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가 지난 12월 22일, 민주주의법학연구회(회장 신옥주)와 함께 “민주주의와 군대”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성추행 사건 조사 중 목숨을 끊은 제20 전투비행단 이 중사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뒤 국방부를 중심으로 군 제도 개혁이 추진되어 왔지만, 민주적이고 인권이 보장되면서도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송기춘 위원장은 “국방부가 꾸린 민관군 합동위원회를 주축으로 군 제도 개혁이 추진되고 있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반신반의”라면서 “민주주의의 기초 위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군대, 민주주의의 교육장이 되는 군대, 군에 다녀온 것이 자부심이 되고 군인이 명예로운 시민으로 존중 받는 사회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 “불합리한 군 조사 및 수사 시스템…구조적 폐쇄성과 불공정성이 원인”
제주대 박병욱 교수는 군수사 및 사법제도를 중심으로 “전근대적 계급사회로서 군에 대한 통찰과 민주주의”를 고찰했다. 그는 “군부대 주도로 진행되는 불합리한 조사, 수사 시스템 때문에 자살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제도적 결함”이라면서 “이 중사 사건 역시 조사와 수사 과정이 부실한 수준을 넘어 의도적이고 자의적인 왜곡으로까지 이어졌으며, 그 원인은 현행 군 조사 및 수사 체제가 갖는 구조적 폐쇄성과 불공정성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는 군 조사 및 수사 체제에 대한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지난해 9월 24일에 개정된 군사법원법과 관련, △민간법원이 담당하기로 한 범죄에도 여전히 군검찰, 군사경찰의 기소 및 수사관할권이 존재하는 점 △일반적 군인 범죄사건에 대한 관할은 여전히 군사법원법상 신분적 관할권이 그대로 적용되는 점 △군인 범죄에 대한 1심 재판관할권도 여전히 군사법원이 가지는 점 △제1심 군사법원에 대한 구성을 국방부 장관이 하고 있다는 것은 군 우위의 사고가 반영된 지휘관 사법의 본질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가능한 점 등을 한계로 지적했다. “개정 군사법원법은 군검찰 및 군사경찰이 국방부 또는 군 내에 존재하는 조직으로서 갖는 폐쇄성을 전혀 제거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첫 단계가 경찰의 수사이지만, 그것을 은폐, 조작하는 첫 단계도 경찰의 수사”라면서 “군헌병이 사법경찰 권한(수사권한)을 행사할 경우 그 공정성을 담보할 방안이 필요하며, 이것이 어렵다면 군사경찰의 직무에서 수사업무를 완전히 배제하고 군부대 경비, 교통, 작전 및 테러방지 영역의 행정경찰로만 제한하여 일반경찰이 군사범죄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군사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한 가지 방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 “지휘권 오남용되는 군의 조직문화가 피해자들에게 덫…독일 참고해 개선해야”
홍익대 오병두 교수는 군형법의 개정방향을 중심으로 군형법과 민주주의를 논했다. 오 교수는 “육해공군 모두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한 성추행 피해 군인 사건은 군의 조직문화가 피해자들에게 2중, 3중의 덫이 되어 작용했음을 드러냈다”면서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군대 내 지휘권의 오남용”이라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보통 군사범죄에 대한 특별법이라고 하는 군형법에 대해서는 전면적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라며 “군형법은 국토의 방위라는 군대의 헌법적 임무보다는 군의 기강, 즉 지휘권 확립을 주요 목적으로 설정하고 군대 내 위계질서를 확립하여 군 지휘권자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사회와는 다른 기준이 군 내부 질서로 작동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상관의 형사법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독일 군대의 민주적・시민적 지휘 관념이 우리 군 조직의 개선에 좋은 참고가 된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군형법이 (독일과 같이) 지휘관의 개인적인 형사책임을 규정하되, 지휘관(상관)의 개인적 위법행위에 대한 형사불법의 범위와 함께 위법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 가능한 범위도 함께 규정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한편 “이러한 개정과 함께 군인복무기본법상 금지행위도 세분화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민(民) 앞세웠지만, 군의 개선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아주대 오동석 교수는 ‘민관군 거버넌스 체계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군은 과거 대형 인권침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민관군 거버넌스 기구를 구성해 대처했다”면서 2005년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병 192명에게 가해진 인분 묻은 손을 입에 넣게 한 사건과 2014년 윤일병 사건을 거론했다. 오 교수는 “이때마다 구성한 기구는 임시방편적 대처였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급과 성별의 위계가 굳건한 군의 낙후된 조직적 영향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관점의 부재와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의 부재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중사 사망 사건과 코로나19 격리 장병 부실급식 등을 계기로 지난해 6월 28일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에 대해서는 4개월 여 활동 후 10월 13일 해단할 때까지 민간위원 59명 중 20명이 사퇴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사퇴한 민간 위원들은 “뭔가 해보려고 해도 군의 의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라거나 “(위원회가) 너무 형식적이어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라고 토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 교수는 “현재 민관군 거버넌스 관계는 헌법 체제 차원에서 거버넌스 조직 차원까지 걸친 문제로, 민을 앞세웠지만 군사주의 체제 위에서 군-관-민의 위계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시민들은 국가 또는 행정에 응답하고 설명책임을 지시할 수 있어야 하며, 주권자의 민주주의적 자기결정권 없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는 민주주의와 함께 가기 어렵다”라는 인식을 보였다. 나아가 “민관군 거버넌스의 최우선 과제는 군의 임무를 헌법에 적합하게 국토 방위 중심의 국가안전보장으로 축소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 “긍정적 변화 있었지만...군대 내 성범죄 가해자 실형 선고 6%에 불과”
전북대 신옥주 교수는 군대 내 성폭력 예방과 대응법제의 한계 및 개선방안을 검토했다. 신 교수는 2014년 본격적인 군대 성폭력 전수 조사 후 ‘군사법원 관할 개선, 통합시스템을 통한 피해자 보호, 군대 내 성폭력 대응을 위한 독립적 전담기구 설립’의 대응방안이 수립된 것과 2021년 군대 내 성폭력 발생 이후 ‘군대 내 성폭력 관할이 군사법원에서 민간법원으로 변경, 피해자보호를 위해 다양한 조치 마련’ 등의 개선이 이뤄진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 등 처분이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 법원 관할이 변경된 것만으로는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라며 “피해자 중심의 통합적 지원시스템 정비, 군대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전담기구 설치, 법원의 인식 변화를 통한 가해자 처벌 강화 등 개선이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각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708건 중 불기소 처분이 42.8%이며, 기소된 사건 중 집행유예가 40%, 실형 선고는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군대 내 여군 성폭력 문제를 예방・대응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고충 전문상담관제도에 대하여는 △고충문제에 대한 비밀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31.3%) △상담관이 군 지휘계통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고충문제 상담이나 해결에 한계가 있다(35.2%)는 2012년도 설문조사 응답을 언급하며, “상담관의 독립성 및 상담비밀 보장과 전문성 제고 및 인력 보강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신 교수는 “현재까지 군대 내 성폭력 예방과 대응방안들은 여성군인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데, 남성군인의 성폭력 피해가 많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라면서 “2020년 육군에서만 전년 대비 82건이 늘어난 251건의 동성 간 성범죄가 발생했고, 이는 전체 성범죄 중 40%를 차지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