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법철학회(회장 진희권 교수)가 지난 6월 27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순연됐던 세 번의 월례독회를 통합하여 진행했다. 이날 윤진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한국 대법원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판결: 일반조항, 사법적극주의 그리고 장래적 판례변경”이라는 주제를 통해 사법적극주의 이론을 살펴보는 한편 대상판결의 의미에 대해 짚어보는 발표를 했다.
이 주제에 대해 토론자로 참여한 서울대 이동진 교수는 “이번 전합체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논거는 ‘사법신뢰 저해’ 및 ‘궁박한 의뢰인 착취의 측면’으로 압축되는데, 사안에 따라 성공보수가 순기능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간과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강원대 이윤정 교수는 “사법부는 입법부와 민주적 정당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법적극주의는 경계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는 한편 “과거의 형사사건과 달리 요즘의 형사사건은 융합적이고 신유형의 범죄가 많아 변호인의 역할이 커졌고, 성공보수는 변호인의 노력의 차이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로 선언하면서도 ‘장래적 판례변경’ 택한 대법원
대법원은 2015년 7월 23일, “형사 피고인과 변호사 사이의 성공보수에 관한 약정은 공서양속에 어긋나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판례는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 약정의 효력을 명시적 설명 없이 긍정해 왔는데, 약정된 성공보수가 과다하다고 판단할 때에는 이를 감액하기도 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선례를 뒤집고 내린 대상판결에서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은 수사·재판의 결과를 금전적인 대가와 결부시킴으로써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그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의뢰인과 일반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법리의 소급적용은,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변호사와 의뢰인이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정상적인 보수도 성공보수의 방식으로 약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장래를 향하여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윤 교수는 “이는 미연방대법원의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법적극주의의 시녀이자 선례구속의 태생적 대적’이라고 표현한 ‘장래적 판례변경’을 한 것”이라면서 “장래적 판례변경은 사법적극주의의 명확한 표지로서, 따라서 이 판결은 사법적극주의의 명확한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이 판결은 외국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판결의 보충의견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법률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변호사 직무 독립성과 공공성을 침해하거나 사법정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공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에서의 사법적극주의, 입법부-사법부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관건”
윤 교수는 사법적극주의를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사법적극주의의 정의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가 존재하지만, 대다수 견해는 이 세 차원을 포함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세 측면은, 법원이 입법부나 행정부의 행위를 쉽게 무효화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하는 ‘사법심사에서의 사법적극주의’, 법원이 선호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법을 넓게 해석하거나 유추를 활용하는 ‘해석에서의 사법적극주의’, 법원이 어느 정도 선례를 존중하는가 하는 점을 나타내는 ‘선례를 얼마나 쉽게 변경하려는가’이다.
윤 교수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무효화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나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특히 ‘사법심사에서의 사법적극주의’와 ‘해석에서의 사법적극주의’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 두 형태의 사법적극주의에 공통된 문제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
‘해석에서의 사법적극주의’는 자제적인 법원과 적극적인 법원을 대비해서 볼 때 이해가 쉽다. 자제적인 법원은 어떤 해석이 법률의 명확한 문언에 의해 지지되지 않을 때, 비록 그러한 해석을 법원 스스로가 선호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 적극적인 법원은 스스로 선호하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법률을 넓게 해석하는데, 그러한 결과가 법률의 문언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을 때에는 유추를 활용하기도 한다.
‘해석에서의 사법적극주의’가 나타난 대표적인 예로는 성전환자의 법적 대우에 관한 독일과 한국의 판례를 들 수 있다. 베를린 고등법원은 출생기록부에 남성으로 기재된 성을 여성으로 바꾸어 달라는 성전환자의 신청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성전환자에 대한 사항을 정하지 않고 있던 신분등록법상 출생기록부 정정에 관한 규정을 유추에 의해 보충한 결과다. 한국 법원 역시 이 논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정(2006. 6. 22. 2004스42)을 한 바 있다.
■ “대상판결, 사법적극주의 관점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다”
윤 교수는 법원이 적극주의적 재판을 할 때 고려해야 할 네 가지 요소로 “①법률의 문언 ②현재의 법체계와의 합치성 ③입법부와 사법부 사이의 상대적 우위 ④법률관계에 주는 충격의 강도”를 들었다.
앞서 언급된 성전환자 판례(2004스42)는 특히 ③번 요소와 관계된 좋은 예다. 윤 교수는 “입법부가 사법부보다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에는 사법적극주의의 근거가 취약한 것으로, 입법부가 정보나 지식 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행동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을 때에는 사법적극주의가 더 쉽게 정당화된다”고 풀이했다. 이 점을 바탕으로 위의 성전환자 판결을 보면, 이 판결이 선고된 2006년에는 입법부가 이 문제에 관해 입법할 것이라는 아무런 조짐이 없었고, 결정이 있은 후 10년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법률이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원의 개입은 더욱 정당화되는 것이다.
윤 교수는 성공보수 판결 또한 이 네 가지 요소를 근거로 살펴본 바, “사법적극주의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판결”이라고 했다. 먼저 성공보수와 관련해서는 법문언상 장애와 기존 법체계와의 불합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부가 이 문제를 법원보다 더 잘 다룰 수 있었는가 하는 점에 관하여는, “판결을 할 당시의 사정에 따르면 국회에 의한 법의 변경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 요소인 ‘법률관계에 주는 충격의 강도’는 성공보수 사건에서 대법관들의 큰 관심사였는데, 판결 선고 전에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까지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은 이미 지급된 돈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법률관계에 미칠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선택한 묘수가 ‘순수한 장래적 판례변경’으로, 대법원은 “이 판결 후에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만이 무효이고, 이 판결 전에 체결된 약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선언했다.
■ “장래적 판례변경, 장래 사건이 아닌 현재의 사건을 판단하는 법원 기능과 맞지 않다”
윤 교수에 따르면 장래적 변경은 ‘선택적 장래적 판례변경’과 ‘순수한 장래적 판례변경’의 두 유형이 있다. 새로운 규칙을 당해 사건과 그 외 제한적 사건에도 적용하도록 하는 ‘선택적 장래적 판례변경’과 관련해서는, 한국에 두 판례가 있다.
하나는 ‘종중 구성원에 관한 판례’로, 관습법에 따르면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이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었고, 여성인 후손은 종중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2005년 7월 21일 선고된 전합체 판결은 “여성을 종중으로부터 배제하는 관습법은 더 이상 효력이 없고 여성도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변경된 견해는 이후 새로이 성립되는 법률관계에 대해 적용되지만 이 사건 청구에 한하여는 소급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다른 하나는 ‘제사 주재자의 결정에 관한 판례’다. 민법 제1008조의3에 따르면 제사를 위한 물건의 소유권은 고인의 제사 주재자에게 속하는데, 전통적으로 고인의 적장자가 제사 주재자였고 대법원도 이를 몇 차례 확인해 왔다. 그러나 2008년 11월 20일 선고된 전합체 판결은 “제사 주재자의 결정에 관한 관습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제사 주재자는 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마찬가지로 이 사건 청구에 한하여 소급 적용되고 이후의 법률관계에만 효력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이에 비하면 성공보수 약정에 대한 판결은 ‘순수한 장래적 판례변경’을 취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윤 교수는 장래적 판례변경 이론 자체를 비판하면서 “장래적 판례변경은 사법부의 기능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은 법원 앞에 놓여진 실제 사건 자체의 시비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지, 앞으로 있을지 모를 사건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래적 판례변경은 사법부를 일종의 ‘초입법부’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윤 교수는 “(대법관들은) 이 사건에서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로 돌릴 경우 약정된 성공보수가 동일한 금액으로 성공보수 아닌 다른 형태로 약정될 수 없었던 사안이란 것을 우려했는데, 이는 보충적 해석 이론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래적 판례변경은 불필요했다”고도 했다. 당사자들이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임을 알았더라면 약정하였을 성공보수 이외의 다른 방식의 금액을 인정할 수 있고, 의뢰인이 이미 지급하였다면 그 금액은 불법원인급여가 되어 반환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윤 교수는 형사사건 성공보수 자체의 효력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무효로 보아야 한다”며 대법원과 입장을 같이 했다. 그는 “형사사건, 그중에서도 특히 형의 양정은 법원의 재량이 많이 작용하고, 이 때문에 형사사건은 민사사건보다 변호인의 역할이 미치는 영향이 적다”면서 “하지만 대개 형사사건 의뢰인은 변호인에 더욱 크게 기대를 하고, 이 기대는 암묵적으로 재판부에 대해 로비를 요구하는 것으로도 이어지는데, 성공보수는 이러한 부당한 기대를 조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의 쟁점이 법률적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예컨대 유죄 판결 이외의 결과를 얻어내는 경우 그 한도에서 성공보수 약정을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