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회장 김선수 대법관)가 지난 4월 6일, “갱신기대권에 대한 기대의 갱신”을 주제로 연구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는 인제대 법학과 박은정 교수, 토론자로는 성균관대 법전원 김홍영 교수, 부산지방법원 김윤영 부장판사가 참여했다.
■ 기간제 근로자들의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의 의미...“판례에 첫 등장은 1980년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자 최대 국정과제였다. 이에 따라 많은 기간제 근로자들이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됐지만, 박은정 교수는 “이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이 아닌, 신규채용이라는 방식이 이용된 경우가 다수 있었다”면서 “공공부문 기업들은 경영상 필요나 예산상 제약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대상인 근로자 인원보다 적은 숫자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일자리를 신규채용 일자리로 내놓고, 공정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전환대상 기간제 근로자들만이 아닌, 일반 구직자들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국가 정책에 따라 기간제 근로자들에게 정규직(무기계약직) 일자리에 대한 기대권이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경영상 필요나 예산상 제약이 합리적인 이유가 되어 이 기대권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거나, 또는 공정경쟁 내지 공정채용이라는 이유로 기대권이 없는 구직자들과 정규직(무기계약직)이 일자리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기간제 근로자들의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금 대두되었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계약에 대한 갱신기대권이 판례상 확인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7년 전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 제정되기 이전까지 갱신기대권은 주로 장기간에 걸쳐 갱신이 반복되어,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의 문제였으나, 기간제법 제정 이후 갱신기대권은 기간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 함께 무기계약직 전환기대권 발생이 인정되는지 여부 등 다양한 문제로 확장됐다. 또한 갱신기대권을 제한할 수 있는 요건 등에 관한 사례들도 많이 양산했다.
판례의 태도를 살펴보면, 노동판례상 기대권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계약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대학교원의 재임용계약 사안에서, “교원은 재임용 ‘기대권’을 가진다”는 주장이 근로자측으로부터 제출됐으나 대법원은 근로자의 근로계약 기간 갱신에 대한 기대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대법원 1994. 1. 11 선고 93다17843 판결은 “연단위계약의 갱신이 관례화됨으로써 별다른 하자가 없는 이상 계속 근무할 수 있다는 기대관계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존속되어 왔고...원고들과의 계약기간 만료 후 계약갱신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에 대한 입증이 없는 한, 피고가 원고들과의 시간강사 임용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은 정당한 사유없는 해고와 다름이 없어 무효”라고 선고하며 기대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 점차 구체화된 판례의 기대권 인정 논리
2007년 제정된 기간제법은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한다(기간제법 제4조 제1항 본문). 박 교수는 이 기간제법 제정 전후로 판례의 태도를 나누어볼 수 있다고 했다.
기간제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던 2006년, 대법원은 선행 판례들이 제시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기대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경우를 “①계약서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②기간을 정한 목적 ③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④동종의 근로계약 체결방식에 관한 관행 ⑤근로자보호법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로 보았다. 이후 2007년 판결(2005두16901)에서는 위 ③의 표현을 “채용 당시 계속근로의사 등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라고 구체화하고, “⑥근무기간의 장단 및 갱신 횟수” 요건을 추가했다.
한편, 기간제법이 제정된 후 2011년 대법원(2007두1729)은 “①기간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의 존재 여부 ②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③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④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들이 종합적으로 판단되어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될 때, 근로자에게는 근로계약의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설시했다. 박 교수는 “이 판결이 현재 갱신기대권의 발생을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도 기존 판례의 갱신기대권 논리가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하여는 학설상 다툼이 있었다. 이 논란을 정리한 것이 2014년 대법원 판결(2011두12528)인데, 대법원은 “기간제법의 시행으로 사용자가 2년의 기간 내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고,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되더라도, 위 규정들의 입법 취지가 기본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하려는 데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제법의 시행만으로 시행 전에 이미 형성된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배제 또는 제한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며 기존 판례의 갱신기대권 논리가 그대로 유효함을 선언했다.
■ 갱신기대권이 존재함에도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가의 문제
박 교수는 “갱신기대권의 인정과 전개의 과정은 기간제 근로계약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할 권리가 인정됨을 확인하는 의미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계약의 갱신이 거절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갱신기대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경우들로는 △업무평가 결과에 따라 계약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계약갱신거절의 사유가 사업의 축소‧폐지인 경우 △공개채용 방식을 취하는 경우 △정년이 도래하거나 경과한 경우 등이다.
박 교수는 “평가의 객관적 합리성이나 공정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평가 결과에 따라 갱신기대권이 존재하는 기간제 근로자와의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때 평가의 객관적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어떻게 확인 내지 확신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는 한편 “대법원이 경영상 필요에 따라 갱신기대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경영상 해고 규정에 준하는 요건을 필요로 한다고 본 것은,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경영합리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간제 근로자들의 갱신기대권 실현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하나의 지침을 제공한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평했다.
또한 “근로자가 정년에 도달했거나 정년을 지난 상태였다고 해도 근로자가 담당하는 직무수행 능력에 문제가 있다거나 연령에 따른 작업능률 저하 또는 위험성이 증대되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정년이 갱신기대권을 제한하거나 부정하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짚었다.
■ “명문 규정 없는 갱신기대권 법리는 근본적으로 한계 있어”
김홍영 교수는 “판례가 발전적으로 형성해 온 갱신기대권 법리는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관계 존속을 보장하려는 사법부의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공로가 크지만, 갱신기대권은 근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명문 규정이 없고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기대어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의 하나로써 해석상 인정될 뿐이어서,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여러 한계를 노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갱신기대권을 근로기준법에 명백히 규정하여 강행규정화한다면 그 해석도 종전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실제 분쟁에서 가장 문제되는 지점은 갱신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가”라며, 대법원 2017. 10. 12. 선고 2015두44493 판결을 주로 검토했다.
김 교수는 대상판례에 대해 “갱신기대권을 가진 근로자에게 공개채용절차로 하겠다고 채용절차를 바꾸고, 그 채용절차를 진행한 결과 더 나은 근로자를 신규채용하였다면, 그 배제된 근로자는 갱신기대권을 갖는데도 불구하고 공개채용이라는 경쟁에서 다른 신규채용자보다 못하다는 점이 갱신을 거절당하는 데에 정당한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의문을 남긴다”고 했다. “대상판결은 경영해고 판단법리와 마찬가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즉 공개채용방식의 신규채용으로 채용방식의 전환이 그렇게 할 만한 경영상 내지 운영상 필요성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여 문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한 “대상판결을 잘못 반대해석하면 ‘사전 동의 절차를 거치거나 가점 부여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였다면 갱신기대권을 집단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공개채용절차가 허용된다’고 쉽게 오인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대상판결과 같은 사안에서 대법원은 오히려 △개별적 갱신기대권 배제는 정당한 이유 없다면 금지 △갱신기대권의 경영상 배제를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법리 수립 △가점 부여는 갱신 거절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지를 고려하는 요소로 참조 △신규 경쟁 채용방식으로의 전환에 관하여 근거 규정을 두었다는 점만으로는 갱신기대권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