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헌법학회(회장 임지봉 교수)와 국회입법조사처(처장 김만흠)가 지난 6월 1일, “국민통합과 헌법개정”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고려대 김선택 교수가 “민주적 개헌논의의 헌법적 조건”을, 연세대 전광석 교수가 “헌법기능과 기본권 질서, 헌법개정의 방향”을, 서울대 송석윤 교수가 “헌법개정과 정치개혁”에 대해 발제했다. 학회의 총무팀은 지난 5월 14일부터 9일간 한국헌법학회원 대상으로 진행된 ‘헌법개정에 대한 회원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헌법학자 76.9% 개헌 찬성하지만...“최근 헌법개정 논의 국민통합에 기여하지 못했다”
한국헌법학회 회원 대상 설문조사는 총 95명의 유효한 응답으로 이뤄졌다. 응답자는 남성이 71.6%, 여성이 28.4%였으며, 연령대는 높은 비율순으로 40대가 53.6%, 50대가 28.4%, 2~30대가 12.7%를 차지했다. 현재 소속은 대학이 71.6%, 연구기관이 13.7%, 국가기관이 10.5% 순이다.
설문과 응답비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최근의 헌법개정 논의가 입헌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응답은 긍정(매우 그렇다+그런 편이다)이 46.3%, 부정(전혀 그렇지 않다+그렇지 않은 편이다)이 28.4%로 나타났다. 반면 “2. 최근의 헌법개정 논의가 국민통합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응답은 긍정(매우 그렇다+그런 편이다)이 20.0%, 부정(전혀 그렇지 않다+그렇지 않은 편이다)이 47.4%로, 긍정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설문 1.에 비해 낮았다. “3. 헌법학계에서 헌법개정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충분했다고 생각하는지”의 설문에 대한 응답은 긍정(매우 그렇다+그런 편이다)이 37.9%, 부정(전혀 그렇지 않다+그렇지 않은 편이다)이 30.5%였다.
현행 헌법 개정에 얼마나 찬성하는지를 묻는 설문에 대하여는 “매우 찬성한다”가 19%, “찬성하는 편이다”가 57.9%,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가 12.6%, “전혀 찬성하지 않는다”가 10.5%로, 찬성 응답자의 비율이 과반을 넘었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높은 비율순으로 “①새로운 기본권 등 인권보장 강화를 위해”, “②대통령 또는 국회의 권한이나 임기 조정을 위해”. “③공정 등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가치 제시를 위해”가 선택됐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그 높은 비율순으로 “①현재의 정치적‧사회적 갈등은 헌법 해석과 제도 운영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②개헌의 동기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집중됐기 때문에”, “③개헌논의가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에”가 선택됐다.
응답자들은 “2017년 추진된 헌법개정이 완료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높은 응답순으로 “①정당의 당리당략적 접근”, “②국민 공감대 형성 부족”, “③주요 정당 간 합의 부재”를 꼽았다. “헌법개정이 다시 논의된다면, 논의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높은 응답 순으로 “①국민 여론 수렴”, “②주요 정당 등 정치세력 간 조정과 합의”, “③개헌안의 완성도”가 지목됐다. 가장 바람직한 헌법 개정안의 발의 방식에 대하여는 높은 응답순으로 “①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통한 논의와 발의”, “②정당 및 시민사회 각각의 헌법안 작성과 협상을 거친 국회 발의”, “③‘시민의회’ 방식을 통한 국민의 직접 참여와 논의 결과대로 국회 발의”가 선택됐다.
■ 김선택 교수, “1987헌법…국민직선‧대통령 5년 단임 제외하면 62년‧72년 헌법과 같다”
김선택 교수는 “1987년 개헌은 대통령 국민직선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것이며, 그 밖의 쟁점은 주로 1962년 제3공화국헌법 체제를 따라 결정됐고, 일부는 1972년 유신헌법 내용도 그대로 유지되었다”면서 “1987년 체제는 그 헌법이 추구했던 좁은 목표, 즉 대통령 국민직선과 5년 단임제를 통해 권력의 인격화와 장기집권이라는 과거 한국헌정의 적폐를 청산하는데만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정도만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혹은 최소민주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초법적이고 일방적인 통치의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임기말이 좋지 않았던 원인도 여기서 찾았다. 1987년 체제의 실질이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 즉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1987년 이후 현재까지의 개헌논의를 돌아보면 아직도 정치인들은 권력구조를 어떻게 하고, 권력의 임기를 어떻게 연장하고,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등, 권력이 아니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서 “헌법을 단지 ‘권력을 얻기 위한 게임의 툴’로 인식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은 국민의 것이고 개헌은 국민의 몫이므로, 국민의 의사를 모으는 국민합의개헌만이 정당한 개헌방식”이라고 주장하면서, “국회와 정부는 자신의 임기와 상관없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의사가 헌법으로 성숙될 수 있도록 국민합의기구와 국민합의절차를 입법하고 이를 지원하는데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광석 교수, “헌법개정은 규범적 접근과 정치적 접근이 함께 필요한 의제”
전광석 교수 또한 현행 헌법에 대해 김선택 교수와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1987년 헌법은 권위주의의 과거 극복과 권력구조의 단편적 전환 외에 헌법의 기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못했고, 미래를 지향하며 숙고하는 과정 없이 절차적으로도 폐쇄된 정치공간(이른바 ‘8인 정치회담’ 혹은 ‘4인 정치회담’)에서 타협한 결과”라고 했다. 이 때문에 헌법의 편제, 기본권 질서, 국가기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이전의 규정이 대부분 그대로 이어졌고, 부분적으로는 헌법기관이 제도적으로 변화했지만 이와 정합성이 없는 구성 방법이 그대로 유지됐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87헌법이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헌법재판소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지만, 기존 헌법의 헌법위원회에서 위원장을 위원 중에서 임명하던 규정이 그대로 유지된 것을 들었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공백으로 남았고 이에 관한 규범은 계속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설명이다. 기본권 질서에 있어서는 사회경제적 및 실질적 불평등, 정보사회, 외국인의 지위, 지속가능성의 의제 등과 관련한 기본권의 사각지대가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것도 문제로 들었다.
전 교수는 “헌법개정은 규범적 접근과 정치적 접근이 함께 필요한 의제”라면서, 헌법개정에는 이 두 가지 점이 특히 숙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규범적 기본질서이면서 동시에 현재 및 미래질서를 지향하는 우리 헌법의 유형적 특징에서 보면, 기존의 국민적 합의나 헌법재판 등 공적 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기본권을 헌법의 기본질서에 보충하는 개정은 정치적 안정성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장점이 있다고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헌법개정은 헌법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예정된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헌법개정이 국민통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며, 새로운 분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헌법개정의 의제를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국민적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신중한 관점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 송석윤 교수, “공무원 정치적 중립 등 헌법 규정, 다원적 입헌민주주의와 모순”
송석윤 교수는 헌법개정의 청사진으로 ‘군주제적 대통령제의 잔영 극복’ 및 ‘연립형 대통령제’를 제시했다. 권위주의적 대통령제의 잔재를 극복할 구체적 조치로서는, 헌법에서 ‘국가원수’라는 단어를 삭제할 것과, 공무원이 원한다면 정당과 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냈다. 특히 현행 헌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직업공무원제도 규정에 대하여 “공무원을 그 직무를 넘어서 인격적 차원에서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라고 평하면서 “다원적인 입헌민주주의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제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다른 정당들과 협력하여 원내 과반수의 지지에 기초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정치의 일상이 된다면 우리의 입헌민주주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정치질서와 관련된 제도개혁의 성패는 제도의 내용 뿐 아니라 그 운영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정치권과 일반국민들 사이에서 그 취지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정부형태의 변화에서는 민주성과 통치가능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입헌민주주의를 정상화하고, 보다 다원적이면서도 구심력 있는 정치제도,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송 교수는 “비례대표제를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기초로 삼으면 소수정당도 지지기반에 비례하여 의석을 얻게 되므로 국민의 의사가 보다 폭넓게 반영될 수 있다”고 하는 한편 “(연립형 대통령제에서는) 하나의 정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획득하는 상황이 실질적으로 배제됨으로써 타협과 협력에 기초한 정치의 가능성이 열리고, 특히 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정당이 단독으로 원내 과반수를 점하여 행정부와 입법부가 상호 봉쇄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