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사법학회(회장 석광현 교수) 산하 국제사법판례연구회(회장 장준혁 교수)가 지난 8월 2일, “인터넷 국가관할권의 한계에 관한 유럽사법재판소 Google 판결 및 Facebook 판결의 검토”를 주제로 정기연구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정선아 변호사가 맡았다.
정 변호사는 “최근 Google, Facebook, Twitter 등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이용자들이 급증하면서, 이에 수반하여 명예훼손을 비롯한 온라인 인격권 침해 사례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면서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입체적인 구제수단이 늘어나고, 유럽연합은 이른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개인정보처리자에게 정보 삭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이하 ‘GDPR’) 제17조에 명시적으로 도입하면서, 관련 유럽사법재판소 판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발표 배경을 밝혔다.
■ 잊혀질 권리 보장, 어느 범위까지 조치 요구할 수 있나…“Google France 판결”
Google France 판결(Google LLC, successor in law to Google Inc. v Commission nationale de l’informatique et des libertés (CNIL) (C‑507/17) [2019])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GDPR 제17조상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게 어느 범위까지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이다. 정 변호사는 “유럽연합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사안”이라고 소개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개인정보 국가정보처리자유위원회(Commission nationale de l'informatique et des libertés, ‘CNIL’)는 정보주체가 자기 이름의 검색결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 Google은 유럽연합 또는 그 회원국에서의 검색결과만 차단할 것이 아니라 Google이 운영하는 모든 최상위 도메인의 검색 서비스에 대해서도 해당 검색결과를 삭제할 것을 명했다. Google은 이에 따르지 않고 유럽연합 또는 그 회원국 내에서의 검색결과에서만 정보를 삭제하면서, 그 대안으로 geo-blocking 기술의 활용을 제시했으나 CNIL은 “이용자들이 이를 쉽게 우회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CNIL은 2016년, Google에 1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고, Google은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이에 프랑스 행정법원은 유럽사법재판소에 유럽연합법상 검색결과의 삭제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Google의 실무와 같이 유럽연합 내 또는 관련 회원국의 도메인에서만 삭제되는 것으로 충분한지에 대한 판단을 요청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EU 개인정보처리지침과 GDPR은 검색엔진 사업자로 하여금 전세계적으로, 즉 모든 도메인의 검색결과에서 정보주체의 개인정보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원칙적으로 오직 유럽연합 역내에서 시행할 것만 요구된다”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를 아래와 같이 설시했다.
첫째,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 중 일부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다른 접근방식을 취한다.
둘째, 개인정보 보호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근본적인 권리들과의 비교형량이 필요하다.
셋째, 개인정보 보호와 정보접근권 간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국가들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넷째, 유럽연합의 법은 유럽연합 외의 영역에서는 검색결과 삭제에 관한 상충되는 이익의 균형점이나 역외적 적용 범위에 대해 입법적으로 정의하거나 그러한 정의를 위한 협력 체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다만 “회원국의 법원 또는 규제기관이 개인정보보호와 정보접근권이라는 두 법익의 형량을 실시하여 전세계적으로 검색결과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 두었다.
■ Facebook 판결에서는 “전세계적 효력 갖는 게시물 삭제 및 접근차단 요구 명령도 허용”
유럽사법재판소는 위 Google France 판결을 선고한 지 일주일 만에 취지가 다소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Facebook 판결(Eva Glawischnig-Piesczek v Facebook Ireland Limited (C-18/18) [2019])을 선고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이 판결은 “이용자가 Facebook을 상대로 자신에 관한 명예훼손적 게시물의 삭제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경우, 유럽연합 회원국의 법원이 어느 범위까지 조치를 명할 수 있는지, 즉 해당 회원국 내에의 접근만 차단하도록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전세계적인 접근의 차단을 명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이다. 여기서는 개인정보 및 인격권의 보호에 관한 GDPR 제17조가 아닌, 명예훼손적 정보의 유통을 포함한 법 위반에 관한 전자상거래지침(Directive on electronic commerce) 제15조 제1항의 지역적 적용범위가 문제됐다.
2016년 오스트리아 국회의원이자 녹색당의 대변인이었던 Glawischnig-Piesczek은, 페이스북의 한 이용자가 자신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면서 “파시스트당의 부패한 머저리, 더러운 반역자” 등의 말로 비난하는 글을 게시하자 Facebook Ireland에 해당 정보의 삭제를 요청했다. Facebook Ireland는 삭제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그는 오스트리아 법원에 명예훼손적 정보를 차단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오스트리아 대법원은 유럽사법재판소에 해당 쟁점에 대한 판단을 요청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전자상거래지침이 법원의 명령의 지역적 한계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전세계적 효력을 갖는 삭제 내지 접근차단을 요구하는 명령도 허용된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개별 회원국은 자국이 전세계적으로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조치를 시행함에 있어 국제적 차원의 규칙을 고려하여야 한다”고도 판시했는데, 이에 대해 정선아 변호사는 “유럽사법재판소가 ‘국제적 차원에서 적용되는 규칙’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국제사법과 국제공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 ‘잊혀질 권리’ 규정 없는 우리나라, “해외 입법례 비교할 때 규제 강한 측면 있어”
우리나라는 GDPR 제17조가 정하는 ‘잊혀질 권리’에 기반한 정보의 삭제청구권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명예훼손적 정보인 경우, 이용자의 요구 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명령에 따른 조치에 관한 조항이 정보통신망법에 마련되어 있으며, 동법 제5조의2는 “이 법은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적용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역외적용도 허용하고 있다. 국내외 사업자의 역차별을 해소하고 국내법 집행의 실효성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2020년에 신설된 조항인데, 그럼에도 이 조항들의 구체적인 지역적 적용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정 변호사의 말이다.
정 변호사는 “이 조항의 신설 이전에 개최된 2018년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회에서, 역외적용이 가능한 행위유형의 범위를 특정하지 않으면 어떤 조항을 해외사업자에게 적용할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이 점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통신망법에 역외적용 조항이 없었던 때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에서 서비스가 제공되는 (또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해외사업자에게 관할권이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정보통신망법을 적용한 사례가 있지만, 2021년 7월 기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할 때 그 지역적 적용범위가 직접적으로 검토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입법례는 대체로 포털사업자 등의 민사책임의 면제 또는 감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역차별의 방지 차원에서 법에 역외적용과 국내대리인 조항을 추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어 국가관할권 행사의 한계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보이며,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직접 법익 침해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그러한 행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피해가 발생하면 가해자를 대신하여 피해자에게 신속한 구제를 제공할 것을 요구받고, 때로는 준사법기관처럼 법원이나 행정기관을 대신하여 조치를 집행하게 되는 독특한 지위에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대상판결과 같은 사안에서 이용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보를 삭제하거나 그러한 정보로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조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는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법익을 침해하는 정보를 직접 작성하여 플랫폼에 업로드한 가해자와 해당 플랫폼을 운영한 사업자는 달리 취급할 필요가 있고, 특히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우 우리나라 법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다른 국가의 법을 위반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도 있으므로, 사업자의 예견가능성을 고려해서 국가관할권의 불합리한 확대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복수국가의 관할권이 경합하는 경우, 이것이 해당 사업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 이용자가 한국법 조항을 근거로 미국의 사업자에게 자신에 관한 정보의 삭제를 요청하거나 한국 규제기관이 한국법 조항을 근거로 특정 정보의 삭제를 명하는 경우, 이를 이행하는 것이 미국법에 위반된다면 해당 사업자는 현실적으로 한국법을 준수하면서 미국법을 위반하거나, 미국법을 준수하면서 한국법을 위반하게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특히 명예훼손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이 사실의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국가가 드물기 때문에 다른 나라 법과의 충돌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 변호사는, “국내에서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사업자가 국내에 법인을 설립해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국내법인이 국내 서비스의 제공주체가 아닐 수 있다”며 “해외법인과 국내법인 중 어느 법인이 국내 서비스의 제공주체인지를 확인한 후, 그 회사와 소를 제기하는 원고 간 국제재판관할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변호사는 “국제재판관할 합의는 주로 관련 서비스에 대한 이용약관 중 분쟁해결조항을 통해 이루어진다”면서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이 연관된 소송에서는 관련 서비스 이용약관에 따른 합의를 소비자계약으로, 즉 이용자를 소비자로 보아 관련 국제사법 제27조상의 특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될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