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이사장은 “법학전문대학원은 지난 2009년 교육을 통한 법조인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출범한 이래 지난 12년간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고 하면서도,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 체제로의 전환에 맞게 변호사시험 제도가 설계되어 운용되고 있는지는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했다. 현재의 변호사시험 제도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표와 유리된 채 학생들로 하여금 수험 교육을 선호하게 만드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이사장은 “오늘 논의를 토대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도 변시 제도의 바람직한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현재의 법전원 교육, 우수한 교원이나 교과과정 아닌 변호사시험에 좌우된다”
천경훈 교수는 올해까지 총 10회 시행된 변호사시험이 법전원의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자질을 갖춘 법률가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변호사시험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지를 제안했다.
그는 먼저, 1993년 사법제도발전위원회에서 시작된 사법제도 개혁의 대장정이 2004년까지 이어지면서, 당시 법조인 양성제도의 단점으로 “△대학교육과 법률가 양성의 단절(법학교육 형해화, 법과대학의 고시학원화) △과다한 사법시험 응시생이 장기간 시험준비에만 매몰되는 폐해 △법조인들의 동류의식 및 폐쇄적 집단의식 형성 △국제경쟁력과 창의성을 갖춘 법률가 양성에 한계”가 지적된 점을 짚었다.
이어 “이러한 법조인 양성제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은, 그 교육이념을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고 전했다.
천 교수는 “법전원 출범 초기에는 법에 규정된 교육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우수한 교원 확보, 교재 및 교과과정의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나, 12년을 운영한 현재의 법전원 교육을 좌우하고 있는 압도적인 변수는 우수한 교원이나 교재, 교과과정이 아니라 변호사시험”이라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법전원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과목 이외의 과목은 거의 수강하지 않고, 변호사시험 과목에 대해서도 ‘수험적합성’ 요구가 강력하여 법전원의 많은 강의들이 비판적 사고와 토론을 강조하기보다는 판례의 요약전달에 치중하고 있으며, 심지어 학생들은 학기 중이나 입학하기도 전부터 학원이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로 법학 공부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어 문제”라고 했다.
■ 변호사시험 어떻게 나오길래...
현행 변호사시험은 공법, 형사법, 민사법, 선택법의 네 영역에서 기록형, 선택형, 사례형의 3유형으로 치른다. 사법시험 1차에서 평가했던 선택형과 사법시험 2차에서 평가했던 사례형, 사법연수원 1년차 시험에서 평가했던 기록형을 나흘 동안 한꺼번에 치르는 형태다.
천 교수에 따르면 사법시험보다 시험 범위는 다소 늘어났는데, 변호사시험 기록형의 소재가 되는 민사집행법, 형사특별법, 민사특별법, 개별행정법령 등은 사법시험에서 출제되지 않았던 영역이다. 특히 형사특별법의 수험상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또한 종래 사법시험 2차 시험 과목이 7개(민법, 헌법, 형법, 상법, 행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였던 데 비해 변호사시험은 이를 모두 포함하고, 사법시험 1차에서 선택형으로만 출제되었던 선택법 영역이 사례형으로 출제된다.
유형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택형 시험은 다섯 개의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출제된다. 천 교수는 “어떤 사실관계의 해결이나 추론을 묻는 것이 아니라, 판결요지를 변형한 진술 다섯 개를 제시하고 그 중 잘못된 것을 고르라는 것”이라면서 “해당 법리와 실무에 정통한 법률가도 앞뒤 정황이나 단서‧보완 없이 이 진술만을 읽어서는 OX를 쉽게 판별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즉 선택형 시험이 묻는 것은 판결요지의 암기 여부이고 학생들 또한 그에 정확히 대응하여 수험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사례형 시험은 공법‧형사법‧민사법 1500점 중 절반인 750점을 차지하고 있어 가장 비중이 높다. 천 교수는 “사례형이야말로 법률가의 능력을 측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라면서 “과거 사법시험의 7법 체제가 아니라 3법 체제로 출제과목을 변경한 데에는 실체법과 절차법, 헌법과 행정법, 민법과 상법 등 과목 간 융합출제가 바람직하다는 사고가 깔려 있었고, 특히 사례형이 그와 같은 융합출제의 모범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러 과목의 여러 쟁점이 외형상으로만 모여 있을 뿐 실제로 융합이 이뤄지지는 못하여, 오히려 개별 과목을 테스트하는 것만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게 천 교수의 평가다. 또한 설문 단위로 ‘융합’의 외관만을 추구하다 보니, 여러 분야의 법을 포함시키기 위해 다수의 ‘소문항’이 등장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지문도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기록형은 일정한 실무용 문서를 작성하게 하는 시험인데, 공법의 경우 헌법소원심판청구서, 행정소송에 관한 소장 및 집행정지신청서 등을 작성하고, 민사법은 소장, 반소장, 준비서면, 검토의견서 등을 작성하며, 형사법은 사건에 관한 검토의견서, 변론요지서, 항소이유서 등을 작성한다.
천 교수는 “우리 변호사시험 기록형의 모델이 된 미국 기록형(MPT)은, 각종 신청서 등을 작성하게 하는 경우에도 문서 작성례를 제공하므로 서식을 외울 필요가 없다”면서 “MPT에 합격하기 위해서 판례나 조문 등 개별 법지식을 암기할 필요가 없고, 그 분야에 어떤 쟁점이 있는지를 이해하면 족하다”고 했다.
■ “하위권 학생 걸러낼 정도의 변별력만 갖춘 출제면 충분하다”
천 교수는 변호사시험의 이 같은 경향이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분명히 있다고 전제했다. 첫째는, 압축적 교육과정과 압박적 변호사시험으로 인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기본적인 법 지식을 상당히 신속하게 익히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교수들도 과거 사법시험 시절에 비하여 경쟁과 압박에 훨씬 노출되어 입법・판례 등을 꾸준히 연구하고, 진도를 마치기 위해 신변잡담을 줄이는가 하면 더욱 효과적인 강의방법을 고민하게 된 측면이있다고 했다. 즉 교수들의 전반적인 강의 밀도와 질, 그리고 교육효과가 법전원 도입 후 훨씬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게 천 교수의 말이다. 그는 먼저, 현행 변호사시험 출제가 시험일에 임박한 시기, 법무부 법조인력과의 위촉을 받은 소수의 출제위원이, 외부와 접촉이 단절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평소에 출제방식을 연구하고 문제풀을 형성, 관리하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의사시험을 비롯한 의료인 자격시험의 경우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법’에 따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민간위탁을 받아 진행하며, 다수의 전담 연구인력이 지속적으로 문제은행을 관리하여 문제를 추가‧삭제‧변경하고 있다”면서, 변호사시험도 출제의 방향과 문제의 구성을 연구하고 문제풀을 형성 및 관리하는 전담 기구와 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나치게 판례에 경도된 출제, 피상적 암기 위주 출제도 문제로 꼽았다. 천 교수는 “학생들이 공부 시간의 대부분을 판례(실제로는 판결요지)를 외우는 데에 보내고 있다”면서 “주요 수험서에 언급된 학습대상 판례수를 조사해 보니 총 8,707개(민사법 2,334개/형사법 4,032개/공법 2,341개)”라고 했다. 이는 “학생들이 법적 사고를 연마하는 공부를 하기보다 판결요지를 얇고 넓게 암기해서 아는 척 답안지에 표출할 수 있는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현행 기록형 시험의 개선도 요구된다. 천 교수에 따르면 기록형 연습은 이론으로 익힌 법지식이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교육효과가 크고, 잘 설계하면 실무능력 배양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기록형 연습 및 평가는 개별 서류의 작성기술을 증진시키거나 지식을 테스트하기보다는, 주어진 자료를 활용한 쟁점 파악 능력 및 건전한 추론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어야 이상적이다.
현행 민사법 기록형 시험이 “가능한 한 패소하는 부분이 없게 하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게 천 교수의 주장이다. 상대방이 제기할 수 있는 항변, 재재항변까지 미리 고려하여 마치 판결문의 주문을 작성하듯 승소가 확실한 범위로 청구를 최소화하여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을 작성하도록 하는 것인데, 천 교수에 따르면 이는 채점의 편의를 위함이자, 사법연수원 민사판결문 작성교육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런 출제는) 변론주의에도 부합하지 않고,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소송실무와도 크게 달라서, 오히려 실무에 나쁜 습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계했다.
천 교수는 출제 개선에 대한 제언으로 “암기요구량 축소, 기본판례 활용, 중요 쟁점은 반복 출제, 선택과목 이수제, 선택형 시험의 경우 새로운 문제 유형을 개발하고 지식이 아닌 추론을 묻는 문제 확대, 사례형 시험의 경우 쟁점 및 소문항 숫자 축소‧쟁점발견형으로 재전환‧무리한 융합출제 지양, 기록형 시험의 경우 비중과 형식을 재검토하고 쟁점을 간소화하며 변호사실무에 부합하는 서면작성을 출제”를 말하면서 “일각에서는 이런 출제가 ‘변별력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할 수 있지만, 변호사시험은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3년 이상 전문교육을 받았음에도 변호사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시험이므로, 이런 출제로 하위권을 변별하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 “무비판적 판례 추종 현상과 송무만 중시하는 경향도 변호사시험에서 비롯”
천 교수는 변호사시험이 ‘판례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 현상’ 내지는 ‘판결요지를 절대시하는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또한 변시과목 일변도의 학습 편향을 가속화해 교육현장에 부정적이라고도 했다. 다양한 선택과목이나 심화과목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심화되어, 많은 법전원에서 기초법을 비롯한 이른바 비변시과목은 폐강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대부분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법학개론이 사라지고 법철학, 법제사 수강생이 줄어들면서, 법실증주의 vs 자연법, 구체적 타당성 vs 법적 안정성, 관습의 법제화 vs 외국법의 계수 등과 같이 학생들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는 단순히 이론으로서의 법학의 약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졸업생들의 실무능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에서 변호사의 진정한 실무능력은 판례를 많이 암기하고 기계적으로 서면을 작성하는 능력보다는, 쟁점파악 능력‧소통능력‧프로젝트 관리능력‧판단력‧공감능력 등이 될 것”이라면서 “법전원 3년의 교육으로 이런 능력들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이미 갖고 있는 이런 능력의 싹들을 법학교육을 통해 망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변호사시험 압박, 판례의 무비판적 추종, 기록형 시험에의 지나친 경도 등은, 학생들의 관심 영역과 진로 전망을 축소시키고, 법원에서 벌어지는 전통적 송무만이 법률가의 직역이라고 여기게끔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는 게 천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송무는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이지만) 변호사의 다양한 직역 중 하나일 뿐이고, 변호사의 직역은 송무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면서 “법학교육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시야를 ‘국내 송무’로 국한시키는 것은 법률가의 성장 가능성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