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한국법학원장은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발간하는 자동차보험 및 손해배상 분야의 정책·제도 연구 전문지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 INSIGHT(이하 자배원 INSIGHT)」 통권 제2호(2026년 3월 발간)에 특별기고를 했다.
이 원장은 “기술과 사람 그리고 자동차 – 인공지능의 발전과 자동차손해배상제도에서의 고찰–”을 주제로,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로 상징되는 기술 발전의 흐름과 AI가 가져온 사회 변화 및 법제도적 과제를 짚었다. 또한 자동차 손해배상에서의 책임 문제를 중심으로 기술과 법의 충돌 양상을 분석하고, 인간 중심의 법치주의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특별기고문 전문은 3월 31일 발간된 자배원 INSIGHT 통권 제2호 또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술과 사람 그리고 자동차
- 인공지능의 발전과 자동차손해배상제도에서의 고찰
이기수
(사)한국법학원 원장
Ⅰ. 인간 대 컴퓨터의 대결과 함께 온 기술의 발전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에서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을 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컴퓨터가 발명된 이후 우리 생활 속에서 컴퓨터를 활용하고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이 있었다. 시초는 1952년 폰 노이만과 그가 만든 에드박(EDVAC)의 2의 제곱 계산 대결로 거슬러 올라간다.1)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 ‘딥 블루’와의 체스 대결에서 처음에는 인간이 승리하였지만, 이후 인간이 컴퓨터에게 패배하게 되었다. 체스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더라도 바둑은 경우의 수가 더 많으니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있었고, 알파고가 승리를 한 것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이후 인공지능, AI라는 단어는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임을 느끼게 될 만큼 우리 일상에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AI로 인해 변화된 혁신은 단순한 기술의 변화를 넘어 우리 사법(私法)제도에서 많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근대 민법의 대원칙인 ‘과실책임의 원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선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AI의 등장으로 ‘누가 행위의 주체인가’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다시 한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와 관련한 자율주행 기술은 이러한 사법적 혼란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과거의 자동차 사고가 운전자의 부주의라는 인격적 결함 때문이었다면, 자율주행 중 사고는 알고리즘의 한계나 데이터 처리의 오류라는 비인격적 요소가 사고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AI가 가져온 변화와 법제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행 자동차손해배상제도가 직면한 쟁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AI가 가져온 사회 변화와 법제도
1. AI가 만든 작품들을 법적 보호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대결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한 후 AI를 활용한 창작활동을 통해 다양한 결과물들이 산출되었다. 시, 소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나왔다. 2022년 미국에서는 이미지 생성 AI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디지털아트부문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AI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은 인간이 창작한 작품인지, AI가 만든 작품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지식재산권법 분야 중 저작권법과 관련하여 AI가 만든 작품에 대해 저작물로 인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생성형 AI가 만든 작품을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인 저작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AI가 만든 작품은 저작권의 보호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 저작권청(USCO)은 ‘저작권 보호가 작품에 투입된 인간 창의성의 양에 달려있으며, 생성형 AI 시스템이 만든 결과는 이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즉,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작품을 만든 과정은 ‘다른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여 맡기는 것에 더 가까운 행위’라는 것이다.2) 미국 저작권 등록 실무 개요는 저작권의 등록대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제306조 인간 저작자 요건(human authorship requirement)에서는 인간에 의해 창작된 독창적인 저작물만을 등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3) 이에 따라 인간 저작자의 창의적인 입력이나 개입없이 무작위 또는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생성하였거나 단순한 기계적 과정을 통해 생성된 결과물은 저작물로 등록해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자연인이 아닌 인공지능의 창작활동의 결과물에 대해서 권리를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2. 사법 상 권리의 주체에 대한 고민
이렇게 전통적인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는 개념에서 볼 때 AI가 권리의 주체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민법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는 자연인과 법인에게 있다고 보고 있다. 자연인은 생명을 갖고 있는 자 즉, 사람을 의미하고, 법인은 생명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인정이 된 자 즉, 회사를 비롯한 단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창작자들이 생성형 AI를 창작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생성형 AI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가 본격화하면서 인간만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기존 법체계에 새로운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2024년 8월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베릴 하월 판사는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그린 그림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거부한 미국 특허청 처분은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으로 글로벌 지식재산권 논의도 큰 변곡점을 맞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아무런 제약 없이 데이터를 빨아들여 내놓는 결과물에 ‘법적인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을 ‘창작자’로 볼 수 있는지 등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질문들을 본격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AI 법인격 부여에 대한 견해는 여러 연구자들의 의견 속에서 긍정론과 부정론이 대립하고 있다. 긍정론 입장은 인공지능이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자(使者)가 될 수 없고, 권리능력 및 의사능력이 없기에 민법상 대리규정을 적용할 수 없어서 거래 상대방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 법체계는 특정 존재에 인격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존재를 법으로 강력하게 보호하고 법적 책임 귀속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법인격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부정론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므로 별개의 법적 주체로 인정하여 법인격으로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4)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인과 법인에 이어서 제3의 권리주체로서 ‘전자인’의 개념을 제안하는 논의도 상당수 있다.
3. 민사·상사 분야에서의 쟁점
AI가 권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함께 권리의 주인이 된다면 그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가.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과 입증책임의 한계
AI 기술의 확산은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 체계에 구조적 고민을 안겨주었다. 첫째, 과실 인정의 어려움이다. AI의 결정 과정은 이른바 ‘블랙박스(Black-box)’ 특성을 지니며, 개발자조차 특정 결과가 도출된 정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전통적 입증책임 구조 하에서 피해자의 입증이 더 어렵게 되어 사법적 구제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인과관계 확정의 곤란성이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외부 데이터가 결합하여 발생하는 사고에서 기술적 결함과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피해자가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나. 상사법상 법적 책임의 문제
상사법 영역에서도 AI는 새로운 법적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일부 쟁점을 간단히 보면, 기업 경영에서 AI 활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이사가 AI 분석 결과를 맹신하거나 혹은 합리적 이유 없이 거부하여 손해를 끼친 경우 상법상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된다.5) 또한,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 계약(전자적 대리인) 시 발생하는 오작동은 거래의 안전 측면에서 민법상 착오나 표현대리 법리의 재해석을 요구한다.
Ⅲ. 자동차 손해배상에서의 책임문제 : 기술과 법의 충돌
1. 자율주행자동차의 책임문제와 관련한 논의
AI의 법인격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주로 자율주행자동차의 책임 문제와 관련되어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전기차인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을 하도록 한 후 뒷좌석에서 자다가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보도가 되기도 하였다. 이 때 뒷좌석에서 자던 차주인은 운전자로 책임을 져야 할지, 자율주행 중인 테슬라 자동차가 책임을 져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인공지능을 탑재한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였고, 일본은 2019년 3월 ‘인간 중심의 AI사회 원칙안’에서 AI 사회 실현을 위한 7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 중 첫 번째 원칙은 “인간 스스로가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원칙이다.6)
2017년 1월 12일 유럽연합의회에서는 AI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hood)’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하였다. EU결의안은 지능형 자율로봇에 대한 개념정의와 함께 로봇 및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법적 책임 소재를 제시한 것이다. 이 결의안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자율적 판단 기능을 수행하는 AI 로봇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자율주행차량의 규범제정이 시급함을 지적하며, 자율주행차량 사고 발생시 피해자 보상에 관한 강제성 있는 ‘보험체계 및 기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이와 함께 정교한 자율로봇에게 ‘전자인간’이라는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리스크 발생에 대비하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7) 이렇게,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의 주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고민이 필요하게 된다.
2. 현행 자배법상 ‘운행자’ 개념의 위기와 재해석
현행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하 ‘자배법’) 제3조는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에게 사고 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다. 여기서 ‘운행자’란 사회통념상 당해 자동차에 대한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향유하는 자를 의미한다.8) 자배법은 기본적으로 운행자에게 1차 배상책임을 두고, 필요시 구상제도로 제작사 책임을 추궁하는 구조로 설명이 되는데, 자율주행이 레벨 4 이상으로 되면, 결함·소프트웨어 오류 등 ‘시스템 원인’이 더 커져 운행자 책임이 과도하게 귀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9) AI가 운전의 주도권을 갖는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 단계로 진화하면서 이러한 고전적 개념은 기술적 현실과 충돌하여 고민할 부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첫째, 운행지배의 형해화(形骸化) 문제이다. 대법원은 그 동안 운행지배를 직접적인 조종 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관리·통제권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왔다. 하지만 자율주행시스템이 전적으로 주행을 담당하고 인간은 ‘승객’의 지위에 머무는 경우, 단지 목적지를 설정하고 시동을 걸었다는 행위만으로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자칫 ‘결과에 대한 책임’이 아닌 ‘보유라는 상태에 대한 책임’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운행이익의 귀속 주체 변화이다. 미래의 모빌리티 환경은 소유 중심에서 공유 서비스 형식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때 운행이익은 차량 보유자 뿐만 아니라 시스템 운영사, 플랫폼 사업자, 심지어는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는 제조사에게까지 분산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운행자 개념은 다양하게 분화된 책임 주체들을 포괄하기에 법리적 수용력이 부족하게 되었다.10) 결국 미래의 운행자 개념은 ‘물리적 지배’가 아닌 ‘디지털 거버넌스 및 시스템 유지보수의 관리 책임’으로 재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3. 입증책임과 제조물책임의 한계
AI에게도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는 앞서 언급한 논의처럼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기술이 발전하여 자율주행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율주행 자동차가 운행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될 경우 레벨 3 자율주행자동차 수준을 가정하여 만들어진 현행 자율주행자동차 사고 책임 배분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레벨 3 자율주행자동차는 자율주행 장치가 제어권 전환 신호를 하면 인간운전자가 즉시 조향장치를 통제해야 하는 등 자율주행 장치와 인간 운전자가 번갈아가며 운전하는 것이고, 레벨 4는 특정 지역에서만 자율주행 장치가 전적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다. 레벨 4 이상에서 자율주행 기능의 역할이 커지는 것인데, 이 때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책임을 자율주행 기능 또는 그 기능을 만든 제작사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현행 자배법에서는 자율주행자동차 사고 시에 운행자가 피해자에게 우선 배상하고 구상제도를 통해 운행자와 제작사 사이에 책임배분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즉, 자율주행자동차 사고가 나면 운행자의 보험회사가 피해자에게 우선 배상함으로써 피해자를 신속히 보호할 수 있고, 운행자가 가입한 보험회사는 구상제도를 통해 배상금의 일부를 제작사 또는 제작사의 보험회사로부터 돌려받게 됨으로써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험금이 운행자와 제작사 사이의 책임만큼 배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레벨 4 이상 자율주행자동차 시대에 현행 사고 책임제도를 적용할 경우 원인불명 사고책임이 운행자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운행자의 불만이 높아지고, 이에 대한 사고 책임제도 전환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11)
자율주행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자배법상 운행자 책임 외에도 제조사를 상대로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프트웨어의 결함을 입증하는 과정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할 만큼 쉽지 않다.
전통적인 제조물책임 법리 하에서 피해자는 ①제조물의 결함, ②손해의 발생, ③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특성상 일반인이 수백만 줄의 코드를 분석하여 오작동의 근거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12) 사고기록장치(EDR)가 있다고 하여도 해당 데이터는 제조사에 의해 독점되거나 암호화되어 있어 피해자의 접근권이 제한되어 피해자 개인이 쉽게 알아내기는 어렵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사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정 상황(예: 시스템의 통제권 전환 실패, 설계된 한계 영역 밖의 오작동 등)에서는 제조물의 결함이 존재했던 것으로 ‘법률상 추정’하거나, 제조사가 스스로 결함이 없었음을 증명하게 하는 ‘입증책임의 전환’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위험 기술을 시장에 출시하여 이익을 얻는 제조사가 그 위험 또한 관리해야 한다는 ‘보상책임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4. 미래지향적 책임 모델의 검토
이러한 사고시 책임과 관련하여 현재의 운행자책임제도를 유지하되, 원인불명 사고에 대해 공동책임제도를 도입하여 사고 책임이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13)
책임 주체의 모호성과 입증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영국의 ‘선보상-후구상’ 모델이다. 영국의 「자율주행 및 전기자동차법(Automated and Electric Vehicles Act 2018)」은 자율주행 중 사고 발생 시 피해자가 운전자나 제조사를 상대로 긴 소송을 벌이는 대신 보험자가 우선적으로 손해를 전액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4) 이 체계의 장점은 ‘피해자 구제의 즉각성’에 있다. 보험자는 우선 배상 후 사고의 원인이 소프트웨어 결함이나 하드웨어 오류로 판명될 경우, 제조사를 상대로 사후적인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전문성을 갖춘 대등한 당사자인 보험사와 제조사 간의 법적 공방을 유도함으로써 사법 자원의 낭비를 막고 일반 국민을 보호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이러한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공정성을 담보할 독립적인 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의 도로교통법(StVG) 개정안에서 사고 시 데이터를 엄격히 보존하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모빌리티 사고조사위원회’의 설치가 선행되어야 한다.15)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은 이 기구의 전문적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책임 소재를 판단함으로써 기술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았지만, 주별로 개별적인 법안을 운영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 사고에 대한 책임은 기존의 불법행위법 및 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하여 해결하고 있다.
일본은 2019년 도로교통법 및 도로운송차량법을 개정하여 레벨 3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을 허용하고, 사고발생시 기존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을 적용하여 차량 보유자에게 무과실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고 있다.
Ⅳ. 맺음말 : 인간 중심의 법치주의를 위한 제언
산업혁명을 거쳐 자동차는 우리 생활 속에서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여기에서 또 한번의 편리함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으로 다가왔지만, 이에 따른 사고의 문제가 있게 되었다. 자율주행자동차 중 대표주자로 알려진 테슬라의 경우, 201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오토파일럿 활성화 상태의 테슬라 모델 S가 트레일러와 충돌하여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를 시작으로, 테슬라의 주행 보조 시스템(FSD, Full Self-Driving) 관련 충돌 사고는 계속 보고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것에서 출발하여 발전해 왔지만, 그 기술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법제도의 몫이다. AI와 자율주행으로 대변되는 기술혁신은 우리에게 기존의 책임 법리를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법적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인지 고민을 안겨주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개념을 유지할 것인지, 새로운 ‘전자인’이라는 주체 개념을 도입할 것인지부터 전자인을 인정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까지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 중 자동차손해배상제도도 있다.
자동차손해배상제도의 미래는 단순히 배상 주체를 바꾸는 것을 넘어, ‘위험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사법적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우리는 기술의 혁신을 수용하되, 법의 눈은 언제나 그 기술 너머에 있는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향해야 할 것이다.
1) 경남e뉴스, “[경남e뉴스 차석호 칼럼]인간과 컴퓨터의 첫 대결은 언제였을까?”, 2023년 7월 20일자<http://www.gnenews.kr/news/view.php?no=596>, (2026. 1. 30. 최종방문). 에드박은 이후에 나온 모든 컴퓨터의 조상이라고도 한다. 에드박에서 채택된 프로그램 내장방식과 산술연산, 논리연산은 모든 컴퓨터에 적용되어 있다. 이 대결은 ‘천의 자리가 7이 되는 2의 n제곱을 구하는 문제(2의 21제곱 = 2,097,152)’였다. 이 대결에서는 폰노이만이 승리했다.
2) AI타임스, “미저작권청 “AI가 만든 그림은 저작권 대상 아니다””, 2023년 3월 16일자. <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000> (최종방문 2026. 2. 1.).
3) 송선미, “AI창작물의 저작권 보호에 관한 해외 동향”, Copyright Issue Report 2022-02, 한국저작권위원회, 3면.
4) 신송이/김제완,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인정에 관한 법적 쟁점”, 경영법률 제33집 제4호, 2023, 87-88면.
5) 최준선, “AI 시대의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상사법연구 제41권 제1호, 2022, 112-115면.
6) 임형주, “인공지능 관련 법제도의 주요 논의 현황”, TTA저널 207호, 2023, 74-75면.
7) 신송이/김제완,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인정에 관한 법적 쟁점”, 경영법률 제33집 제4호, 2023, 85-86면.
8) 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41642 판결; 이계정, “자율주행자동차와 민사책임”, 서울대학교 법학 제62권 제1호, 2021, 150-155면.
9) 보험신보, “이슈-자동차보험의 미래는?”, 2023년 4월 10일자. <https://www.insweek.co.kr/60068>, (최종방문 : 2026. 2. 1.).
10) 황창근, “자율주행자동차 사고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연구”, 홍익법학 제21권 제4호, 2020, 412-415면.
11) 기승도, “자율주행자동차 발전에 대응한 사고책임제도 개선 방향”, KIRI 리포트 이슈분석, 2023.2, 7-8면.
12) 김병필, “인공지능의 법적 쟁점: 불법행위 책임을 중심으로”, 정보법학 제23권 제3호, 2019, 50-52면.
13) 기승도, “자율주행자동차 발전에 대응한 사고책임제도 개선 방향”, KIRI 리포트 이슈분석, 2023.2, 8면.
14) Automated and Electric Vehicles Act 2018 (UK), Section 2: “The insurer is liable for that damage.” ; 이규희, “영국의 자율주행자동차 보험 관련 법률 제정”, 국회입법조사처 외국입법 동향과 분석 vol.6, 2019, 2면.
15) 독일 도로교통법(StVG) 제1g조 및 제15조에 따른 사고 데이터 저장 및 기술적 감독관(Technische Aufsicht)의 의무 규정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해외단신, 모빌리티데이터법제정”, 2024, <https://www.kistep.re.kr/gpsNewsForeignView.es?mid=a30301000000&list_no=50152>, (최종방문 : 2026.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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