
■ 온라인 숙박예약 플랫폼의 환불불가조항...공정위와 법원의 서로 다른 판단
공정위는 지난해 2월 11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숙박예약 거래 중개서비스 사업자인 부킹닷컴 비브이(이하 ‘부킹닷컴’)에 약관규제법 제17조 제2항 제6호에 근거한 시정명령을 했다(의결 제2019-032호). 공정위가 불공정약관조항이라고 판단한 약관조항은 고객이 숙박예약을 취소하는 경우 예약취소 시점 및 숙박예정일로부터 남은 기간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숙박대금 전액을 환불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환불불가조항’이다.
홍대식 교수에 따르면, 공정위는 부킹닷컴이 숙박업체와 공동으로 숙박예약의 당사자로서 환불을 포함한 숙박예약 관련 약관을 고객들에게 제안한 자라고 판단했고, 환불불가조항이 약관규제법 제8조에 규정한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에 해당하여 무효이므로, 이러한 약관조항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부킹닷컴은 약관규제법 제17조의 의무를 위반한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부킹닷컴이 이 사건 처분에 불복하여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2020. 5. 20. 2019누38108호)은 공정위와 달리 판단했다. 부킹닷컴이 환불불가조항에 관한 사업자에 해당하지 않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고, 부가적으로 환불불가조항이 약관규제법 제8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만일 약관규제법의 해석‧적용에 있어 행정법상 행정적 책임 주체를 정하는 법리가 민사법상 계약 당사자 확정의 법리와 동일해야 한다면, 대상판결과 같이 숙박예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사업자를 행정법상 행정적 책임 주체로 보기가 어렵게 된다”면서, “공정위에 의한 행정적 통제가 구체적인 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고 불공정한 약관조항을 규제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불공정한 약관조항이 포함되는 개별적인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사업자에 국한하지 않고 불공정한 약관조항의 사용에 책임이 있는 사업자에게까지 행정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새로운 법리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약관규제법의 해석‧적용에 있어 행정법상 행정적 책임 주체를 정하는 법리는 민사법상 계약 당사자 확정의 법리와 동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를 취하면서, 약관규제법의 해석‧적용에 있어 행정법상 행정적 책임 주체를 정하는 법리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법리에 따를 때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부킹닷컴을 행정법상 행정적 책임 주체로 볼 수 있을지를 검토했다.
■ “단면적 계약관계 전제한 약관규제법 조항, 오늘날 거래현실 반영에 한계 있어”
홍 교수가 행정적 책임의 주체를 반드시 민사법상 당사자 확정의 법리에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는 근거로써 제시한 사례는 두 가지다. 하나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행정적 책임의 주체를 판단하기 위한 대법원의 판례인데, 대법원은 다음커뮤니케이션 사건에서 “광고행위를 한 광고주뿐만 아니라 일정한 판단 기준에 따라 광고행위에 기여한 사업자도 광고행위의 주체가 된다”고 보아 행정적 책임의 주체를 넓힌 바가 있다.
대법원은 또한 이베이코리아 사건에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상 ‘간행물 판매자’에, “간행물의 유통에 관련된 사업자로서, 관련 법령에 따라 통신판매업자로 간주되며 판매자와 별도로 간행물의 최종 판매가격을 결정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통신판매중개업자’가 포함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두 당사자 간 단면적(one-sided) 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여 제정된 약관규제법(제2조 제2호)은 사업자를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상대 당사자에게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자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면서, “이는 실제 거래 현실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3자를 위한 계약관계, 삼면계약관계는 물론, 발전과 기술의 진화에 따라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모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양면적(two-sided), 다면적(multi-sided) 계약관계와 그에 따른 거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불공정약관조항의 사용을 금지하는 약관규제법 규정이 ‘건전한 거래질서’의 확립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업자 요건을 구성하는 계약을 구체적‧개별적인 계약에 한정하지 말고 그보다 넓게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가 행정적 책임을 지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입점업체 사이 및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고객 사이의 거래약정의 내용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의 입점업체와 고객 각각에 대한 온라인 플랫폼 이용약관의 내용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입점업체 사이 및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고객 사이의 거래 가격 기타 거래조건이 입점업체와 고객 사이의 거래 가격 기타 거래조건에 미치는 영향 △문제되는 약관조항의 작성과 거래 사용 과정에 관하여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입점업체가 수행한 역할과 관여 정도 △문제되는 약관조항의 구체적 내용은 물론 문제되는 약관조항의 제공 주체에 대한 소비자의 오인가능성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가 통신판매업자와 별도로 문제되는 약관조항의 내용을 결정하거나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경우에는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