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와 한국조정학회(회장 김용섭 교수)가 지난 7월 3일, “조정제도와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오늘날 조정을 비롯한 ‘대체적 분쟁 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 제도는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장점뿐 아니라 각 분야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박종우 회장은 “특히 복잡한 상사 분쟁을 조정이나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기본법 제정 등 관련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고 하는 한편 “하지만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의 참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영되는 경우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는데, 자칫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향후 ADR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변호사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각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청년 변호사들은 ADR 분야로 더욱 적극적으로 진출하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용섭 회장도 “소송일변도의 분쟁해결로 법원에 사건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ADR의 적극적인 활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변호사는 소송과 ADR을 포함한 종합적인 분쟁 해결 전략을 모색하지 못하면 의뢰인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회장은 “조정에서 변호사는 당사자의 대리인으로서 참여하는 경우와, 조정절차를 주재하는 진행자로서 참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이러한 조정 분야는 새로운 블루오션”이라면서 “현재 다양한 분쟁조정기구에서 조정위원, 조정인, 심사관 또는 조사관으로 활동하는 변호사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 우리나라 조정제도의 현 주소는?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성중탁 교수는 “법원이 조정 활성화를 위하여 1990년 9월, 민사조정법을 제정하고 조정제도 운영방식을 통일한 이래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조정제도는 어느 정도 정착된 상태”라고 평가하면서도 “조정에 친하지 않는 법률문화와 국민의 이해 부족은 여전하고, 법원 주도의 현행 조정제도 운영방식 등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특히 현재의 수소법원 중심으로 이뤄지는 조정제도 하에서, 재판실무는 조정사건으로 회부된 사건 당사자에게 무조건 절차에 적극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 교수는 “소송당사자는 조정절차를 거부할 권리도 있기 때문에, 판사나 조정인은 당사자 출석이 필요하면 왜 필요한 것인지 설득하고, 설득이 효과가 없다면 출석을 강제하지 말고 당사자 없이 절차를 진행하거나 결렬되는 것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정절차를 주재하는 조정인의 자세도 문제되고 있다. 성 교수는 “중재자가 아무리 선의에 기초하여 말한다고 하더라도 분쟁 당사자들은 극심한 다툼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법적 결론을 원하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상담을 하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성 교수는 독일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법원 판사가 조정절차를 진행한 경우, 선입견 없는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당해 소송의 재판에서 해당 판사를 배제하도록 하고 있다. 80~90%의 비율로 수소법원에서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비법관 중심으로 판단자와 조정자를 분리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편 독일이 일정 사건에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한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대상이라고 했다. 독일과 같은 조정전치주의는 당사자와 변호사로 하여금 조정과 재판 준비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여 거부감을 줄이고, 조정성공률도 높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성 교수는 “다만 이를 도입할 때에는, 변호사단체와 같은 외부 기관에서 절차를 거친 경우 조정전치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여 외부기관에 의한 조정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적극적인 홍보 노력도 요청됐다. 지난해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행정형 ADR 기관 및 기구의 숫자는 60여 개다. 성 교수는 “대부분 소속 기관 내에서 분쟁조정팀이나 위원회 등의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고 최근 더욱 활성화 되는 추세이지만, 홍보가 충분하지 않아 변호사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ADR 제도 전반에 대한 적극적 홍보 노력에 더하여 ADR 기본법 제정을 통한 통합적 운영과 ADR 종합지원센터 설립 등을 통한 국가 지원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기본법 제정의 경우 특히 변호사회가 앞장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면서, 변호사들이 행정형 ADR의 기관 조정위원으로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성 교수는 “일본의 경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된 특별한 ADR 절차에서 일본 변호사회가 지대한 역할을 하여 주목 받았는데, 우리 변호사회도 ADR 제도 전반에 적극 참여하며 중요한 역할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정 등 ADR 제도 성공 여부는 역량 갖춘 조정인들에 달렸다”
법조인 양성제도가 바뀐지 10년 만에 변호사 숫자가 2만 5천을 넘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법률시장에서 변호사의 역할을 조정전문가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됐다. 성 교수는 “그간 조정은 ‘법외절차’ 내지는 ‘비법조화’라는 인식을 주었는데,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주도하는 사적 조정 시장 형성과 활성화가 이뤄지면 이러한 인식도 불식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조정 등 ADR 제도의 성공 여부는 절차 주재자인 조정인의 역량에 달렸다”면서 “조정이 신뢰받는 분쟁해결절차가 될 수 있으려면 조정능력과 역량을 갖춘 변호사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변호사에게 소송뿐 아니라 협상, 조정기법 등 다양한 분쟁해결기법에 대한 전문적 분쟁해결 역량을 배양할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로스쿨 교육과정에 ADR 관련 교과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이수하도록 하고, 사법연수원과 대한변협 등에서 집체교육을 실시한 뒤 해당 교육을 모두 이수한 변호사에게 ‘조정전문 변호사’ 인증을 해주는 것도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가 아닌 생업에 종사하는 조정위원의 경우라면 최소한 조정제도의 개관, 조정과 소송의 관계, 조정 진행 방법, 조정 기법, 합의서 작성 방법, 비밀유지 등 유의 사항, 조정 관련 법령 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 교육시간은 배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성 교수는 유럽조정자행위규약(European Code of Conduct for Mediators), EU조정지침, 미국 중재협회의 ‘조정인의 모범행위준칙(Model Standards of conduct for Mediators)’ 등 중요한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서, 조정인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역량은 ‘전문적 지식’ 및 ‘조정절차에서 습득한 사실에 대한 비밀유지의무’라고 했다.
그는 “가정법원의 후견적 기능이 강조되는 가사조정과는 달리 최소한 민사조정절차에서는 비밀을 보호할 필요가 있고, 이는 조정과 소송의 준별,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보장, 조정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현재 비밀보호와 관련된 우리나라 민사조정법 규정은 간명하면서도 합리적인데, 특히 조정위원에게 형사제재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조정절차의 비밀을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기존 변호사, 오히려 조정에 적합치 않은 사고방식 갖춰 온 측면 있어 교육 절실”
성 교수의 발표에 대하여 토론자로 참여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최계영 교수는 “수소법원 조정은 높은 성립률에도 불구하고 수소법원의 판단권을 배경으로 한다는 한계가 있는데, 수소법원 판단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조정성립률이 낮아진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면서 “수소법원 밖에서도 조정이 높은 성립률을 보이려면 어떠한 방안이 필요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또한 “기존 법조직역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책임 소재나 범위를 일도양단적으로 판단하거나 주장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는 조정을 촉진하는 데 유리하지만은 않은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갖고 있다”면서 “조정 기법과 조정 사례 등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법무법인 클라스 곽정민 변호사는 “실제 조정에서는 보다 유리한 협상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변론절차와 유사한 수준의 자료들을 제출하여 상대방이나 조정위원을 설득하게 된다”고 전하며 “조정이 결렬될 경우, 적어도 조정과정에서 현출된 객관적 증거자료나 당사자의 모순된 언동이 그 후 변론과정에서 적절히 원용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당사자의 비밀유지의무가 신중하게 접근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조정인 인증제도에 대해서는 “현재의 전문변호사 등록제도와 연계를 고려하되, 조정 분야는 지나치게 광범위하므로 업무 분야의 다양화·세분화 추세에 맞춰 예컨대 ‘대분류(의료)-소분류(의료조정)’ 등과 같이 자신의 전문성 표방을 위한 명칭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 민서의 김정덕 변호사는 “조정위원으로서 조정을 진행하다 보면 당사자 간 밀접한 대면진행을 통해 오히려 서로 적대적 감정과 분노를 더 키워버린 경우도 존재한다”면서 “이는 어떤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과 연계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당사자가 조정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조정에 회부하는 재판부들은 그 관행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당사자로 하여금 조정기관(조정전담부, 담당재판부, 조정위원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특정기관 선호현상 또는 특정기관 기피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해결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하는 한편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접수된 민사본안 약 100만 건 중 70만 건이 소액사건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소액사건 중 1,000만원 이하 사건들과 본인소송 사건들은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하는 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