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가 지난 8월 30일, 제29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①법조인력 적정 수급 방안 ②대배심제 ③디스커버리 제도를 중점적으로 논했다.
이종엽 협회장은 “대한변호사협회는 그동안 사법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도록 개혁하는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고, 진정한 사법개혁은 사법권력을 소수의 법관과 검사로부터 국민의 손에 넘겨주는 것에서 시작한다”면서 “그 일환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재판 개시 전 당사자의 증거 등을 상호 공개하도록 하는 ‘디스커버리 제도’, 그리고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및 기소편의주의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대배심제’”라고 설명했다.
■ “변호사는 사법기관이다. 변호사의 업무는 영업이 아니다”
김기원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는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여 변호사 배출수를 크게 늘린 이유는, 송무・자문 및 판사・검사 등 전통적인 법조직역 이외에,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변호사를 대거 채용하는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변호사시험 1회 이후로 변호사의 비법조직역 진출은 계속하여 감소하는 추세”라고 꼬집었다.
그가 인용한 자료(법무부 「적정변호사 연구」)에 따르면, 합격자를 1,451명 배출한 변호사시험 1회 당시 비법조직역(행정부‧국회‧헌재 등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공기업, 사기업, 국제기구, 기타) 취업자는 458명으로, 전체 취업자 중 32.76%를 차지했다. 이후 변시 2회에서 28.83%, 3회 26.5%, 4회 18.76%, 5회 16.51%, 6회 13.52%, 7회 14.08%를 기록했는데, 7회에서 소폭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이어왔다. 변호사시험 7회까지 전체 합격자 10,884명 중 취업자는 총 9,026명으로, 이 중 22%에 해당하는 1,986명만이 비법조직역으로 진출한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전문직이 추구해야 할 최우선적 가치가 전문성의 함양이 아닌 영업력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전문직 제도를 운영하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닐 것”이라며 “독일 변호사법과 우리나라 변호사 윤리장전이 명시하고 있는 ‘변호사는 사법기관이다. 변호사의 업무는 영업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규정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변호사 공급을 적정화하여 변호사 제도가 과도한 지대이익을 보장하지 않으면서도, 본래의 취지를 살려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법조유사직역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법조인력체계의 뿌리는 일본임을 감안할 때, 고시제도의 문제점과 장점・근대교육제도의 장점・일본식 법조인력체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법조유사직역을 전면 통폐합・축소하는 대신 제3의 길로서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법조인력체계를 창안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일본이 최소한의 판사・검사만을 선발하고, 이들이 은퇴하면 변호사 자격을 주는 식으로 변호사제도를 운영하여 변호사 수가 과소했으며,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법조유사직역이 생겨나 그 규모와 영향력도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를테면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 과정, 법학전문대학원 법무사 과정, 법학전문대학원 변리사 과정, 법학전문대학원 세무사 과정, 법학전문대학원 노무사 과정, 법학전문대학원 공무원 과정’ 등을 개설하고, 각 과정별로 이에 걸맞는 입학전형‧교육기간‧학위과정‧교육내용 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구상을 밝혔다. 아울러 “낙오자를 최소화하면서도 적절한 교육과 공부압력을 제공하고, 최소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과정간 혼합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하는 한편,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해도 최소한 다른 과정에 해당하는 법조유사직역 자격을 부여하거나 공무원이 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퇴로가 없는 고시제도의 단점을 보완하자”고도 제안했다.
■ “일본 상황, 우리의 지향점 아니라 타산지석 삼아야”
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0년 사법연감 자료를 바탕으로 ‘2010~2019 법원 사건접수 건수의 변동추이’를 살펴보며, 송무사건 수는 정체상태이지만 법무법인 및 개인 변호사들의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신고액 합계로 측정한 국내 법률시장 매출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같은 기간 송무사건 수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전체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은 비송무분야 및 대형로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현재 한국 법률시장의 추세는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인한 경쟁 심화, 전체 법률시장 규모의 꾸준한 증가, 송무사건 수의 정체, 비송무 및 국경 간 법률서비스의 증가, 대형 로펌의 점유율 증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법률서비스 시장을 ①국내 서비스(내국인의 한국 내 활동에 관한 법률서비스) ②인바운드 서비스(외국인의 한국 내 활동에 관한 법률서비스) ③아웃바운드 서비스(내국인의 해외 활동에 관한 법률서비스) ④오버시즈 서비스(외국인의 해외활동에 관한 법률서비스)로 분류했다. 이어 “2019년 기준 한국 관련 법률시장의 총계(=④를 제외한 ①+②+③)가 대략 8조원인데, ①이 대략 5조원이므로 ②, ③ 영역의 규모는 3조원”이라고 설명하면서 “대부분의 법률가 및 법학교수들은 내국인의 국내사무인 ①만을 법률시장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광대한 섭외영역이 존재하고 그 규모도 상당하므로, 특히 아웃바운드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법적 지식이 아니라 쟁점 파악 능력, 해당국의 변호사를 활용하는 관리능력, 고객과의 소통능력, 전략적 판단력 등”이라고 했다. “우리 법학교육과 변호사업계도 이런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고 비중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적어도 법률시장 및 법률서비스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는 일본이 우리의 모델이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을 개진했다. 일본은 법치주의의 확산 및 법률시장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선진국 중에서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부진하고, 국내총생산 중 법률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영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계 선진국에 비해서도 훨씬 낮다는 것이다. 인구당 변호사 숫자도 훨씬 적으며, 법률시장의 규모 자체가 한국보다도 작고, 감히 정부를 상대로 다투지 않는 문화가 강하여 헌법재판이나 행정소송이 드물다. 또한 로펌들의 대형화 및 국제화도 한국에 오히려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 교수는 “엄격하게 변호사 숫자를 통제하면서 전통적인 국내송무 위주의 프랙티스에 안주하며 비송무 영역을 비변호사들에게 맡겨두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우리는 오히려 타산지석으로 삼고, 국내 법률산업의 장기적인 발전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시민의 칼이자 방패인 대배심, “사법불신 깊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도”
대배심에 대해 발제한 박승옥 변호사는 “당해 지역 내의 범죄 또는 공공사안을 조사하여 기소 여부를 평결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의 통일체, 즉 시민들이 법원・검찰에 결합되어 공공의 문제들을 조사하고 처분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독립된 기관이 대배심”이라고 설명했다. 권력자(국가) 또는 개인들의 불의하거나 악의적인 기소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범죄를 다스리고 불의를 응징하는 시민들의 칼로서 기능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대배심은 일반적으로 법정에서 법원과 검사의 원조 아래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법원과 검사로부터 독립하여 기능한다. 대배심의 숙의 및 평결 역시 검사 및 판사를 배제하고, 완전한 비밀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기원은 영국 국왕 헨리 2세 때인 1166년의 클라렌덴법(the Assize of Clarendon)으로 이야기되는데, 1215년 마그나카르타는 대배심이 특히 공직자들을 포함한 권력자에 대한 소추기능을 지니게 된 배경이 됐다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입법례를 보면 보통 대배심의 소집은 판사의 직권, 검사의 청구 또는 일정수의 유권자들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하도록 한다. 대배심의 종류로는 통례적인 정규 대배심(regular grand jury)이 있고, 장기간의 조사를 요구하여 정규 대배심에서 다뤄질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대배심 또는 조사대배심이 있다.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들이 서명에 의하여 한 소집청구에 따라 법원이 소집하는 시민 대배심(citizen’s grand jury)과 범죄의 관할 범위에 따른 분류인 카운티 대배심(County grand jury)‧스테이트 대배심(State grand jury)‧복수 카운티 관할 대배심(Multi-County grand jury)‧주 전체 관할 대배심(Statewide grand jury) 등이 있다.
대배심의 권한 및 의무에 대한 입법례를 살펴보면, 캘리포니아주는 범죄뿐만 아니라 시민적 관심에 해당하는 카운티 문제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임무를 대배심에게 부여한다. 반면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검찰관이 공소를 제기하지 않은 처분의 당부 심사 및 검찰사무의 개선에 관한 건의 또는 권고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배심은 증거의 검토 뒤에 ①사람을 범죄혐의로 기소하는 조치(기소평결)를 취할 수 있고, ②고발을 기각하는 조치(불기소평결)를 취할 수도 있다. 그 이외에도 ③검사 독자기소를 지방형사법원에 제기하도록 지방검사에게 명령하는 조치 ④가정법원에의 이송을 위한 요청을 제기하도록 지방검사에게 명령하는 조치 ⑤대배심 보고서를 제출하는 조치 등을 취할 수 있게 하는 뉴욕주의 입법례가 있다.
증거규칙 내지는 위법수집 증거배제 법칙의 적용과 관련해서는, 뉴멕시코주의 경우 대배심 절차에 증거규칙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뉴욕주는 증거규칙 및 형사절차 일반에 관한 규정들이 적절한 경우에 대배심 절차들에 적용될 수 있음을 명시한다. 오레건주는 증거의 효과를 판단할 배심원들의 권한은 재량적인 것이 아니라 법적 판단력으로써, 증거규칙들 속에서 행사되어야 함을 규정한다.
대배심 절차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대배심의 성격에 본질적으로 저촉되는 한도 내에서 부분적으로 제한되지만, 본질적 성격에 저촉되지 않는 여타의 범위에서는 변호인의 조력이 보장된다. 가령 미시간주에서는 대배심 앞에 소환되는 증인들이 지체없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항상 지니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연방 국가들이 대배심을 폐지하고 있는 점을 대배심 도입 반대 논거로 지적한다. 실제 영국은 1948년, 스코틀랜드 1945년, 아일랜드 1969년, 캐나다 1984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2009년, 뉴질랜드 1961년, 케이프 식민지 1855년 등에 대배심 제도를 폐지했다. 박 변호사는 이에 대해 “영연방 국가들의 대배심 폐지는 범죄의 수사 및 처분을 공무원들에게 전담시켜도 문제가 없겠다는, 즉 사법신뢰를 확보한 국가들로서의 자신감의 발로인 것이므로, 사법불신이 깊은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대배심을 도입해서 사법신뢰를 획득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뒷받침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국민의 사법 참여와 권한행사는 국민의 생업에 상당한 부담을 가하고 비용을 초래하므로, 18세기 말경 대배심을 도입하였다가 짧은 기간 내에 폐지한 프랑스와 벨기에의 경험은, 대배심 기능의 도입 범위에 있어 우리가 탄력적 입장을 지닐 필요가 있음을 뒷받침한다”면서 “대배심제도는 현재 수사기관의 수사권한 및 소추권한에 대한 사후적, 병행적, 보충적 절차로서 탄력성・다양성을 지니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70년 넘도록 운용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를 확보한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은 우리가 참조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일본의 검찰심사회법을 본뜬 불기소 처분에 대한 사후적 심사권한과 검사가 회부하는 특정범주의 사건들에 대한 기소평결 권한을 검사의 독자기소 권한에 병행하여 국민이 가지는 정도의 수준에서 대배심제도의 도입을 시작하되, 제도의 운용 속에서 경험되는 바를 참작하고, 범죄조사를 위한 대배심 소집을 구하는 검사 또는 일정 수 이상 국민의 청구서가 접수되는 등의 경우 조사대배심이 소집되는 것으로 하는 등 대배심 권한의 확대 또는 변경 등에 대해 국민이 탄력적으로 결정하게 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 “디스커버리, 공판이 최대한 사실 드러내고 공정한 경쟁과정 되도록 하기 위한 절차”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해 발제한 전원열 교수는 “한국의 민사재판실무 중에서 문제가 많은 영역 중 하나가 증거의 조사 및 현출 절차”라고 지적하면서, “특히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원고대리인 입장에서 실무를 해 보면, 피고가 소지하고 있는 증거를 현출시킬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 따라서 증거법 분야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한다”고 했다. 이러한 증거상황과 현재 한국의 민사소송법제 하에서는, 요건사실의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소송당사자(대개 원고) 쪽이 요건사실을 증명하기가 너무 어렵고, 이 때문에 충분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요건사실 증명 없음’이라는 이유로 패소판결을 받기가 쉬우며, 이는 실체적 사실관계에 기한 판결이 아니라고 여겨져 재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증거개시절차’라고 번역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주장이 커지고 있다. 전 교수는 “현재 주장되는 ‘디스커버리 도입’이란,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의 증거수집절차가 이처럼 미비하니 ‘상대방 내지 제3자가 소지한 증거들을 법원에 현출시키는 수단 내지 절차를 확충하자’라는 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곧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수년 간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수집절차의 개선 내지 확충의 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지 파악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1938년 연방민사소송규칙(‘FRCP’)의 제정과 함께 디스커버리 절차를 채용함으로써 그 전까지 금지된다고 여겨지던 ‘모색적 증명’(fishing expedition)을 허용하게 됐는데, 이 때문에 미국의 민사소송실무가 혁명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먼저 짚었다. 모색적 증거 신청이란 ⓐ증명할 사실 ⓑ증거방법 및 ⓒ그 증거방법과 증명할 사실 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증거를 신청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한국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것으로 새긴다.
전 교수는 미국이 디스커버리를 도입한 의미를 “소송절차는 실체적 권리를 실현시켜 주는 절차이므로, 소송이라는 터널을 거치는 중에 사실에 기반한 실체적 권리가 난도질당해서는 안 된다는 큰 시각변화가 있게 된 것”이자 “소송제도란 공정한 결론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서로 전개시켜 나가는 마당을 제공하는 절차이지, 사실관계를 잘 아는 당사자 사이에서 소송절차상의 기술적인 조항들을 무기로 삼아 서로 증거를 은닉하며 실체적 사실관계에 대해 법원을 속여서 결론을 얻어내는 절차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식 합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소제기(filing) 방식, 송달(service) 방식, 공판 전 협의절차(pretrial conference), 기일 결정방식 및 운영방식, 판단에 이르는 경로, 판결의 방식 모두가 한국과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소장 및 답변서 제출을 거쳐 곧 제1차 변론기일이 지정되고 나면, 몇 주마다 1회씩의 변론기일이 (기약 없이) 계속 거듭되고, 변론이 종결되기까지는 언제든지 새로운 주장제출과 증거조사가 행해지는 방식이지만, 미국 민사소송절차는 訴答절차(pleading), 디스커버리절차(discovery), 공판절차(trial)로 단계별로 구분되어 있다는 게 전 교수의 말이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전자자료를 받아내는 일(e-discovery)이 디스커버리의 중심이 된 상황이다. 전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미국 디스커버리의 여러 증거수집수단을 한국에 도입했을 때, 실제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 교수는 구체적으로, ①의무공개(required disclosures) 중 1차공개(initial disclosure)와 질문서(Interrogatories)제도는 당사자 간에 기초사실을 드러내놓기 위한 절차이므로, 법원 지휘 하에 4~5주마다 변론기일이 반복되면서 수시로 구체적 사실이 추가되는 한국 소송절차에서는 큰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의무공개’는 주로 나중에 열릴 공판기일(trial)의 준비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데, 변론종결시까지 수시로 증거와 구체적 증거를 내놓는 한국의 절차에서는 의무공개 및 질문서 제고는 실효적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②증언녹취서(depositions)는 더욱 전형적인 미국식 증거수집수단으로, 이는 소제기 후 공판기일까지의 오랜 시간 동안 법원의 개입 없이 당사자 자율적으로 진행해 가는 증인신문제도여서, 한국의 현행 소송절차와 결합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③사실 및 문서진정에 대한 자백요구(requests to admit facts and genuineness of documents)는, 공판에서 증거를 제시해야 할 사항과 굳이 증거신청을 안 해도 되는 사항을 가려내는 수단일 뿐이어서, 수시로 교환되는 준비서면을 통해서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한국의 소송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④결국 미국 디스커버리 중에서 우리가 검토해야 할 증거수집수단은 FRCP §34의 ‘문서・전자정보・유형물의 제출요구’(requests to produce documents, ESI, and tangible things)라는 게 전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를 위해 우선은 한국의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에 ‘전자정보’가 포함되도록 하는 개정이 필요한데, 그것 외에도 문서제출명령 조항의 개정시에는 미국의 위 §34의 세부사항과 실무를 참조해야 한다”고 했다.
전 교수는 또한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 전에 먼저 검토하여 한국의 법조가 동의해야 하는 점은 ①모색적 증거 신청 금지라는 과거의 입장에서 일정부분 벗어나야 한다는 점 ②분쟁 관련 모든 증거를 제출해야 함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그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미국법에서 비닉특권(privilege)이라고 부르는 ‘제출면제영역’을 명확히 설정해 주어야 한다는 점 ③개시의무・제출의무 위반시의 각종 제재를 명확히 정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디스커버리란 반드시 증거의 수집만을 목적으로 하는 절차는 아니며, 쟁점을 좁히고 명확히 만들기 위한 과정이자, 공판이 가능한 한 최대로 기본적 이슈와 사실을 드러낸 후의 공정한 경쟁과정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절차”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