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헌마125 기소유예처분취소- ‘중개보조원의 중개행위’ 해당 여부 사건
헌법재판소가 2021년 8월 3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공인중개사법 제19조 위반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혐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피청구인이 개업공인중개사 및 소속 중개보조원인 청구인들에 대하여 한 기소유예처분이,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청구인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인용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을 위 법 위반으로 인정한 기소유예처분에는 수사미진 및 증거판단에 중대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며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했다.
청구인 A는 개업공인중개사이고 청구인 B는 소속 중개보조원이다. 청구인들은 피청구인으로부터 “개업공인중개사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중개업무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됨에도, 청구인 A는 오피스텔 임대차계약을 중개함에 있어 청구인 B로 하여금 중개대상물을 중개의뢰인에게 설명하게 했다”는 범죄사실을 기초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청구인들은 이 처분이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며 그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행위가 공인중개사법 제19조를 위반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공인중개사법 제19조가 금지하는 ‘개업공인중개사가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중개업무를 하게 하는 행위’란, 중개보조원을 비롯한 무자격자가 실질적으로 중개업무를 행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시하거나 소극적으로 묵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개업무를 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면서 “청구인 B가 중개의뢰인에게 집을 보여주고 안내한 행위는 공인중개사법이 정한 중개보조원의 전형적인 업무로서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제2조 제6호)’에 해당되어 개업공인중개사의 성명이나 상호를 사용하여 직접 ‘중개업무’를 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위 오피스텔의 중개 의뢰 단계에서부터 계약 체결 및 그 이행 과정 전체를 놓고 볼 때, 청구인 A는 중개대상물의 현황과 계약의 조건 및 이행에 관한 중요하고 본질적인 사항을 직접 설명하였으며, 중개보조원인 청구인 B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중개업무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소극적으로 묵인하였다고 볼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2014헌마888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 부작위 위헌확인-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 부작위 위헌확인 사건
헌법재판소가 2021년 8월 31일,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피청구인 외교부장관이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데 대하여, 재판관 5인의 의견으로 각하결정을 선고했다. 재판관 4인은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입은 피해 중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하여는 법정의견과 같은 각하 결론에 찬성하지만,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하여는 피청구인의 위와 같은 부작위로 인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청구인들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의해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되어 동남아시아 각국에 위치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다가 종전 후 연합국에서 이루어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비씨(BC)급 전범으로 처벌받은 사람(이하 ‘한국인 BC급 전범’) 내지 그 유족들이다.
대한민국(이하 ‘한국’)은 1965. 6. 22. 일본국(이하 ‘일본’)과의 사이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을 체결했다. 청구인들은 자신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이 위 협정에 따라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이미 소멸되었다고 보는 일본 정부와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는 한국 정부 간에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므로, 피청구인 외교부장관은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안의 배경을 살펴보면, 일제의 한반도 강점기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부는 대규모로 발생한 연합군 포로들을 수용·관리하기 위하여 1941. 12. 육군성에 ‘포로정보국’을 설치하고 이듬해 5월부터 한반도에서 한국인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 모집했다. 약 3,000여 명의 한국인들이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됐고, 이들은 군무원의 신분임에도 부산에 있는 노구치(野口) 부대에 수용되어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은 뒤 동남아시아 각국에 산재되어 있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배치됐다. 한국인 포로감시원은 하급 군무원으로 일하면서 상관인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서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통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A급 전범은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및 일본의 도쿄 전범재판을 통하여 처벌받았고, BC급 전범은 연합국인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중국 등 해당 전범 피해자의 국가에서 이루어진 전범재판을 통해 처벌됐다. 한국인 포로감시원들도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연합국 국가에서 실시된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전범으로 인정되어 사형 또는 유기징역 등의 처벌을 받았고, 그 중 유기징역에 처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1950년 일본 스가모(巢鴨) 형무소로 이송되어 남은 형기까지 수감되거나 가석방됐다.
스가모 형무소를 출소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1955. 4. 1. ‘동진회’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기본적 인권 및 생활권 확보’ 및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국가보상 등을 받아내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 왔다. 일본 정부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내기도 했으나,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이를 이유로 보상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한국은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강제동원의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하고 이후 제정된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청구인들 중 일부에게 유족위로금을 지급하기도 했는데, 한국 정부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피해 보상 문제가 이 사건 협정과는 관련이 없고, 일본이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헌재는 이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피해를 크게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입은 피해 부분(이하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과 ‘그 밖의 일제의 강제동원에서 일제에 의한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 인하여 입은 피해 부분(이하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으로 나누어 보면서, 각 피해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했다.
재판관 유남석, 이선애, 이영진, 문형배 등 4인의 각하의견은 “국내의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국제전범재판소의 국제법적 지위와 판결의 효력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일제강점기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되어 제대로 된 조력을 받지 못하고 처벌을 받은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인정되지만,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유효하고,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을 받아서 생긴 한국인 BC급 전범의 피해 보상 문제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나 원폭피해자 등이 가지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청구권의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아서 이 사건 협정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하여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 해석 및 실시상의 분쟁이 성숙하여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며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설령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고 보더라도, 피청구인의 외교적 재량을 고려하면 피청구인이 그동안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해결 및 보상 등을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이상, 피청구인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자신의 작위의무를 불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관 이종석은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의 규정이나 헌법 전문으로부터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에 대해 부담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협정으로부터도 청구인들을 위해 협정상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으며,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피청구인이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는 각하의견을 냈다.
재판관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이미선의 반대의견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에서 법정의견과 견해를 달리했다. 반대의견은 “일제강점기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10대 후반 내지 20대의 어린 나이에 포로감시원으로서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제동원되어 동남아 지역에 있던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면서, 일본군 상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에 복종한 채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일본에 대해 일제에 의한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입은 피해에 관한 청구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고, 이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하여 갖는 청구권과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청구인들이 피청구인의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작위의무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역사적 배경,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일본에 대해 사죄 및 배상을 촉구하고 있는 국내외의 움직임,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공식 인정받은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경우 일본에 의한 배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미리 배제해서는 아니된다”며 “이러한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진정으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청구인이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게 가지는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함에도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지 아니한 부작위는 청구인들의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