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정웅석 교수)가 학회 산하 국제형사법연구회(회장 황철규 국제검사협회장)와 함께 지난 8월 20일, 월례세미나를 열고 “국제형사재판소의 최근 동향” 및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 추징 규정과 소급입법금지 원칙”을 논했다.
지난 2월부터 주 네덜란드 법무협력관으로 근무 중인 김지언 검사는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이하 ‘ICC’)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국내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응타간다(Ntaganda) 사건에 대한 ICC 판결을 짚어봤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신도욱 부부장검사는 올 초에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와 관련하여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입법적 노력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소급입법금지 원칙을 살펴보고, 미국의 제도 운용 상황에 비추어 우리나라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 제도의 개선 방안을 제언했다.
■ “ICC 천여 명 직원 중 절반 이상이 변호사…국내 관심과 인지도 높여야”
ICC는 2002년 7월 1일 발효한 로마규정에 따라 설립된 세계 최초의 상설재판소로, 현재 가입국은 123개국이며 우리나라는 2003년 가입국이 됐다. ICC는 가입국이 납부하는 분담금에 따라 운영되고, 당사국총회에서 판사와 소추관 선출 및 주요 법률 제‧개정을 담당한다.
김지언 검사는 “ICC는 소급효 논란 없이 집단살해나 전쟁범죄 등 중대한 국제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최초의 상설재판소”라고 소개하면서, 다만 “ICC가 각국의 형사사법체계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고, 해당 국가가 책임자를 기소하지 않는 등의 경우에 보충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설립근거 조항인 로마규정에 따라 ICC가 관할권을 갖는 범죄유형은 총 네 가지로, “①Genocide(집단살해죄) ②Crimes against humanity(인도에 반한 죄) ③War Crimes(전쟁범죄) ④Crime of aggression(침략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다. 김 검사는 “이 중 침략범죄는 로마규정 제정 당시 정의를 합의하지 못해 2010년 캄팔라 회의에서 재검토가 이루어졌는데, 여러 경과규정이 있어 효력이 발생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예정”이라고 했다.
김 검사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는 세 가지다. 당사국이 회부하거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회부하는 경우, 그리고 소추관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다. 소추관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에는 전심 재판부의 허가가 필요하며, 수사가 이뤄져도 곧바로 공소가 제기되지는 않고, 공판 전 변론절차를 열어 전심 재판부의 공소사실 인가를 얻어야만 사건이 본안을 다루는 제1심법원에 회부된다. 1심 이후의 절차는 국내 절차와 유사하다.
ICC의 구성은 크게 재판부(Chambers), 소추부(Office of prosecution), 사무국(Registry)으로 나뉜다. 재판부에는 18명의 재판관이 있는데, 현재 한국인으로는 정창호 재판관이 재직 중이다. 김 검사는 “ICC 전체에는 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변호사”라면서 “유럽권에서는 ICC 판결이나 소식이 자주 보도되는데, 국내에서는 관심과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며, “변호사나 예비 법률가들이 근무할 기회가 많으므로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아프가니스탄 사건, “국제형사재판소에 최대 시련 안겨줘”
김 검사에 따르면, ICC는 지난 19년간 30건의 사안을 다뤘고, 이 중 본안 판결 단계까지 이른 사건은 총 14건이다. 일부 유죄를 포함하여 유죄가 선고된 사건은 10건에 불과하고 네 건은 무죄로 나왔다. 기소되는 범죄 사실의 특성상 피해자가 수백 명에 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심리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는 대부분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중동 및 아시아 지역 사건은 4건으로,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필리핀, 팔레스타인 사건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아프간 파병과 관련하여 발생한 일련의 폭력사태를 지칭하는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ICC에 최대의 시련을 안겨준 사건”이라는 게 김 검사의 말이다. ICC의 수사대상에는 탈레반 반군이나 아프간 정부군뿐 아니라 미군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6월, 미군이 수사대상이 된 데 불만을 품고 당시 소추관이던 파투 벤수다에 대한 행정제재를 발표했다. 김 검사는 “새로 취임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4월 이 제재를 철회하긴 했으나, 미군 수사에 대한 ICC의 관할권에 대하여는 여전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다”고 했다.
필리핀 사건의 경우, 2016년경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마약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관련 수사나 체포 과정에서 용의자 2천여 명을 사망케 한 사안이다. ICC의 조사가 시작되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ICC 탈퇴 의사를 밝혔는데, 김 검사는 이에 대해 “탈퇴 효력이 발생한 2019년 이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하여는 관할권 행사가 가능하다”면서 “지난 5월 소추관이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전심 재판부에 허가 요청서를 제출했으므로 조만간 전심 재판부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성노예 문제에 관한 ICC의 판결 중 가장 의미가 큰 사건으로는 ‘응타간다(Ntaganda) 사건’이 있다. 김 검사는 “국내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다룰 수 있겠는가’라는 관점에서 주목받은 사건”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동안 ICC가 성범죄를 별도의 독립적인 범죄나 전쟁범죄로 의율하여 기소한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 일부 기소된 사건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ICC의 인식 변화’로까지 이야기된다”고 말했다.
■ 응타간다(Ntaganda) 판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하여 시사점 크다”
Ntaganda 사건의 피고인인 Bosco Ntaganda는 콩고의 Hema족과 Lendu족 간 종족 분쟁이 발생했을 당시 헤마족이 주축이 된 ‘콩고 애국자 연합(UPC)’ 산하 무장 단체인 ‘콩고 해방 애국군(FPLC)’의 부사령관이다. 토지 등 자원을 둘러싸고 발발한 이 분쟁은 주변국인 우간다와 르완다가 헤마족을 지원하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는데, 피고인은 비 헤마족인 민간인을 학살하고, 아동 병사(주로 15세 미만의 여성 소년병들)를 상대로 강간과 성적 노예화를 하는 등 18개의 인도에 반하는 죄 및 전쟁범죄로 기소됐다. 콩고 정부가 2004년, 관련 사태와 함께 이 사안을 ICC에 회부하면서 같은 해 수사가 개시됐으며, 피고인은 2013년 자수했다. 2019년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Ntaganda 사건에서 쟁점이 된 규정은 두 가지다. 전쟁범죄를 규정한 로마규정 제8조(2)(a)항 “제네바 협약의 중대한 위반 즉, 관련 제네바 협약의 규정에서 보호되는 사람에 대한 행위 중 다음의 하나- 고의적 살해, 고문 유사 비인도적인 대우 등”과, 제8조(2)(b)22호 및 제8조(2)(e) 11호의 “확립된 국제법 체제 내에서 국제적 혹은 비국제적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법과 관습에 대한 기타 중대한 위반, 즉 다음 행위 중 하나- 강간, 성적 노예화, 강제매춘 등”이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은 관할권 항변을 통해 “전쟁범죄의 피해자는 제네바 협약의 보호대상자, 즉 적대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자여야 하는데 본건 피해자들은 피고인과 같은 무장단체 소속이므로 피해자 지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검사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전쟁범죄 규범은 그 목적상, 원칙적으로는 적국 소속이면서 일정 요건에 속한 사람을 보호대상으로 할 뿐, 자기편에 속하는 사람은 보호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라는 국제재판소 선례의 설시들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1998년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에서 다뤄진 사건에서 재판부는 “같은 집단에 속하는 자에 대한 폭력행위는 국내법의 문제일 뿐 국제인도법으로 다룰 사안은 아니다”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ICC는 “국제인도법은 무력 충돌 상황에서 취약해진 개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도 포함하는 것이고, 로마규정 문언이 피해자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으며, 가해자와 동일한 집단에 속한 피해자를 보호범위에서 배제하는 국제법의 일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배척했다. 즉 “피해자들이 피고인들과 같은 집단에 속했어도 재판소의 관할권이 미친다”고 해석한 것이다.
김 검사는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행위가 아니어도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ICC의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는 ‘사법적극주의의 부당한 확대’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로마규정의 입법 목적 및 국제인도법의 최근 경향과 부합하며, 아동과 여성이 놓인 취약한 상황 및 가해자와 같은 집단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타당한 판결’이라고 반기는 목소리도 크다”고 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처벌할 때 쟁점이 될 것도 이 규정”이라면서, “2차 대전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본군의 한국인 성노예화는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에 대한 범죄여서 전통 국제형사법상 전쟁범죄로 구성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올 것인데, Ntaganda 사건에 대한 ICC의 위와 같은 해석은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과 같다”라고 평가했다.
■ 범죄수익 환수 위한 개정법들, 소급입법금지 쟁점에 계속 부딪히는데... 해법은?
신도욱 검사는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을 위한 법률 제·개정에 있어 소급 입법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쟁점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라면서, 전두환 前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집행 문제와 국정농단 과정에서 최순실이 취득한 범죄수익 환수 문제에서도 소급 입법 논의가 있었음을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목이 쏠리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에서는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고자 하는 입법적 노력을 하지만, 계속해서 소급입법 쟁점이 제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법이 적용되는 범죄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법으로는 ①형법 ②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③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④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⑤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⑥불법정치자금 등의 몰수에 관한 특례법 등이 있다. 위 각 법률은 적용 대상 범죄들을 한정적으로 나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범죄수익 환수의 필요성이 높은 어떤 현안이 발생하여도 위 관련법들이 규정한 전제 범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환수가 어려운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국회는 전제 범죄를 추가하는 형태의 개정안과 범죄수익을 소급하여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들을 발의하게 되는 실정”이라는 게 신 검사의 설명이다.
그는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은 형법상 몰수·추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범위가 넓고 그 절차도 별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면서, “범죄수익 환수 제도가 가장 선진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평가되는 미국의 경우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범죄자의 유죄판결을 전제로 하는 형사몰수(criminal forfeiture)만을 인정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유죄판결이 없더라도 물건에 대해 몰수할 수 있는 민사몰수(civil forfeiture)를 인정하고 있고, 소급입법금지 원칙이나 이중처벌금지 원칙 등의 위배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해당 제도의 법적 성질의 분석에서 출발하고 있다.
신 검사는 “(국내에서도)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의 독자적 제도 마련 및 그 법적 성질 규명에 관한 논의가 필수적”이라면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의 독자적 검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미국과 같이 그 법적 성질을 규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이렇게 법적 성질론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독립몰수제도 내지 민사몰수제도가 도입되면, 그에 따라 소급입법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법률적 혼란 없이 그 쟁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은 보안처분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전제로, 큰 방향에서 “①몰수를 형의 종류에 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의 개정 ②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의 독자적 규율 필요성 등을 고려한 관련법 통합”과 같은 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판례가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민사몰수의 소급적용을 인정하면서 그 법적 성질을 형벌적(punitive)이 아닌 회복적(remedial)인 성격으로 본 점도 향후 우리나라 제도 운용에 있어 참고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