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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제도연구회] 200년 이상 배심재판 운영해 온 프랑스 형사사법제도, “국민의 사법참여 경험 적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크다”




배심제도연구회(회장 박승옥 변호사)가 지난 5월 28, “프랑스의 형사배심제도를 주제로 정기토론회를 개최했다이날 주제발표를 한 김종민 변호사는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ENM 장기 연수 및 주 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 법무협력관 파견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형사사법제도를 개관하고법무부 인권정책과장을 역임했던 시각에서 형사정책적 시사점과 정책의 현실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검토했다.

 

■ 프랑스 형사사법제도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김 변호사에 따르면프랑스 법원은 법무부에 소속되어 있고 프랑스 대혁명의 사법기능 분리 원칙에 따라 판결법원(juridiction de jugement), 수사법원(juridiction d’instruction), 검찰(mistère public)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수사법원은 법원과 검찰처럼 판결법원과 완전히 분리된 개념인데, 1심 수사법원인 수사판사(juge d’instruction) 및 석방구금판사(juge des libertés et de la détention JLD), 2심 수사법원인 고등법원 예심부(chambre d’instruction)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에도 있던 수사판사제도는 1808년 나폴레옹이 도입한 것으로독일은 1974년에 폐지했고이탈리아도 1930년 도입했다가 1989년 폐지했다프랑스 수사판사는 강제수사를 담당하며단순화하면 검사는 사법경찰 수사지휘수사판사는 직접수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검사와 수사판사의 직접 수사인력은 없고 사법경찰을 지휘해 수사하는데여기서 사법경찰은 검사와 수사판사의 보조자(auxiliaire)로서 독자적 수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2008년 기준으로 전체 형사기소가능 사건 중 수사판사의 예심수사(instruction)를 거친 사건은 전체의 1.56%에 불과한바이 때문에 수사판사 폐지론이 대두되어 있다.

 

석방구금판사는 2000년 형사사법개혁으로 무죄추정원칙 강화를 위해 신설됐는데피의자의 구금 및 구금 연장구속정지 등에 대한 심판 업무를 담당한다수사판사와 석방구금판사의 결정에 대하여는 2심 수사법원인 고등법원 예심부에 항고할 수 있다.

 

한편 범죄의 구분도 우리와 다르다프랑스는 범죄를 중죄(重罪 crime, 무기 또는 10년 이상 구금형), 경죄(輕罪 délit, 10년 미만 구금형 및 3,750유로 이상 벌금형), 위경죄(違警罪 contravention, 3,000유로 이하 벌금형. 1(38유로 이하), 2(150유로 이하), 3(450유로 이하), 4(750유로 이하), 5(1,500유로 이하재범은 3,000유로 이하))로 구분하고각 범죄에 대한 수사 및 소송절차관할 법원을 달리 정하고 있다.


중죄는 의무적으로 수사판사의 예심수사(instruction)을 거쳐야 하고고등법원에 설치된 비상설 배심법원인 중죄법원(Cour d’assies)에서 재판한다경죄는 선택적으로 수사판사의 예심수사를 거치며지방법원에 설치된 3인 합의 재판부인 경죄법원(Tribunal correctionnel)에서 재판한다위경죄는 지방법원 지원에 설치된 경찰법원(Tribunal de police)에서 재판하는데, 2017년까지는 지역간이법원(Tribunal de proximé)에서 1~4급 위경죄를 관할했으나 지역간이법원이 폐지됐다.

 

■ 프랑스에서의 국민의 사법참여’...형사뿐 아니라 상사법원노사조정법원서도 이뤄진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프랑스 형사배심제도는 1789년 프랑스혁명 후 1791년 7월 19일 및 22일 법률, 1791년 9월 16일 및 29일 법률로 그 근간이 마련됐다각 도청소재지에 형사법원(Tribunal criminel)이 설치됐는데재판장 및 3인의 판사, 12명의 판결배심원으로 구성됐다당초 기소배심과 판결배심이 도입됐으나 기소배심은 곧바로 폐지되어그 원인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김 변호사의 말이다.

 

1790년 8월 16일 및 24일 법률로 공공소추관(accusateur public)’ 제도도 도입됐으나 시행 과정에서 범죄예방과 처벌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어 1801년 1월 9일 법률로 폐지됐다공공소추관 제도는 시민은 그의 대표자를 통해 통치하는 것처럼소추권한도 그의 대표자를 통해 행사한다는 혁명 정신에 따라 시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했다.


중죄법원 배심원은 각 도의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23세 이상 시민 중에서 배심원 후보(liste de secession)를 추첨해 선정한다정부공무원이나 판사검사경찰교정공무원 등은 자격이 없으며배심원 후보 15명과 예비배심원 후보 10명 등 총 25명을 선정한다배심원 후보 및 예비배심원 후보에게는 30일 전에 소환장을 보내고 첫 기일에 재판장이 추첨으로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을 선정하는데추첨된 배심원에 대하여 피고인의 변호인은 4명까지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고검사는 3(항소심은 피고인 5검사 4)까지 거부할 수 있다배심원은 정당한 사유를 소명하여 배심원에서 제외해 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는데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배심원은 3,750유로(한화 약 509만원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배심원 재판은 각 사건당 재판기일(secession)이 2~3일 가량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구두심리주의이며수사기록은 재판장만 읽을 수 있고 2명의 법관도 열람이 불가능하다배심원은 당사자증인감정증인에 대해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질문을 할 수 있고유무죄 판단 및 양형 결정에도 관여하는데재판장을 포함하여 총 12명이 각 1표씩 투표권을 행사(비밀투표)한다. 2012년 1월 1일부터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피하기 위해 1심은 9명 중 6항소심은 12명 중 8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도록 개정됐다또한 같은 날부터 중죄법원이 유죄를 선고할 경우 유죄 이유를 명시하도록 했다.

 

이러한 중죄법원 재판은 1810~2000년까지 단심으로 운영됐으나유럽인권재판소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라는 판결을 받고 2000년에 순환항소(다른 에 설치된 중죄법원에서 항소심 재판)라는 방식의 항소제도를 도입했다.

 

2019년에 이르러서는 형사법원(Cour criminelle)이 신설됐는데배심원으로 구성되는 중죄법원 대신 5명의 직업법관으로 구성해 중죄 재판을 하도록 했다중죄법원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검사들이 중죄법원 대상 범죄를 경죄법원에 기소하는 관행이 있어온바이를 제도적으로 허용해 신속 재판을 도모할 목적으로 신설했다시범실시를 거쳐 2022년에는 전국 확대 실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신설 형사법원에서 재판하는 주된 범죄는 강간죄다은퇴한 판사도 형사법원 판사로 재판이 가능하다.

 

한편 프랑스는 형사 분야 외의 영역에서도 국민의 사법 참여가 이뤄지는 점이 주목되는데특히 프랑스의 역사적 유산과도 같은 상사법원(Tribunal de commerce) 및 노사조정법원(Conseil de Prud’homme)에서 이뤄지고 있다.

 

상사법원은 그 최초의 원형을 1419년 리옹에서 찾는다상인 및 기업 명부에 등재된 상인과 기업가들이 대표자를 선출하고그 대표자들과 상사법원 판사 및 전직 상사법원 판사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상사법원 판사를 선출한다임기는 4년이고 4회 연임이 가능하며최초 2년간 예비 상사법원 판사를 거쳐야 한다. 3인 합의부이고 재판장은 6년 이상 상사법원 경력 판사 중에서 선출하는데고등법원장이 자격 미달이라고 판단하면 불승인 할 수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총 847,805건의 사건이 접수되어 소송은 364,631항소율은 13.7%.

 

노사조정법원은 1200년 중세시대부터 이어져왔다선출된 사용자 대표와 선출된 노동자 대표로 구성되며임기 4년의 1심 법원이다노사단체협약 문제 등을 심리 및 재판하며, 2015년 기준으로 194,231건을 종결하고평균 소송기간은 13.7개월항소율은 64.5%.

 

■ 이상적인 제도정책 현실화하는 데는 비용과 사법자원의 효율적 배분 문제가 절대적


김종민 변호사는 “2000년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형사정책의 중요한 흐름은 신속절차 및 대체적 소추절차(poursuite alternative)의 대폭 확대라고 정리하면서이는 법원의 불필요한 사법적 개입으로 인한 비효율성형사재판의 장기화재판능력의 병목현상을 제거하여 국가형사사법 비용을 절감하고 한정된 사법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동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또한 법경제학적 관점을 형사사법에 도입하여 협상사법(justice négocié)을 전면 확대한 것도 지목했는데이에 대하여는 자백하고 증거가 이미 확보되어 양형 결정만 남은 사건은방어권이 보장되는 조건이라면 굳이 법원 재판절차를 거칠 필요 없다는 사고에 기초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의 제도들로는 1999년에 도입된 부담승인조건부 기소유예(composition pénale)’, 2004년에 도입된 미국식 플리바게닝’, ‘정액벌금제도’, ‘즉시기소 사건(comparution immédiate)’ 등이 있는바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제도들이다특히 즉시기소 사건은 절도 등 길거리 범죄를 신속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재범 이상 전과가 있고 현행범 체포나 충분한 증거 확보된 자에 대하여 체포 후 48시간~72시간 안에 1심을 선고하도록 한다.

 

김 변호사는 “200년 이상 중죄법원 배심재판을 운영해 온 프랑스가 2019년부터 직업법관 5명으로 구성된 형사법원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는 충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재판이 사건 당 2~3일씩 걸리는 경우가 많고배심원 소환이 쉽지 않아 재판이 적체되는 문제법정 증설과 배심원 수당 지급 등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또한 배심재판이 피해자보호 측면에서 부정적인 점도 지적됐는데살인 강간 등 사건이 사건발생일로부터 2~3년이나 지나서야 첫 기일이 진행되는 점언론에 보도된 중요 사건은 배심원들에게 선입견을 갖게 하고 여론재판 등의 우려가 생기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는 국민의 사법참여 경험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배심제 도입은 필요하고 매우 의미가 크지만이상적인 제도나 정책을 현실화하는 데는 비용과 사법자원의 효율적 배분 문제가 절대적이므로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프랑스의 운영 경험에서 나온 문제점들과 그 배경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고특히 우리나라는 언론과 여론 재판에 대한 우려로 국론이 분열하는 수준까지 이른 상황에서이런 점들이 배심제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객관적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아울러 상대적으로 국민적 저항감이 적고직업 법관보다 전문성이 더 요구되는 소년재판 등부터 시행해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배심재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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