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융합법학회(회장 한명관 변호사)가 지난 9월 10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국회의원과 공동주최로 “가상화폐의 실태 및 개선방안”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명관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엘살바도르는 현지시간으로 9월 7일, 기존 공용 통화인 미국 달러화에 더하여 비트코인에도 법정 통화 지위를 부여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반면 중국은 수차례 암호화폐 단속 강화를 예고한 데 이어 해외거래소 검색까지 차단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가상화폐에 대한 정책은 예측하기 어렵고 양극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정책적 논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안 과제”라고 말했다.
■ 암호화폐, 토큰…“프로그래밍 가능한 ‘민주주의적인 돈’”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의 이준행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은 인터넷에서 객관적인 정보 혹은 모두가 참이라고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신뢰 정보’를 인터넷에서 기록‧전파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라고 했다. 즉, 블록체인은 객관적인 정보를 기록‧전파‧응용할 수 있는 ‘인터넷 담벼락’이라는 비유다.
그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코인이 있는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과 코인이 없는 블록체인(Distributed Blockchain)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속도와 효율은 낮음/운영 주체에 제한이 없어 누구든 채굴(읽기, 쓰기, 감사) 참여 가능/새롭게 발행되는 코인이 채굴자의 공헌도에 따라 지급되는 방식으로 운영 비용 보전’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반면 후자는 ‘특정 운영주체 및 컨소시엄에게 사전 허락을 받은 자만이 접근 가능/속도와 효율은 중간/사전 협약이 이루어진 단체들이 운영 주체/운영 비용은 컨소시엄 개별 회원 단체가 지급’의 특징을 갖는다.
이들을 기존 금융망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 뚜렷한데, 기존 금융망에는 금융기관 등 운영주체의 허락을 받은 자만 접근이 가능하고, 속도와 효율은 매우 높으며, 금융결제원 같은 공동망 운영주체가 존재한다. 운영 비용은 회원사 회비나 정부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이 대표는 “코인이 있는 블록체인은 상호 신뢰 형성이 어려운 집단이나 불특정 다수의 민감 정보 기록에 적합하며, 기존 금융망은 상호 신뢰 및 통제가 전제된 집단의 민감 정보 기록에 적합하다”고 하는 한편 “코인이 없는 블록체인은 은행서버보다도 성능이 떨어져 효익이 제한적이며, 인트라넷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블록체인 정보를 기록, 전파, 감사해 주는 사람들에 제공되는 보상이 암호화폐다. 이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상에 기록되어 자산화가 가능한 정보 조각인 ‘토큰’을 통칭하여 ‘가상자산’이라고 한다. 코인에는 유가증권이나 금 등을 블록체인에서 발행한 ‘증권형’이나 특정한 기능‧서비스에 대한 사용권을 명시한 ‘유틸리티형’, 디지털 희소성을 자산화한 토큰인 ‘대체불가능(NFT)’ 등이 있다. 이 대표는 “암호화폐나 토큰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민주주의적인 돈’”이라고 표현했다.
■ 개방형 금융 인프라, ‘블록체인’…“국경 제약 없는 금융업 발전시킬 것”
이준행 대표는 블록체인의 순기능으로 “클릭 몇 번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금융 계약 체결이 가능하고, 은행에서 고리 대출도 불가능하던 사람이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국가나 개인도 경제활동에 편입시켜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게 함”을 들었다. 리스크와 자본을 교환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금융업은 블록체인이라는 개방형 금융 인프라를 만나 국경 제약 없이 가상자산을 교환, 대여, 투자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금융인프라가 부재한 국가들의 자본시장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시키는 일은 글로벌 생산성 증대 관점에서도 매우 큰 기회”라고 하면서도 “이는 블록체인 산업에 속한 각 업체가 개별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주제에 대해 토론자로 참여한 나황영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현재 가상자산시장의 거래행태를 살펴보면, 과연 신뢰 인터넷, 가치 인터넷 구현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견해를 보였다. 나 변호사는 “국내 가상자산의 발행은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부처의 행정지도를 통해서도 전면 금지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발행이 용이한 해외국가를 통해 우회발행 후 국내시장에서 거래하는 행태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로 인해 가상자산 시장에는 가치지향적 가상자산과 사기성 가상자산이 혼재되어 있으나, 투자자는 우회발행된 가상자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얻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처벌할 근거 법률 없어 투자자보호에 공백 존재”
토론자로 참여한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前 검찰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는 경찰청 통계를 인용하면서, 2019년부터 2021년 3월까지 가상화폐 관련 범죄 피해액이 9,842억에 이르는 점을 지적했다. 가상화폐 범죄의 유형은 코인을 수단으로 하는 유사수신 및 다단계사기가 65.5%로 가장 높고, 존재하지 않는 코인을 대신 사주겠다면서 돈을 받아 빼돌리는 구매대행 사기 비중이 25.2%로 뒤를 잇고 있다.
김 변호사는 가상화폐시장과 관련한 형사 문제도 살펴본바, 이는 ‘거래소 이슈’와 ‘가상화폐 이슈’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거래소와 관련해서는 거래소 운영진이 다수의 암호화폐 보유 수량을 허위로 거래시스템에 입력해 사전자기록위작 등 죄로 처벌받거나 문제가 된 사례가 있고, 특히 미신고 거래소 폐쇄에 따른 혼란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가상화폐와 관련해서는,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와 유사하게 시세조종, 내부자 거래, 허위 공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사기죄 등 적용을 검토할 수 있지만 경쟁매매 거래방식 등으로 인해 적용에 한계가 있고, 그 밖의 가상자산 불공정거래를 처벌할 수 있는 마땅한 근거 법률이 없어 투자자보호에 공백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가상자산의 불공정거래 규제가 가장 보호해야 할 요소는 ‘정보’이며, 따라서 정보를 이용한 시세조종(사기적 부정거래)과 내부자거래가 특히 단호히 대응되어야 할 유형”이라고 지목하는 한편 “가상화폐가 가진 무서운 잠재력은 ‘탈중앙, 초확장, 초국경’에서 나오는 만큼 이러한 생래적 속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가 선도하여 가상자산사업을 육성하고, 불공정거래를 규제할 근거법률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