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조세협회가 지난 5월 21일, “2021 국제조세법의 변화”를 대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옥무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법무법인 화우 고문)가 “미국 바이든 세제와 국제조세의 흐름”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고,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노미리 교수가 “Cross-border 기업구조조정에 있어서 이월결손금의 활용 -EU 합병지침, CCTB/CCCTB의 내용을 중심으로-”를 발제했다.
■ “새로운 세계적 조세질서에서는 각국의 공통된 정책목적이 우선시 되는 경향 있다”
옥무석 교수는 “바이든 정부의 법인세 개혁은 새로운 국제조세 질서의 형성이라는 긴 흐름에서 생각해 볼만한 화두”라며 “보통 정부가 새로이 들어서고 새로이 세제가 발표되면 관련세제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이 세수의 총량규모가 증가됐는지 감소됐는지, 이들 세수규모의 변화에 누가 직접 영향을 받는지에 주목하게 될 것이지만, 이러한 수량적 관점보다는 그에 포함된 새로운 세제의 질적 변화, 즉 새로운 세제를 선보이고 견인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세제를 심화하여 깊이를 더할 것인지를 살피면 이를 바탕으로 세제의 이면에 있는 경제현상이 진전 혹은 답보 아니면 후진의 길을 가고 있는지 진단할 수 있다”며 기조발제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먼저 국제조세의 과거와 현재의 큰 틀을 비교하며, “전에는 국제조세에서도 각국에 독자적인 재정고권을 인정하고, 조세를 규율하는 규범에서도 각국의 법률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되어 왔으며, 세제의 목적도 개별국가의 재정충당이라는 목적 외에 각국의 정책적·지도적 목적을 비교적 쉽게 실현하도록 우선시 되었으나, 새로운 세계적 조세질서에서는 규범형성의 의사반영 주체부터 개별국가보다는 경제블록(regional block), 그리고 다시 G20, G7으로 대표되는 세계국가와 OECD 등 세계기업들이 이끌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정책적 목적도 개별국가의 것 외에 세계 구성국가들의 공통된 정책목적이 우선시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옥 교수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공약으로 밝힌 2020년 미국대선세제의 함의는 △자유경제기조내에서 부의 분배의 합리화를 통한 중산층의 확장 △기업으로부터의 일자리 창출을 핵심과제로 설정 △재정기조의 수정을 통한 부의 계층별재분배기능의 강화- 특히 오바마 케어의 복원을 위한 신세원의 발굴과 강화 △경제와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 연대성의 강화 정도로 요약된다. 바이든 세제가 특히 국제조세에서 가지는 함의와 관련하여서는 “국제조세는 미국 내 투자(inbound investment)의 지원세제와 미국 외 투자유출방지, 특히 고용창출기업의 해외유출방지(outbound investment)에 초점이 있다”면서 “바이든 정부의 세제정책에서도 조세회피의 방지를 통한 세원의 역외유출 방지가 지대한 관심사”라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 문제를 ‘오프 쇼어링’(off-shoring)과 ‘해외 수익 이전’(profit shifting) 방지라는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적 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자국내 생산기반 확충과 자국의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데 주안을 둔 정책으로 이해되고, 국제적인 연대성 즉 ‘전 세계가 같이 사는 문제’의 관점에서는 상대국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다는 게 옥 교수의 말이다.
■ “글로벌 연대성 실천을 위한 세제인 ESG 세제 등에 관심 더욱 증대될 것”
옥 교수에 따르면, 지금은 ‘유해적 조세경쟁시대’에서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행위) 세제 시대’로 전 세계 조세흐름이 옮겨져 와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국제조세의 관심사는 이전가격세제로 수렴되고, 대부분의 실무상 국제조세의 문제는 모두 이전가격의 문제로 해결해 왔다.
BEPS 세제는 G7, G20 체제에서 OECD조세위원회의 위상과 기능을 부각하는 한편 세제의 형성도 최소한 G7의 합의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국제조세의 중요한 법원들이 합의에 의해 실현되는 과정을 거치며, 과거 특정국가의 과세권이 서로 양보‧조정되는 방식을 통해 형성된 합의가 연성법(soft law) 형식으로, 그리고 각국이 동시에 자국법에 반영해 시행하는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 합의방식이 다수의 다자간 조약의 형태로 나타나는 점도 주목된다.
옥 교수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1920년대 국제조세의 중요한 중심 원칙인 독립기업의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미국이 주도적으로 정립하던 과거에 비하면, 앞으로 세제의 대미 의존도는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한편 “글로벌 연대성 실천을 위한 세제인 ESG 세제와 회계, 탄소세, 우주세, 가상화폐와 같은 새로운 금융상품과 구글세에 대한 과제연구, 그리고 기후변화와 대재해 대비를 위한 탄소세의 구조화 등에 대한 관심은 더욱 필요하고 증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하여 국제적 세원 분배 다툼이 발생할 때 문제를 해결할 주도자(catalisator)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와, 세원분쟁에 대비한 다양한 수단의 강구 및 조세중재 상시화에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조세중립성 확보하면서 기업 영업활동 수월하게 하는 EU 지침들
우리나라는 2012년 상법 개정으로 삼각합병을 도입함에 따라 삼각합병으로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과 합병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기업이 진출하는 국가에서 삼각합병을 허용한다면 사실상 국제적인 합병이 가능하다. 노미리 교수는 “기업인수 및 합병에서는 투자수익률의 제고가 중요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절세하는 방안이 강구되는데, 이때 고려되는 것이 기업의 법인세를 직접적으로 절감하는 효과가 있는 이월결손금”이라면서 “실제로 다국적기업들은 aggressive tax planning의 일환으로 결손금을 적극 활용한다”고 전했다.
노 교수는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 간 합병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예로 EU를 들면서, “EU는 회원국들의 기업 간 합병을 허용하고, 특히 EU 회원국 기업 간 구조조정이 있을 때 조세중립성을 지키면서도 회원국의 과세권을 보호하고자 1990년부터 Merger Directive(이하 ‘합병지침’)를 시행하는 한편, 2016년 EU 집행위원회는 과거에 제안한 바 있는 CCTB(‘Common Corporate Tax Base, 공동 법인세 과세표준, 이하 ‘CCTB’)’/CCCTB(Common Consolidated Corporate Tax Base, 공동 통합법인세 과세표준, 이하 ‘CCCTB’) 지침안을 다시 선보였다”고 했다. EU합병지침, CCTB/CCCTB 지침안의 공통점은 둘 다 기업의 결손금 공제의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세계화 및 전자상거래의 발달로 인해 기업의 영업활동에서 국가 간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는데, 이 점을 반영하여 조세중립성을 확보하면서 기업의 영업활동을 수월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위 EU 합병지침과 CCTB/CCCTB 지침안의 취지라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기업의 세계화, 전자상거래는 국제적인 추세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 “EU 역내 기업 간 합병을 다룬 합병지침과 공식배분법을 골자로 하는 CCCTB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우리나라 조세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자상거래 발달, 기업 세계화 등 추세...한국도 EU 지침에서 시사점 얻어야”
노 교수가 소개한 위 지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합병지침은 EU 역내 기업 간 구조조정에도 조세중립성이 필요하다는 점에 기인하여 제정됐는데, 자본이득의 과세이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2016년 법인세 개혁의 일환으로 선보인 CCTB와 CCCTB는 그 주요 특징을 아래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바, CCTB의 적용을 받는 기업은 CCCTB의 적용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CCTB와 CCCTB의 내용은 동일한 부분이 많다.
① CCTB/CCCTB 시스템은 EU 회계시스템으로 널리 사용되는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IA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과 공식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고,
② CCTB/CCCTB의 과세표준은 소득에서 과세가 면제된 소득, 공제 가능한 비용 및 기타 공제 가능한 항목을 차감한 금액으로 계산하며,
③ CCTB/CCCTB는 외국 소득(foreign income) 및 투자소득에 대한 면세제도(participation
exemption)를 가지고 있어 이들은 과세표준에 포함되지 않고,
④ CCTB/CCCTB는 성장과 투자 및 R&D 비용에 대해서 별도로 공제(Allowance for Growth and Investment and Super Deduction for R&D expenses, AGI 공제)하는 제도가 있으며,
⑤ CCTB/CCCTB는 Cross-border 결손금 공제(loss relief)가 있어, 과세연도에 발생한 결손금은 이월되고 다음 해에 공제될 수 있는 점이 그 특징이다.
한편 공식배분법(formulary apportionment)에 관한 내용은 CCCTB에만 있는데, 기업의 영업 활동 외에 다른 일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을 감소시키고, EU 내에서 기업의 영업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제안됐다. 공식배분법은 cross-border 그룹에 속하는 EU 기업들을 조세목적상 하나의 독립체(entity)로 보고, 통합된 과세표준을 분배하는 공식이다. EU에서 공식배분법이 주장된 배경은, EU 역내 다국적 기업들의 지역적 통합이 급속히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회원국별로 상이한 세제를 운영함에 따라 지출되는 순응비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EU 합병지침이 cross-border 기업구조조정에서 결손금의 공제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점과 CCCTB를 도입한 기업에게는 국경을 불문하고 이월결손금의 공제를 인정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할 때, 우리나라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제도는 연결납세제도”라면서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연결납세제도는 그 적용범위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위 제도가 활발하게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행 법인세법은 연결납세제도의 적용범위를 100% 완전지배의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연결납세제도의 적용범위를 미국처럼 모법인이 자법인의 지분을 80% 정도 보유해도 가능한 것으로 요건을 완화하거나, 일정한 경우 예외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연결납세제도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전자상거래의 발달, 기업의 세계화 등의 추세로 인하여 한국 역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장차 EU처럼 공식배분법의 도입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EU에서 논의되고 있는 CCTB/CCCTB의 추이를 지켜보고, 앞으로 CCTB/CCCTB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식배분법은 다국적기업이 회계자료를 바탕으로 개별 자회사들에 배분될 소득을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기 때문에, 누구든지 공식에 따라 동일한 과세금액을 산출할 수 있고, 과세금액에 대한 납세의무자의 예측가능성 및 명확성을 제고시키는 점과 복잡한 국제조세 체계를 단순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