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법학연구원(원장 박동진 교수)이 지난 6월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연세법학 백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연세법학, 또 다른 백 년- 진리‧자유와 법학”이라는 대주제로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는 다양한 법 분야를 망라하여 총 10개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
전지연 백주년기념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이번에 논의되는 주제들은 모두 우리 법의 지평을 뒤흔들 거대 담론들로서, 연세법학이 앞으로의 100년에 지향할 분야별 대과제이자 연세법학의 또 다른 100년을 알림과 같다”고 소개했다.
■ “기존 실무‧이론 교정하며 객관적 타당성 강화해 나갈 때 법학이란 학문이 존재”
김상용 연세대 명예교수는 “기독법률가의 덕목으로서의 정의와 사랑”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법실증주의 악법의 시대상황에서 한국민의 고통을 덜고, 법실증주의와는 다른 인간적인 자연법에 의한 법학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선각자들이 기독교 사랑에 기초한 법의 구축을 위하여 법학교육을 시작한 것이 연희전문대학 법학교육의 시작이라는 것에는 남다른 뜻이 있다”고 했다.
그는 “연세법학의 시작은 먼훗날 반드시 도래할 시민사회 건설을 위한 자연법의 초석을 놓았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그 법학교육이념은 성서에 기초한 ‘정의와 사랑의 법학’이었다”고 전하면서, “기독법률가의 덕목이자 그들이 추구해야 할 법의 이상도 정의와 사랑이어야 하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법률가들이 앞장서서 법의 세계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환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법학도들이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기존의 실무와 이론을 교정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면서 바른 법해석을 찾아 끊임없이 객관적 타당성을 강화해 나갈 때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취지를 담아 “사실확정을 전제하는 형법이론과 사실미확정을 전제하는 형사절차의 조화”를 발표했다.
그는 발표에서, 공갈죄 사례를 통해 형법이론의 의미 확인을, 교사미수 사례를 통해 형법이론을 잘못 이해하여 빚어진 입법의 오류 확인을, 이론과 판례의 방법론적 시각이 드러나는 오상방위 사례를 통해서는 형사소송의 목적과 법적용의 특성 확인을 살펴보면서, “형법이론은 실정형법의 의미와 구조를 밝혀 이를 체계화함으로써 형법적용과 형사입법에 국가기관의 자의가 개입되는 것을 막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체계적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률해석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국가의 형사사법 작용을 통제하는 비판적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권순일 연세대 석좌교수는 “민주공화국과 법치주의- 미완의 과제인가”라는 발표를 통해 법치주의의 위기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우려를 전하면서, “우리 사회 법치주의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법치주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밝혔다.
그는 헌법 제1조 제1항을 비롯한 관련 헌법 규정들에 대한 헌법해석론을 통해 민주공화국과 법치주의의 관계를 살펴보고, 대한민국 건립과 재건 등의 역사적 배경을 아우르며 법치주의의 개념과 그 실천적 의미를 도출한바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의 국가형태로 천명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란 민주공화주의‧국민주권‧법치주의를 토대로 한 자주독립국가를 의미하고, 민주공화국은 곧 자유국가‧법치국가‧민주국가를 지향하는 정치공동체”라고 정의했다.
■ “회사제도 지배하던 주주지상주의 부작용 교정되어야”
함재학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국민주권과 대의제도: 이상인가 환상인가?”라는 발표를 통해 “국민주권이란 개념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대표자의 토론과 심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국민주권과 대의제도는 픽션과 팩트 사이 혹은 상징과 실재 사이의 간극과 긴장을 적절히 유지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함 교수에 따르면 국민의 주권의지는 대의제도를 통해서만 형성되고 확인되는 것이며, 국민주권과 대의제도는 일각의 주장처럼 상호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런 오해는 여러 나라에서 목격되는 포퓰리즘 정권의 포퓰리스트들이, 대의기관과 제도권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주권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겠다는 주장으로 득세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손창완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주식회사 제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회사 제도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공과를 살펴보고 미래를 논했다. 그는 “회사는 근대 최고의 발명이라고 말할 만큼 인류 문명의 진보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지만, 회사와 회사제도의 목적은 구분해야 한다”면서 “회사의 목적이 이윤추구인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회사제도의 목적은 공익의 증진에 있으며, 따라서 회사제도를 지배하던 주주지상주의에 의한 부작용은 교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주주지상주의를 대체하는 팀생산이론에 입각한 ‘이해관계자 지배구조’를 제시하며 “이해관계자 지배구조는 회사를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도구로 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에게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고, ESG도 확산된 주주가치에 근거하는 것보다는 이해관계자 지배구조에 근거를 둘 때 이론적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준기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국제경제분쟁해결제도의 미래와 전망: 국제법원의 등장이 국제중재에 미치는 함의”를 발표했다. 그는 “당사자 자치원칙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국제중재는 각 당사자가 분쟁해결을 판정하는 판정부 구성에 직접 참여하므로 중립성, 공정성 및 전문성이 담보되는 장점이 있어 오늘날 국제분쟁해결에서 선호되는 분쟁해결 방식”이라고 소개하는 한편 “전세계 주요 경제국을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창설된 국제상사법원과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양자간 투자법원이나 다자간 투자법원의 사례와 같이, 법원을 통한 소송과 판정부를 통한 중재의 경계가 점점 무의미해지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경제분쟁해결제도의 미래와 관련하여 김 교수는 “국제법원은 계속 진화일로에 있지만, 당사자 자치를 보다 존중하면서 융통성 있게 분쟁을 해결하는 판정부를 통한 중재가 가까운 미래에 분쟁해결영역의 대세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국제법원을 통한 국제소송과 국제중재가 상호 경쟁관계가 아니라, 공동으로 양성하면 상당한 비교우위를 누리는 신종 사법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빅테크 등 거대 플랫폼 기업 대응- 부러지지 않는 여러 개 화살처럼 종합적 대처 절실”
오병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제3의 재산권으로서 데이터권의 체계적 정립”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데이터를 둘러싼 법리가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법적 규율대상인 데이터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데이터들의 법적 성질이 매우 상이하고, 이미 서로 다른 법률과 법리가 정교하게 확립된 분야와 공백 상태에 놓인 영역이 섞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데이터’라는 단일 개념으로 통합적으로 고찰하려 했기 때문에 어려움과 혼란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그는 데이터를 ‘추출적 데이터’와 ‘창조적 데이터’로 유형화하고, 전자는 가역적인지 여부, 후자는 전통적 지식재산인지 여부에 따라 귀속이 결정되게 하여 데이터의 귀속을 권리관계로 다루되, 그 실체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절대권으로서의 데이터권’을 제안했다. 오 교수는 “데이터권의 수립을 통해 지금까지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데이터 일반에 대한 권리화를 실현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데이터 유통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형두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플랫폼과 법- 절전(折箭)의 교훈”이라는 주제 아래 빅테크에 대한 법적 규제 논의를 살펴봤다. 그는 “빅테크 법적 규제 논의에 대한 접근은 대체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면서, 첫째가 “기술발전과 혁신을 전적으로 밀어주고 그로부터 얻은 수익을 나누자는 일종의 ‘선성장 후분배’ 방식”이며 둘째가 “성장과 경제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특히 빅테크가 인간의 삶을 진정 풍요롭게 하는 것인가에 관한 본질적 질문 및 한 사회나 국가를 넘어 인류 전체와 미래 세대를 고려할 때 빅테크가 통제하는 세상을 수용할 태세가 되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남 교수는 “저작권법, 개인정보보호법, 경쟁법, 조세법, 노동법, 절차법 등 광범위한 법률문제의 중심에 빅테크와 거대 플랫폼 기업이 있음에도 개별 정부 기관이나 학자들은 각기 부처와 전문분야 별로 나뉘어 대응을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화살은 하나씩은 잘 부러져도 한 묶음일 때는 쉽게 부러지지 않으니, 종합적 접근과 대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빅테크에 대한 사후 규제의 한 방편으로 논의되는 데이터세에 대하여는 기본소득 재원 문제와 연계하여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김성수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Mayer vs. Vosskuhle- 행정법학의 통일장 이론은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발표를 했다. 그는 전통적인 Mayer의 행정법학 방법론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출현한 신사조행정법학을 살펴보면서, 양자 간 방식과 내용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보관계 혹은 그 이상의 통합적 구축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행정법학의 통일장 이론은 가능하고 또한 필요하다”고 결론내면서, “행정법학의 이론과 실제에서 현재의 상황을 최적으로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고전적 행정법학 방법론과 신사조행정법학을 적절하게 통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행정처분 등 행정과 정부가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이전의 조직과 절차, 정보와 재원의 활용 등 부분에 있어서는 신사조행정법학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와 방법론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고, 일단 행정과 정부가 일정한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그것이 법령과 헌법, 행정법의 일반원칙에 적합한지를 점검하는 동시에, 사법부 중심의 해석론에 매몰되는 것을 벗어나 입법을 통해 다시 행정법규의 조율, 협치, 절차, 정보 등의 흐름이 재편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