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법학원이 지난 11월 8일 ‘법률가가 된 뜻을 되새기는 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연사로 나선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검사로 공직을 마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 70여 명의 청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법학원 권오곤 원장은 “후배 법률가들뿐 아니라 선배 법률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유익한 내용의 강연”이라며 “(문 전 총장이) 퇴임 이후 미국에서 형사사법제도를 연구하다가 고려대 정보대학의 석좌교수 임명장을 받기 위해 잠시 귀국한 기회에 이번 강좌를 맡아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 후배 법률가들에 가장 강조하고 싶은 덕목은 ‘겸손’과 ‘겸허’
문 전 총장은 “공직생활을 돌아보면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면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겸손하면 그 자체로 성공’이라는 조언, ‘절대 큰소리치며 화내거나 사람을 대놓고 혼내지 말라’는 조언, ‘욕먹을 때 견딜 수 있는 게 실력’이라는 조언들을 언급하며 “그런 가르침들을 꼭 지키려고 노력한 덕에 운이 좋은 검사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따라서 후배 법률가들에게 그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덕목도 ‘겸손’과 ‘겸허’라고 했다.
문 전 총장은 법조인이 갖는 한계이자 어려움에 대해서도 상세히 짚었다.
그가 말한 첫 번째 한계는 ‘대중은 역사적 사실에다가 의혹과 상상까지 붙여 그 모든 것을 사법적 사실로 다뤄주기 원하지만, 법조인은 역사적 사실 중에서도 사법적 사실로 귀결되는 영역이 매우 일부분이라는 걸 안다는 어려움’이다.
두 번째 한계는 ‘아무리 뛰어난 성현의 판단이라도 그가 인간인 이상 오판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세 번째 한계는 ‘현실을 충분히 규율하지 못하는 실정법으로 인해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데, 이때 법적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는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법률가의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면서 특히 “87년 이전의 법률가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앞장서서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면, 87년 이후의 법률가는 서로 상반된 헌법적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법에 따라 분쟁을 해결해 주고 정확히 판단해 주는 역할이 더욱 요청된다”고 했다. 즉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회가 요구하는 법률가의 역할도 달라졌음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 “공정이라는 가치도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어”
문 전 총장은 조선 말기의 역사서 ‘당의통략(黨議通略)’에 나오는 말인 “당쟁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일의 진상이나 옳고 그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그 일이 우리 당에 좋은 쪽으로 흘러갈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는다”를 인용, “지금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했다.
“일의 옳고 그름이나 진상을 따지기보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야 우리에게 좋다’는 계산과 진영 논리에 빠진 구성원이 가득한 사회는 불행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법률가들은 정치나 행정과는 달리 가치중립의 영역인 법을 다루는 사람들로서, 공정이라는 가치조차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한국법학원은 2016년부터 매해 사회에 귀감이 되는 저명 법률가를 초빙하여 ‘법률가가 된 뜻을 되새기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강좌는 지난 4월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의 특강에 이어 2019년도에 두 번째로 마련된 자리다. 2018년도에는 박시환 전 대법관, 김지형 전 대법관,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2017년도에는 김영란 전 대법관, 양창수 전 대법관, 안대희 전 대법관이 강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