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가 지난 10월 6일, “변호사 업무와 양성평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 전현정 센터장은 “신규변호사들의 양성평등 문제는 법률가들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에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여 작은 규모의 법률사무소 소속을 포함한 신규변호사들 실태조사를 했다”며 “양성평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난감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작은 것이라도 하나하나 바꾸는 것이 쌓여서 우리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이룩할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남성적 가치 정의에 양성 모두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야”
기조연설을 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2000년 이전 여성판사들의 판사 사회 내에서의 지위는, 지위랄 것도 없었지만, 주류문화인 남성문화에 재빨리 적응하여 인정을 받는 것만이 유일하게 열려있던 길”이라고 회고하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판사들은 헌법을 공부하고 기본권 보호를 금과옥조로 삼는다고 해도, 여성문제를 따로 공부하고 사유하지 않는 이상 주류문화가 어떤 문제를 갖는지 들여다 볼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다른 여성 판사가 “왜 호주제를 폐지하려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한 집안이 호주를 중심으로 위계있게 구성되는 왜 문제가 되느냐”가 말한 것을 회상하면서다.
김 전 대법관은 과학소설가 어슐러 르 귄이 그의 소설 『어둠의 왼손』 서문에서 밝힌 바를 인용하며 “여성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성들끼리 혹은 남성과 함께 일하는 곳 어디에나 자리 잡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남성적 가치의 정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특정 성에 배타적이기를 거부하며, 상호의존성을 지지하고, 공격성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와해시켜야 한다. 또한 항상 자유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 성별에 따른 불이익 여부에 시각차 ‘뚜렷’
법무법인 린의 김기정 변호사는 신규변호사 취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1~5년차 변호사를 대상으로 했으며, 응답자는 450명으로 여성이 262명, 남성이 188명이다. 질의는 크게 실무수습 과정에서의 양성평등, 현 직장에서의 양성평등, 이직 시점에서의 양성평등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조사에 따르면, 변호사시험 합격 후 실무수습 전까지의 공백기간이 “없었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이 62.2%, 여성이 53%로, 공백기간을 경험한 여성변호사가 남성변호사보다 더 많았다. 실무수습 기관 규모의 경우 ‘5명 이하’ 규모 비율이 남성이 35.9%, 여성이 42.1%였으며, ‘31명 이상’ 규모 비율은 남성이 21.1%, 여성이 14.4%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여성변호사가 소규모 기관에서 실무수습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결과인데, “소규모 기관일수록 후진적 성평등 문화가 지적되는 경우가 있어 문제”라는 게 김 변호사의 말이다.
실무수습 중 성별로 인한 불이익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불이익 항목을 ‘급여, 업무량, 업무내용, 평가, 근속기대, 스트레스’로 나뉘어 질의했다. 남성 응답자들은 모든 항목에서 60%를 웃도는 비율로 “불이익이 전혀 없었다”를 답했는데, 각 항목별로 살펴보면 급여 73.4%, 업무량 60.1%, 업무내용 61.2%, 평가 67.6%, 근속 기대 67.6%, 스트레스 64.4%가 “불이익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반면 여성변호사들의 시각은 달랐다. 여성 응답자들은 급여 35.1%, 업무량 32.1%, 업무내용 28.6%, 평가 34.0%, 근속 기대 32.1%, 스트레스 31.3% 만이 “불이익이 전혀 없었다”를 선택했다.
현 직장에서의 성차별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차이는 더 뚜렷하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70.2%가 “전혀 경험한 적 없다”고 답한 반면 여성 응답자는 33.6%만이 “전혀 경험한 적 없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를 합친 답변의 비율은 남성 응답자가 2%에도 못 미치는 반면 여성 응답자는 13.3%로 나타났다. 현 직장에서의 급여 수준도 여성변호사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분포를 보이고 있다. 700만원 이상 임금은 남성변호사가 19.9%, 여성변호사가 13.4%인 반면 400만원 이하 임금은 남성변호사가 14%, 여성변호사가 17.5%를 차지했다.
양성평등 전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에 대해서도 남성변호사와 여성변호사 사이에 결이 다른 의견들이 나왔다. 여성변호사들은 “입사 후보다 채용 단계 차별이 더 심각하다”, “직원들에 대한 성차별 개선도 필요하다” 등의 의견을 제시한 반면, 남성변호사들은 “경영진에서 오히려 과도하게 여성 눈치를 보는 결과 기피 업무가 남성에게 배정된다”, “성평등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고 과학적‧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개별 사례를 일반화하여 방향성을 잡으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등의 의견을 제출했다.
■ “과거 선배변호사들의 경험, 신규 여성변호사들의 경험이나 시각과 다를 수 있다”
한국외대 법전원 장보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여성변호사 비율의 급증을 언급한바, 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여성변호사 숫자는 8,159명으로 전체 등록 변호사의 29.2%를 차지한다. 이 중 2,30대에 해당하는 여성변호사가 73%인데, 이는 전체 변호사 3만여 명 중 20~40대 청년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70%에 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매년 새로 등록하는 신규변호사로 그 범위를 좁히면 여성변호사 비중은 38.3%에 이른다.
장 교수는 “현재 법조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대다수의 남성변호사들이 가진 경험은 새롭게 법조에 진출한 여성변호사들의 경험과 매우 다르며, 여성변호사 선배들의 경험이나 생각마저도 후배 여성변호사들의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그동안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온 이상적 변호사상이나 동료 및 의뢰인들과 상호작용 하던 방식, 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했던 방법론들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유연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의 이상적 변호사상은 ‘업무 단절 없는 계속적 경력을 추구하고, 가족이나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24시간 언제든 의뢰인의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으며, 어느 직업군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정도의 업무 강도와 최장시간 근로를 감당하고 수용하는 변호사’였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시각에 따르면 남성변호사에 비해 여성변호사는 이상적인 변호사가 되기 어려웠고, 따라서 규모가 크지 않거나 복잡하지 않은 사건, 혹은 여성이 가사와 병행할 수 있는 성격의 사건(-가사소송이나 성폭력 사건 등)만이 여성변호사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다”고 했다. 나아가 “취업 기회에서도 동일한 조건이라면 남성이 선호되었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정부나 공공기관 등 좁은 선택지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경력 초기 단계에서의 차별 또한 중요하게 지적했다. 그는 “경력 초기는 여러 업무를 통해 전문성을 쌓는 중요한 시기로, 이 시기에 업무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험이 축적되면 향후 중견 변호사로 성장하는 데에 큰 지장은 준다”면서 “성과를 기초로 보상을 받는 중견변호사가 되었을 때 남녀 변호사 간 급여 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요인 중 하나는 이런 경험들이 모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우수한 인재들을 성별만을 이유로 주류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그 개인에게 상처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또 해당 조직에도 손실”이라고 말하면서 “법조는 여성변호사에 대한 시각 자체를 개선해야 하며, 변호사의 양성평등은 단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배려하는 게 정의롭다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나아가 “기존 변호사 업계가 가진 남성 중심 문화를 바꾸고 필요한 사항을 법제화하여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꾸준히 변호사들을 교육하고 신규 여성변호사들이 연대하여 불합리한 차별과 불평등을 감시하는 한편 (차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