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법원‧대전가정법원 서산지원 고유강 판사가 지난 5월 발간된 ‘사법정책연구원 해외사법소식’ 제132호에서, 미국 특허법제에서 어떤 발명이 특허대상적격성을 지니는지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하여 특히 컴퓨터프로그램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이정표 역할을 한 주요 판결들을 소개했다.
고 판사에 따르면 미국의 확립된 판례법 이론은 자연법칙(laws of nature), 자연현상(natural phenomena), 그리고 추상적 아이디어(abstract idea)는 특허대상적격성 있는 발명의 범위에서 제외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판례법 이론이 컴퓨터프로그램이나 생명공학과 같은 당대의 새로운 기술발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고 판사는 “새롭게 개발한 발명을 특허권을 이용하여 일정 기간동안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기대는, 다국적기업들의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 생명공학과 컴퓨터프로그램 분야에서 거대한 자금력과 인력 등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도록 하는 중요한 유인으로 기능한다”면서 “특히 최근 생명공학과 소프트웨어의 융합 분야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분야가 장래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허제도의 적절한 규율을 통해 신기술의 발전을 촉진할 필요성이 강조된다”고 말했다.
■ 생명공학‧컴퓨터 프로그램 분야 특허대상적격성 판단에 관한 대표 판례
생명공학 분야에서 특허대상적격성이 부정된 대표 사례는 “Funk Bros. Seed Co. v. Kalo Inoculant. Co., 333 U.S. 127 (1948)”이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특정 박테리아 종 사이의 호환성은 자연법칙으로, 출원 대상이 된 혼합물은 그러한 자연법칙에 따라 혼합한 것이어서 기술적 성과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발명의 결과는 아니어서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할 수 없고, 이러한 출원에 특허를 부여할 경우 자칫 자연법칙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후 “Diamond v. Chakrabarty, 447 U.S. 303 (1980)” 사건에서는 “자연현상이나 추상적인 아이디어, 또는 새로이 발견된 광물은 특허대상적격성이 없지만, 살아있는 미생물이라 하더라도 인공적으로 가공된 미생물은 자연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특허법 제101조의 ‘제조물’이나 ‘합성물’에 해당할 수 있어 특허대상적격성이 있다”고 판시하는 변화를 보였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Parker v. Flook, 437 U.S. 584 (1978)” 사례에서 “신규성이나 진보성이 있는 다른 요소가 있지 않는 한, 수학적 공식이나 알고리즘을 단순히 활용하는 행위만으로 특허대상적격성이 없는 수학공식이 특허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한 판시가 있다.
이후 “Diamond v. Diehr, 450 U.S. 175 (1981)” 사건에서 “출원에 수학공식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특허대상적격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거나, “State Street Bank and Trust Company v. Signature Financial Group, Inc., 149 F.3d 1368 (Fed. Cir. 1998)” 사건에서 “컴퓨터프로그램이 유용하고, 실재하며 구체적인(useful, tangible and concrete)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하는 법리를 제시하다가, “Bilski v. Kappos, 561 US 593 (2010)” 사건에서 다시 부인하는 판단을 했다.
Bilski 사건에서 문제된 출원은 선물옵션 거래에 있어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법에 관한 것인데, 원심인 연방항소법원은 “기존의 연방대법원 선례에서 제시된 ‘기계/변형 판단기준(machine-or-transformation test)’에 따르면 ①특정한 기계나 장치와 관련되거나, ②특정한 물건을 다른 상태나 물건으로 변형하는 경우 특허대상적격성이 있다”고 하면서, 이 사건 출원은 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므로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연방대법원 역시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원심법원의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다만 ‘기계/변형 판단기준’이 특허대상적격성 판단에 있어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 논란 많은 연방대법원의 “Alice/Mayo Test(2단계 판단기준)”
고유강 판사는 “미 연방대법원은 특허대상적격성과 관련하여 전환점이라고 부를 만한 두 판례의 이름을 따 ‘Alice/Mayo Test(2단계 판단기준)’를 확립했는데, 이 기준은 학계나 산업계 모두에서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하는 기준이 너무나 모호하고 엄격하여 새로운 기술의 연구‧개발과 이를 위한 투자심리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시기적으로는 Mayo 사건(Mayo Collaborative Services v. Prometheus Labs., Inc., 566 U.S. 66 (2012))이 먼저다. Prometheus사는 크론병을 비롯한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데에 사용되는 면역억제제(thiopurine drugs)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출원은 대사량(metabolite levels)에 따른 약품의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방법으로, 환자의 혈액 내 대사량을 검사한 다음, 검사결과의 대사 농도에 따라 면역억제제 투약량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Prometheus가 출원한 방법이 특허대상적격성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이 사건 청구범위는 출원 당시 이미 알려져 있던 혈액 내 대사 농도와 그에 따른 면역억제제의 작용효과, 즉 인체 내에서 벌어지는 작용에 관한 자연법칙을 담은 것일 뿐 그 어떠한 구체적인 응용방법도 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다음 단계로서 문제된 출원이 ‘발명적 개념’을 담고 있는지를 심사하면서 “발명적 개념은 특허의 요소나 요소들의 결합이 자연법칙 자체에 관한 특허보다 상당히 더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특허가 발명적 개념을 담고 있다면 자연법칙을 청구항에 포함시키더라도 특허대상적격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 청구범위인 의사들의 검사 및 투약방식은 같은 분야 연구자들이 일상적, 기계적으로 해오던 전형적인 절차(well-understood, routine, conventional activity)에 불과하고 달리 자연법칙의 단순한 적용을 넘어선 발명적 개념을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사실상 자연법칙자체에 관한 특허나 마찬가지”라며 특허대상적격성을 부정하는 결론을 냈다.
Alice 사례(Alice Corp. Pty. Ltd. v. CLS Bank International, 573 U.S. 208 (2014))에서는 결제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Alice사의 특허출원이 문제됐다. 청구항은 ①금융채무(financial obligation)를 상호 교환하는 방법 ②위 채무 교환 방법을 수행하도록 설정된 컴퓨터 시스템 ③위 채무교환 방법을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 코드를 탑재한 컴퓨터 저장매체로 구성됐다.
연방대법원은 “Alice의 출원은 특허대상적격성을 결여한 추상적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어서 특허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면서, Mayo 사건에서 언급된 ‘발명적 개념’에 관한 2단계 판단기준을 재확인했다. 첫째는 문제된 출원이 자연법칙이나 자연현상, 추상적 아이디어에 관한 것인지를 검토하는 단계인데, 여기서 ‘아니오’란 결론이 나오면 일단 특허대상적격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예’라는 결론이 나오면 다음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다음 단계는 청구항의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순서를 매긴 조합으로 고려했을 때 출원의 성질을 특허대상적격성이 있는 것으로 변형시키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다.
연방대법원은 Mayo 사건의 판시를 인용하며 “이미 관련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well known in the art) 방법에다가 전형적인 절차(conventional steps)를 일반적인 수준에서 결합한 것만으로는 발명적 개념에 따른 변형을 인정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언급하면서, “이 사건에서 2단계 기준을 적용할 경우, Alice사가 출원한 방법은 추상적 아이디어에 관한 것에 해당하는데 위 방법은 일반적인 컴퓨터의 활용(generic computer implementation)에 지나지 않아 추상적 아이디어를 특허대상적격성 있는 발명으로 변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lice 판결은 Mayo 판결의 ‘발명적 개념’을 기초로 한 2단계 판단기준이 전통적인 판례법상 예외 유형 중 자연법칙뿐 아니라 추상적 아이디어 등에까지 일반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밝힌 점에서 전환점으로 새긴다.
고 판사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은 Alice/Mayo Test를 번복하기 위한 관련 사건들의 상고허가(certiorari)를 여러 차례 불허해왔고, 당분간 특허대상적격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Alice/Mayo Test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