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가 지난 10월 26일, 대한의사협회, 한국세무사고시회, 자영업소상공인중앙회,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타 직역 단체의 의견을 모아 “플랫폼 피해 직역의 현황과 대응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종엽 협회장은 “디지털 경제의 가속화와 함께 급속히 성장한 온라인 플랫폼은,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규제와 법망을 우회‧잠탈하는 방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거대 자본을 앞세워 공공성을 사명으로 하는 직역까지 잠식하고 있다”며 “(이들은) 네트워크 효과와 핵심 데이터 수집이라는 이점을 동시에 누리면서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고, 그 후에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게이트 키퍼로서 군림하며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축사를 전한 김형동 국회의원(국민의힘, 예천‧안동)도 문제의식을 같이하며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업이 위축되어버리는 환경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면서 “플랫폼은 오롯이 공급자와 수요자 간 ‘거래의 자유를 북돋워 주는 장터’로서 자리매김해야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거의 모든 산업 길목 장악한 플랫폼들...유형 파악해 보니
대한변협 박상수 부협회장은 “4차산업혁명의 바람에 편승하여 혁신과 공유경제의 명분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확산한 플랫폼은 현재 거의 모든 전통 산업 판매망의 길목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논의의 방향과 찬반 논쟁이 필요한 지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플랫폼 유형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플랫폼 유형을 크게 ①구성사업자의 자격이 법으로 엄격히 제한된 것을 형해화하는 유형 ②서비스 제공자의 중개 및 알선 금지 법규를 형해화하는 유형 ③영업행태에 특별한 법적 규제는 없으나 불공정한 시장지배가 문제되는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 면허제도로 엄격히 관리되는 택시운송업이나 인허가제도로 관리되는 금융업 및 숙박업 등이 ①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초기 공유경제 명분으로 생긴 업체들인데, “사적으로 소유한 유휴자산을 활용하여 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공유경제론자들의 주장이 이 같은 플랫폼의 등장과 확산에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가장 거센 반발을 경험하는 유형”이라는 게 박 부협회장의 설명이다. 우버의 경우 일본, 대만, 스페인, 벨기에 등 각국에서 택시 면허를 소유하지 않은 운전자의 택시 운전 서비스 제공 금지로 인해 활약을 못하는 상황이고, 에어비앤비 역시 미국, 일본, 프랑스 등 국가에서 다양한 규제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중개 또는 알선이 법으로 금지된 의료 및 법률, 세무‧회계 서비스 등 전문자격제도 관련 시장에서 나타나는 플랫폼이 ②유형이다. 전문자격제도 관련 시장의 경우, 직무 독립성 유지 및 자본 지배 방지 등을 위해 동종 자격 취득자를 제외하고는 동업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의료 및 법률 서비스의 경우에는 그 공익성이 현저히 크다는 이유로 광고의 내용과 방식까지 엄격히 통제되는 한층 강화된 법적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장에 진출한 플랫폼들은 중개 및 알선 금지, 동업 금지, 광고 제한 등의 법적 규제를 계속해서 무력화시키는 시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게 박 부협회장의 말이다.
배달 플랫폼 등이 속한 ③유형은 플랫폼 자체에 대한 불법 논란은 없는 경우다. 박 부협회장은 “이들은 초기 시장지배적 지위가 불확실하거나 경쟁사업자가 충분하지 않을 때는 소비자에게 시혜적 서비스를 제공하며 적자 사업을 영위하다가,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이후부터 구성사업자와 소비자,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독점적 이익을 영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초기에는 소비자 후생에 도움을 주고 구성사업자들의 시장 확대에도 공헌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업체들이 규모를 키운 이후에도 공정한 거래를 하도록 하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 및 시행과 같은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변호사 플랫폼은 무엇이 문제인가
박상수 부협회장은 최근 변호사 수 급증에 따른 변호사 영업 현황이 악화한 현실에 터 잡고, 소비자의 정보 비대칭 문제 해소 등을 명분으로 하여 등장한 변호사 플랫폼들을 겨냥하며 “우리 법이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을 상법상 상인의 지위로만 볼 수 없음을 천명하며 높은 법적 규제를 해온 이유는, 이들 직역이 특히 공공성과 윤리성이 중시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나아가 “변호사 광고의 자유는 대한변협이 정하는 내용에 따라 규제할 수 있음을 변호사법이 분명히 명시한다”라고도 덧붙였는데,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최근 법무부가 내놓은 유권해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는 논란의 중심에 선 변호사 플랫폼 문제와 관련하여 “변호사를 중개하는 플랫폼은 금지이지만, 광고 플랫폼은 변호사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문제 된 플랫폼 업체는 자신들이 중개 플랫폼이 아닌 광고 플랫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법무부도 이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박 부협회장은 이에 반박하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9월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여 정보 제공, 소비자로부터 청약 접수 등의 방식으로 계약관계에 있는 입점업체와 상품‧용역 거래의 개시를 ‘알선’하는 사업자”라고 정의한 규정을 들었다. 변호사 플랫폼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행위를 공정위는 ‘알선’이라고 정의하여, 법무부와 상반된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다. 박 부협회장은 또한 지난 8월, 온라인 금융 플랫폼 업체가 단순 광고라고 주장하며 금융상품을 중개한 데 대해 금융위원회가 ‘단순광고 아닌 중개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점도 언급하면서, “변호사 플랫폼에 대한 법무부의 이번 해석은 적절치 못한 판단”이라고 평했다.
그는 “백번 양보하여 변호사 플랫폼이 단순 광고 플랫폼이라 하더라도 변호사법은 중개‧알선뿐 아니라 고객을 유인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는데, 사설 플랫폼을 통해 고객 유인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변호사법이 정한 광고의 주체는 해석상 변호사‧법무법인‧법무법인(유한)‧법무조합이므로, 회원 변호사들을 위해 직접 광고 주체가 되어 광고하는 사설 플랫폼은 이 규정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동안 변호사의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소비자에 대한 정보 공개 등이 소홀하여 소비자들이 법률시장에서 정보비대칭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은 변협 집행부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문제의 해결은 광고비를 많이 지급한 변호사들을 최우선으로 노출하는 등 오히려 변호사에 대한 정보 왜곡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사설 플랫폼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든 변호사 정보를 소비자에게 객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변호사 공공정보시스템을 도입하여 법정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운영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