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와 양형연구회(회장 이용식)가 지난 25일, 대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양형연구회 4차 심포지엄- 화이트칼라 범죄와 양형’을 개최했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망을 가진 사람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행하는 범죄다.
김영란 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의 양형에 관해 지속적인 비판이 제기되어 왔고, 이는 국민이 사법을 불신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면서 “이번 심포지엄 논의를 바탕으로 향후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을 설정·수정하는데 밑거름 삼겠다”고 했다.
양형위 산하 양형연구회는 양형만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 연구회로서 지난해 7월 창립됐다. 이용식 회장은 “화이트칼라 범죄는 고도의 전문성을 지녀서 적발과 처벌이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범죄인 뇌물 및 횡령·배임 범죄의 처벌과 양형의 공정성이 사회적으로 특히 논란이 되는 만큼 학계와 실무계,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공무원 범죄의 양형’과 ‘횡령·배임 범죄의 양형’ 두 세션으로 진행됐다. 발표자는 한남대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와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송오섭 판사, 토론자로는 광주고등법원 전주부 김종우 고법판사, 법무법인 광장 나상용 변호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황지태 연구위원, 한양대 경영학부 이창민 교수, 대검찰청 연구관 차호동 검사, 경찰대 행정학과 최이문 교수가 참여했다.
■ 고위공직자 뇌물수수 솜방망이 처벌?
가중요소인 ‘3급 이상 공무원’ 적용 빈도 높아
제1세션 ‘공무원범죄의 양형’ 발제는 한남대학교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가 했다. ‘뇌물수수 범죄 양형과 그 편차에 관하여: 법관과 법관들의 판결’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박 교수는 법원이 제공한 2016년~2018년 사이 뇌물수수 사건 총 644건을 연구자료로 하여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이 연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직접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진 최초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박 교수는 공무원범죄 중 특히 뇌물수수죄에 한정하여 양형 편차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박 교수가 연구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은 것은 △초점적 관심이론(형식합리성) △비판범죄학(법은 지배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 △법정행위자이론(법관, 검사, 변호사의 역할) 총 세 가지다.
뇌물수수 범죄는 금액에 따라 1유형부터 6유형으로 분류된다. 박 교수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3년간 각 유형의 사건 수는 1유형(1000만원 미만)이 193건, 2유형(1000만원 이상~3000만원 미만)이 217건, 3유형(3000만원 이상~5000만원 미만)이 87건, 4유형(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이 78건, 5유형(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이 61건, 6유형(5억원 이상)이 8건이다. 이 가운데 집행유예가 선고된 비율은 전체 644건 중 291건으로 45.2%다. 집행유예 가능성은 합의부일수록, 또 금액이 낮을수록 큰 경향을 보였고, 경합 사건일수록 집행유예 가능성이 적었다.
박 교수는 어느 재판부에서 사건을 처리했는지에 따라 양형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서로 간 유사성이 없어 비교가 부적절한 사건 242건을 배제하는 성향점수 매칭(Prospensity Score Matching, PSM) 방식을 거쳤다. 그 결과 뇌물수수 사건의 양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재판부’, 즉 사건의 경합 여부, 그리고 단독 또는 합의부인지 여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재판부 요인의 영향력 비중은 45.7%로, 양형인자 총 19가지의 영향력 비중이 약 3%, 재판 당사자 연령이나 성별이 미치는 영향력이 1%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비중이다.
단독부에서는 양형인자를 고려하는 비율이 8%인데 반하여 합의부는 1.8%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은 유의미한 차이다. 단독재판에서 특히 고려 빈도가 높은 양형인자는 특별감경인자인 ‘요구·약속에 그친 경우’, 일반감경인자인 ‘진지한 반성’, 일반가중인자인 ‘3급 이상 공무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고위공무원일수록 솜방망이 처벌일 것이라는 대중의 우려와 달리 3급 이상 공무원의 뇌물수수 범죄 처벌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양형인자의 영향력은 미비하고 뇌물 금액이나 경합 여부 등 재판부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며, 뇌물수수죄 처벌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합의 어려운 합의부 특성상 형식합리성 높게 나타나는 것”
1세션 토론자인 광주고등법원 전주부 김종우 고법판사는 박 교수의 연구 결과가 선행 연구인 ‘뇌물수수죄의 양형기준제도 준수현황 및 개선방안- 김혜정, 기광도’의 연구 결과와 다르게 도출된 것에 주목했다.
2011년~2013년까지 선고된 뇌물수수죄의 1심 판결을 대상으로 이뤄진 선행 연구는 합의재판부보다 단독재판부의 양형기준 부합비율이 높다고 봤다. 그러나 박 교수의 이번 연구에서는 오히려 합의부가 뇌물 금액과 유형이라는 형식합리성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판사는 “선행 연구에서는 성향점수 매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합의부의 형식합리성이 높은 것은 합의의 어려움을 피하려고 금액과 유형에 맞춰 형식적으로 양형을 정하기 때문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면서 “이처럼 합의부가 더 형식합리적으로 양형을 판단한다면, 원칙적으로 단독사건에 해당하는 것을 재정합의 결정을 거쳐 합의부로 가져오는 비율이 현재 50%가 넘는다는 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단독부와 합의부 양형 비교 참신하다”
1세션 토론자인 법무법인 광장 나상용 변호사는 동일하게 중한 사건이 각각 단독 또는 합의부에 배정되었을 때 같은 선고가 나올지에 착안점을 두고 진행된 이번 연구의 참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나 변호사는 “많은 법조인이 합의부 선고량 높음, 금액 높을수록 형량 증가, 경합일수록 형량 증가, 요구 약속에 그치면 형량 감소, 진지한 반성 있으면 형량 감소 등의 경향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지만, 합의부인지 단독인지의 영향이 크다는 점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자는 형식합리성이 높아 금액 중심의 처벌이 이뤄지고 있는 합의부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형식합리성이 극복되어야 한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비판범죄론적 변수로 추가 연구 이뤄져야”
1세션 토론자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황지태 연구위원은 “발표자가 비판범죄론적 화두를 제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분석에 비판범죄론 관련 변수들이 활용되지 못한 것은 법원이 제공한 자료가 가진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며 “추후 법원과 경찰, 검찰의 협조를 통해 적절한 정보를 얻고 관련 변수들을 마련해 추가적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비판범죄론적 분석을 위해서는) 범죄자들의 사회계층적 특성이 유사할 개연성이 높은 뇌물수수죄보다는 상대적으로 범죄자의 사회계층적 특성에서 편차가 나타날 확률이 높은 뇌물공여죄를 중심으로 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황 연구위원은 “발표자는 금액 중심의 처벌이 적절하지 않다는 암시를 주었는데, 분석 결과와 발표자의 문제의식을 연결한 주장은 발제에서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 “현행 횡령·배임 양형기준,
최고경영자나 임원 등 엄단에는 부족하다”
제2세션 ‘횡령·배임 범죄의 양형’ 발표는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송오섭 판사가 했다. 송 판사는 발제를 통해 2009년 설정된 이후 수정 한번 없이 10년을 경과한 횡령·배임 범죄의 양형기준 시행 효과를 살펴보고, 횡령·배임 범죄에 대한 각계의 비판점을 반영한 수정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양형기준은 횡령과 배임 범죄를 구분하지 않고 설정됐다. 이는 양자 모두 신임관계에 위반한 이익취득이라는 점에 동질성이 있고 형법 및 특별법상 법정형이 동일하며, 양형 실무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송 판사의 설명이다. 판례 및 학설도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한 횡령과 배임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인정되는 죄명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횡령·배임 범죄의 양형기준은 준수율이 평균 93.9%로서 다른 범죄군의 평균 준수율(89.7%)을 상회한다. 하지만 5유형(300억 이상)만은 준수율이 54.6%로 매우 낮게 나타났는데 송 판사는 이 점에 대해 “양형기준 설정 당시 고액 경제범죄의 권고형량을 의도적으로 상향한 결과 구체적 죄질을 중시하는 실무의 양형 감각과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송 판사는 “양형기준 시행 이후 전체적으로 실형률과 평균형량이 증가했다”면서 “특히 이전보다 대기업 지배주주, 최고경영자 등의 횡령·배임 범죄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나아가 양형기준 시행 이전에는 판결 간 형량 편차가 21.7개월이었던 데 반해 양형기준 시행 이후 편차가 5.1개월로까지 감소한 것은 긍정적인 효과라고 봤다. 이득액에 비례하여 형량 및 실형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해져 양형의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했다는 점도 장점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학계와 국민의 비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현행 양형기준은 기업의 지배주주, 최고경영자, 임원 등 고위경영자에 대해 엄정한 양형을 실현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이에 송 판사는 국민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도록 기업범죄 특성에 맞는 유형 분류 방안을 창안하되 조직적 사기를 별도로 배치한 현행 사기범죄 양형기준을 차용하는 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일반 횡령·배임 범죄와는 다른 특성을 갖는 기업 횡령·배임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 판사는 기업 횡령·배임 범죄가 일반 횡령·배임 범죄와 다른 점에 대하여 △직접적 피해자인 당해 회사 이외에 주주, 채권자 등 다수의 간접피해자에게 실질적 손해가 귀착된다는 점 △개인적 법익 침해범죄인 일반 횡령·배임 범죄와는 달리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법적 평가라는 관점도 양형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 △국민경제질서 교란으로 인한 손해 방지 등 일반예방적 관점과 국가경쟁력이나 기업의 대외적 신인도 제고를 위한 양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 “경제 위해 재벌 총수 처벌 완화하려는 건 구시대 논리”
2세션 토론자인 한양대 경영학부 이창민 교수는 “양형기준 시행 이후 전반적으로 판결이 엄격해졌다고는 할 수 있으나 재벌 피고인과 비재벌 피고인 간 양형 격차는 12%에서 15%로 오히려 증가했다”는 한 연구 결과(최한수, 2019, “법원은 여전히 재벌(범죄)에 관대한가?” 법경제학연구 제16권 제1호)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연구 결과(홍대운·강정민, 2013,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 분석-법원의 양형기준 준수 여부를 중심으로-” 경제개혁 리포트 2013-13호)를 인용하며 “횡령·배임 액수가 높아질수록 양형기준 구간의 하한을 이탈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300억 이상 피고인 69명 중 41명에 대해 양형기준을 이탈한 형량이 나왔고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피고인 대부분은 양형기준 하한을 이탈하여 형량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경제에 대한 고려가 재벌 총수에 대한 관대한 처벌의 근거가 된다는 사회 통념과 국가경쟁력이나 기업의 대외적 신인도 제고를 위해 재벌 총수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구시대적 논리”라면서 “재벌총수에 대한 유죄 판결이 그룹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한국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충분히 성숙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더 적극적인 것을 요구한다”고도 말했다.
■ “기업 범죄 신설할 경우 법정형 상한까지 나오도록 형량 상향해야”
2세션 토론자인 대검찰청 연구관 차호동 검사는 기업범죄의 특성을 살린 양형기준 설정이 필요하다는 발표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일반 횡령·배임 범죄와 기업 횡령·배임 범죄는 동일한 가중, 감경 요소를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직접적 이득을 얻기 어려운 기업 횡령·배임 범죄에서는 기업 규모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는 결과가 나온다는 지적을 했다.
현행 사기범죄 양형기준 방식을 차용하여 기업 횡령·배임 범죄 기준을 만들자는 발표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하되 “일반 범죄와 기업 범죄를 나누는 취지를 생각하여 소유형을 기업 범죄 특성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조정에 대하여는 “액수가 아닌 범죄 특질에 따른 분류도 고려할 수 있으나 일응 금액을 기준으로 하되 기타 요소를 특별가중·감경 요소로 설정하는 쪽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차 검사는 기업 범죄 유형을 신설할 경우 일정 정도 형량 상향은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현행 기준대로라면 기준 이탈로 처리하지 않고는 어떤 구간에서도 법정형 상한을 선고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면서 “‘기본구간’ 형량 범위 하한은 법정형 하한을 중시하도록 수정하고, 기업 범죄에서는 이득액에 따라 법정형 상한까지 선고될 수 있도록, 또한 이득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지 않도록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양형이 미치는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변화에도 관심을”
2세션 토론자인 경찰대 행정학과 최이문 교수는 “횡령·배임 범죄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집행유예 여부”라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는 아니지만 양형기준 시행 이후 모든 유형에서 집행유예 비율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다만 최 교수는 “발표자의 주장대로 양형기준을 수정할 경우의 효과에 대해 예측할 수 없었다”면서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립과 양형인자 추출뿐 아니라 양형이 미치는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미국양형위원회(United States Sentencing Comission)의 경우 양형기준 변경에 앞서 새로운 양형기준이 가져올 수사, 재판, 범죄예방, 수형자 수에 대한 분석을 실시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 양형위의 운영규정에도 ‘양형기준의 수사 및 재판절차에 미치는 효과, 범죄예방 및 수형자 수의 증감에 미치는 효과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