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가 지난 12일, 성년후견법률지원특별위원회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성년후견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해 5월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에 관한 기본법안’을 대표발의한 원혜영 국회의원 등과 공동주최로 마련됐다.
축사를 전한 한국후견협회 소순무 협회장은 “시행 8년째를 맞이하는 우리나라 성년후견제도는 이제 유아기를 지나 정착기에 접어들었다”면서 “(원혜영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의 내용대로 후견 관련 정부 부처 장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컨트롤타워를 정해 계획을 수립하는 등 제도 발전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 전체 3112건의 후견 사건 중 ‘4건’에 불과한 임의후견
서울가정법원의 권양희 부장판사는 ‘성년후견의 법원 실무 현황과 문제점’을 발표했다. 권 부장판사는 성년후견사건의 심리절차 중 정신감정절차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감정절차가 전국적으로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집중되어 감정서 회보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들었다.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당사자가 있는 경우 더 진행이 곤란하며, 외래감정의 어려움과 감정비용의 부담이 있다고도 했다.
권 부장판사는 개정 민법에 새로 도입된 후견감독인 제도 중 특히 임의후견 감독 사건이 적은 점을 짚었다. 후견감독인의 선임은 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하면서 같이 청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임의후견에서는 후견감독인의 선임절차가 후견개시 절차를 대신한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서울가정법원 후견개시·감독사건 분포 현황을 보면 성년후견이 2141건, 미성년후견이 386건, 한정후견이 379건, 특정후견이 202건인데 비하여 임의후견은 4건에 그쳤다.
전국 법원의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1심 심판문 26건 중 13건의 기각 심판을 분석한 권 부장판사는 “(기각 사례는) 피후견인의 복리에 반하는 경우 다수를 비롯해 법정후견 개시 심리 중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등기한 후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청구를 한 사례, 피후견인의 진정한 의사에 따른 계약으로 볼 수 없는 사례, 피후견인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어 부적합하다고 본 사례 등이었다”고 전했다.
후견 부수사건의 증가 추세도 지적됐다. 후견 부수사건이란 후견개시 및 감독 사건과 별개 사건으로 청구하고 심판하도록 한 사건인데 이에는 후견인 대리권범위 변경, 재산목록작성기간 연장허가, 후견종료, 피후견인 거주건물 등 처분허가, 후견(감독)인 변경·선임, 후견(감독)인 보수수여 등의 사항들이 포함된다. 권 부장판사가 제시한 서울가정법원의 현황 통계에 따르면 부수사건의 접수 건수는 2015년 170건에서 2016년 354건, 2017년 658건으로 급격히 늘어난 이래로 2018년 882건, 2019년 918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의사결정지원으로 전면적 전환하는 입법계획 세워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박인환 교수는 ‘고령자·장애인의 권리옹호와 의사결정지원 촉진을 위한 입법과제’를 발표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성년후견제도가 종래의 사적자치 원칙에 따른 보호체계와 다른 점은 ‘자기결정존중의 관점에서 국가와 사회가 공적 의사결정지원을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했다.
성년후견제도의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서는 “공정증서와 후견감독인 선임 개시요건 등 높은 절차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면서 “전통적 가족 기능이 약화하면서 권익보호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게 된 의사결정능력 장애인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의사결정지원 촉진을 위한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원리적으로는 ‘사적자치’에서 ‘인권옹호 및 사회복지서비스’로 제도의 성격을 변화시켜야 하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과 같은 국제규범적 요청을 충족해야 하며, 국가는 사회복지국가의 새로운 실천모델을 구축한다는 개혁적 마인드로 단일입법에 의한 체계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임의후견을 가장 우선시하는 자율존중 이용모델을 수립하여 종국적으로는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후견제도를 폐지하고 의사결정지원으로 전면적 전환을 하는 입법계획(민법 개정)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70만 치매노인 있는데, 공공후견제도 신청 건수는 93건”
‘공공후견 현황과 발전방향’을 발표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강상경 교수는 “인지지적장애가 있는 복지대상자들에게 의사결정지원제도로서의 후견제도는 사회복지제도가 기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즉, 후견제도는 사회복지제도에 포섭되는 개념이란 것이다.
강 교수는 “후견제도는 인지지적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의 한계를 최소화하여 자기의사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잔존의사결정능력을 최대한 보존하고 본인 의사판단을 통한 활동 및 참여를 최대한 가능하게 지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복지대상자의 기능제약 및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손상이나 제약을 사회복지적 개입을 통해 최소화하여 당사자의 사회적 활동과 참여를 최대한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사회복지제도와 이념이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후견제도의 현황을 진단하기도 했다. 현재 시행 중인 공공후견제도는 치매노인,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국가나 지자체 주도로 후견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후견을 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다.
강 교수가 인용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치매공공후견의 경우 2019년 12월 31일 기준 전국 49개 지역에서 93건의 청구가 들어왔으며 이 중 65건이 인용됐다. 강 교수는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수가 70만 5473명에 이르는 걸 생각하면 공공후견제도를 통해 보호받는 사람의 숫자는 상당히 적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 공공후견 현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등록된 지적장애 및 자폐성장애인의 숫자가 21만 8136명인데 비하여 2018년 기준 후견심판청구는 49건에 그쳤다.
강 교수는 “공공후견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통합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후견서비스 공공재원 시스템을 갖추는 등 통합적 인프라에 기반한 후견 제도의 내실화를 꾀하여야 한다”고 하는 한편 “학대 가족 또는 시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미성년자 공공후견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선임된 후견인 비율, 친족 84.6% vs 전문가 후견인 3.1%
한울후견센터의 송인규 센터장과 이지은 변호사는 ‘한국 후견제도의 실무상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송 센터장과 이 변호사는 현재 서울가정법원 등에 소속된 ‘전문가 후견법인’의 센터장 및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각종 후견 사건들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의견을 제시했다.
먼저 후견개시결정 후 항고, 재항고 등으로 심판기간이 장기화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일본 동경가정법원의 경우 대체로 정신감정절차가 생략되기 때문에 후견개시 결정이 빠르면 신청 후 1~2일 이내에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후견개시심판결정이 확정될 때까지 임시후견인 선임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청구인 혹은 이해관계인이 이 임시후견인 선임 결정에 대하여도 항고를 할 수 있어 심판기간 장기화에 영향을 미치고 피후견인 보호에 공백을 야기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피후견인의 재산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정부3.0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는 ‘상속’과 ‘후견’으로 이원화되어 있지 않아 이를 이용할 경우 피후견인이 사망한 경우와 동일하게 모든 계좌가 동결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후견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금융기관 직원들로 인하여 부동산 담보대출이나 피후견인 명의 통장 개설, 직원 위임 등의 업무신청이 근거 없이 불허되는 불편함도 호소했다.
이 변호사는 “급박하게 법원 허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법원 결정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한편 “선임된 후견인의 비율이 친족이 84.6%인데 비하여 전문가 후견인이 3.1%, 공공후견인이 8.9%로 낮은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 “공공후견법인도 미성년후견인 역할 수행할 수 있어야”
보건복지부 치매정책과 민영신 과장은 전국에 설치되어 2019년부터 지역사회 치매관리(공공후견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치매안심센터’에 대한 설명을 토론에 갈음했다. 현재 업무 흐름도는 시군구 치매안심센터에서 후견대상자를 선정하고 광역지원단의 광역치매센터가 후견인을 추천하며 시군구 치매안심센터와 중앙지원단이 후견심판을 청구한다. 후견감독은 시군구 치매안심센터가 한다.
민 과장은 “사업의 실적이 당초 기대에 비하여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 원인으로 치매안심센터에 과도하게 업무가 집중된 점을 꼽았다. 또한 “치매안심센터가 법률 문제와 복지행정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간호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도 분석했다.
민 과장은 “문제로 지적된 점을 개선하여 2020년에는 개선된 업무절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상반기 발간을 목표로 후견활동 및 후견 관리·감독 매뉴얼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후견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특히 치매공공후견제도를 많이 활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의 김승섭 사무관은 미성년자도 공공후견의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2018년 4월 서울가정법원을 시작으로 미성년자 국선후견인제도도 시행되고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설명이다.
김 사무관은 “정부가 후견비용을 부담하여 후견 업무에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을 갖추고 있는 공공후견법인이 미성년후견인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관은 또한 “민법 제930조 제1항에 따라 미성년후견인은 한 명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10년 이상 장기에 걸쳐 양육의 책임을 부담하고 피학대아동의 경우 정서적 보육이 매우 중요한 점 등을 생각할 때 오직 한 사람만 후견인이 되도록 하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 “금융기관 협조와 임의후견계약 활성화 등에 변협 역할도 필요”
법무법인 율촌의 김성우 변호사는 송인규·이지은 변호사의 주장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며 나온 주장을 부연했다.
김 변호사는 “후견개시재판 단계에 인정되는 대표적인 사전처분인 임시후견인 선임은 즉시 현실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본안인 후견재판이 확정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나 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는 후견사건에서 꼭 필요한 제도”라면서 “이러한 사전처분에 대한 즉시항고의 집행정지 효력을 배제하고, 사전처분에 집행력을 부여하자는 입법론에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금융기관의 비협조, 이해 부족에 대해서도 공감한다”면서 “요즘 은행 실무는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결정문이나 실무를 해석함으로써 적법한 업무수행이 어렵게 되거나 피후견인의 의사나 복리에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대한변협 차원에서 각 시중 은행의 후견에 관한 매뉴얼 부분을 취합하고 세분화된 사례를 수록한 후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등과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매뉴얼을 작성, 배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법무법인 그린의 배태민 변호사는 “일본에서 전체 사건의 45% 정도가 1개월 이내, 77% 정도가 2개월 이내에 후견개시심판이 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심판기간이 길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신감정절차를 생략하여 기간을 단축하자는 주장은 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배 변호사는 “‘감정생략에 의한 심판’에 대하여 우리보다 먼저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피후견인의 정신능력에 대한 부실한 판단 우려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정신능력판정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년후견용 감정 및 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성년후견용 진단서를 정형화하며, 감정 및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에 대해서도 가정법원이 진술을 청취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의후견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변협의 역할을 요청하면서, 그는 제2동경변호사회가 운영하는 개인의 고문변호사(Home Lawyer) 제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배 변호사는 “(일본 고문변호사 제도는) 임의후견계약을 중심으로 임의후견 효력발생시까지 재산관리계약, 사망시 사후사무 위임계약, 유언작성과 유언집행 등을 이용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면서 “변호사회가 변호사를 추천하고 계약내용, 보수, 활동상황 등을 확인한다”고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