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판례연구회가 지난 4월 21일, “기업결합에서의 ‘건점핑(Gun Jumping)’” 관련 해외 동향과 대표 판례를 짚어보고, 국내에 주는 시사점을 논하는 웨비나를 개최했다. 이 주제의 발표는 법무법인(유) 화우의 김효성 변호사가 맡았다.
■ 건점핑 규제 소극적이던 EU, 최근 몇 년 새 변화 보여
기업결합에서의 ‘건점핑’이란 “경쟁당국의 승인 이전에 기업결합의 전체 또는 일부를 이행하는 행위” 및 “경쟁당국의 승인 이전에 경쟁사업자인 기업결합 당사회사 사이에서 경쟁제한적인 합의를 하거나 가격 등 경쟁상 민감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를 말한다. 위의 것들을 ‘실질적 건점핑’이라고 본다면, ‘절차적 건점핑’이란 “기업결합 신고 의무의 불이행”을 일컫는다는 게 김효성 변호사의 설명이다.
건점핑 규제의 취지에 대하여는 “사전규제인 기업결합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경쟁제한성에 대한 심사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당해 기업결합이 부분적‧실질적으로 이행됨으로써 기업결합 심사를 형해화 시킬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함”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은 일찍부터 이러한 건점핑에 대해 적극적으로 규제를 한 반면, 유럽연합(EU)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입장인 것으로 해석돼 왔다. 김 변호사는 “다만 지난 2017년 5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건점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발언한 이후, 최근 몇 년 사이 EU에서도 적극적인 건점핑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공정거래법에서는 제12조 제8항이 관련 규정에 해당한다. 동 조항에서는 “공정위의 심사결과를 통지받기 전까지 주식소유, 합병등기, 영업양수 계약의 이행행위 또는 주식인수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는바, 이를 위반하면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김 변호사는 “공정위의 건점핑 규제는 공정거래법 제12조의 신고의무 위반, 신고 이후 거래종결에 국한된다”면서 “해외에서 주로 문제되는 경우인 경쟁당국 승인 이전의 실질적 이행행위(지배력 행사)나, 경쟁상 민감정보 교환에 관련된 규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대표 CASE ①- E&Y 판결(2018. 5. 31. Case 633/16)
김 변호사가 소개한 첫 번째 케이스는 Ernst & Young (이하 ‘E&Y’) 판결이다. KPMG DK는 글로벌 회계‧재무‧자문 그룹인 KPMG 인터내셔널과 협력계약을 체결하고 그 회원이자 독립된 회계법인으로서 덴마크에서 영업을 해왔다. 이 협력계약에는 조인트벤처, 파트너십 등의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이후 KPMG DK는 E&Y와 합병계약을 체결하면서(2013. 11. 18.), 위 계약 서명일에 “KPMG 인터내셔널과의 협력계약은 2014. 9. 30.까지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위 통보가 있은 후 KPMG 인터내셔널은 덴마크에 새로운 법인을 설립했다.
덴마크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은 2014. 5. 28.에 나왔다. 덴마크 경쟁당국은 “KPMG DK가 기업결합 승인이 있기 전인 2013. 11. 18.에 협력계약 해지를 통지한 행위는 기업결합 승인 이전의 이행행위로서 덴마크 경쟁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E&Y는 이 결정에 불복하여 소를 제기한바,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 기업결합규칙 제7조 제1항이 금지하는 결합의 이행행위에서 ‘결합’의 의미는 기업결합규칙 제3조에 따라 대상회사에 대한 ‘지배력의 지속적인 변동에 기여하는 행위’를 의미
△ 여러 거래가 조건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 이를 하나의 결합으로 볼 수 있고 그 중 일부의 이행행위도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만, 어떤 거래가 결합의 맥락에서 이뤄진 경우라도 지배력의 변동에 필요하지 않은 행위라면 제7조의 범위에서 제외(직접적인 기능적 연계 필요)
△ 어떤 거래가 시장에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는 제7조 적용 범위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기에 부족함
△ 기업결합규칙 제7조의 적용 범위를 넓힐 경우 EU기능조약 제101조 또는 집행규칙의 적용 범위가 줄어들 수 있으므로 기업결합규칙 제7조는 대상회사의 지배력 변동에 전체 또는 일부로, 사실상‧법률상 기여하는 행위에 대하여만 적용된다고 해석해야 함
△ 사안에서 E&Y는 협력계약 해지로 인해 KPMG DK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취득하지 못하였고, KPMG DK는 위 해지 전후 경쟁법적 관점에서 독립된 사업자로 존재하였으므로 위 협력계약의 해지는 기업결합규칙 제7조 위반으로 볼 수 없음
김 변호사는 이 사안에 대해 “기업결합규칙 제7조 위반의 판단기준과 EU기능조약 제101조와의 관계, 그리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판시가 주목된다”고 평하면서 “국내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위 판결이 의미 있는 기준이 되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 대표 CASE ②- Altice 결정(2018. 4. 24. CASE M.7993)
두 번째 케이스는 다국적 통신사인 Altice가 브라질 통신사인 Oi로부터 PT 포르투갈 지분을 양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문제된 사안이다. EU 집행위원회는 Altice 경영진이 기업결합 승인 전에 포르투갈을 방문했다는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지분 양수 계약의 건점핑 해당 여부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고, 조사 결과 기업결합규칙 위반으로 판단하며 합계 1억2450만 유로(한화 약 1673억392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집행위는 구체적으로 △계약의 특정 조항이 Altice가 PT 포르투갈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점 △Altice가 실제 PT 포르투갈의 일상적 사업활동에 관하여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점 △Altice와 PT 포르투갈이 상업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교환한 점 등이 건점핑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Altice가 불복함에 따라 현재 EU 일반법원(General Court)에서 다퉈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계약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서는 계약 체결 자체가 건점핑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집행위의 해석이 주목된다”고 하는 한편 “E&Y 판결 기준을 이 케이스에 적용해 본다면 Altice의 지배력 행사가 인정되는 행위들은 건점핑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민감 정보의 교환에 대하여는 집행위의 입장보다 법원이 좀 더 좁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한 “건점핑 이슈와 규제 필요성이 국내에서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공정위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단순히 해외 집행 동향을 살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내 집행의 필요성 및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공정거래법 제12조 제8항의 개정 및 관련 지침 도입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