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법학회(회장 강영수 부장판사, 이규호 교수)가 지난 7월 21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사례연구회를 개최했다. 이날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준필수특허 보유자의 사업모델에 대한 공정거래법의 적용: 퀄컴 사건에 대한 2019. 12. 4. 서울고등법원 판결 분석”을 발표했다. 이 판결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2017년 1월 20일 퀄컴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약 1조 311억 원 납부명령을 내린 데 대한 것으로, 공정위는 앞서 2009년 7월에도 퀄컴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약 2,731억 원)을 내린 바 있다. 홍 교수는 후자를 ‘퀄컴Ⅰ 사건’으로, 이번 사안을 ‘퀄컴Ⅱ 사건’으로 구분했다. 공정위의 시정명령 10개 중 4개만을 취소하고 과징금 처분은 그대로 인정한 ‘퀄컴Ⅱ 사건’은 현재 대법원 2020두31897호로 계속 중이다.
1985년 설립된 미국의 다국적 반도체 및 통신장비 기업인 퀄컴은 이동통신 특허 라이선스(실시허락) 사업과 그 특허를 이용한 모뎀칩셋 사업을 모두 영위하는 수직적인 사업 통합을 그 특징으로 한다. 퀄컴은 이동통신 표준이 2세대, 3세대, 4세대로 진화함(CDMA, CDMA2000, WCDMA, LTE)에 따라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표준기술에 포함되도록 하면서, 이동통신 특허를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게는 라이선스하지 않고 휴대폰 제조사에게만 라이선스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이동통신 특허 라이선스 시장에서는 해당 통신 방식을 개발한 원천기술 보유자가 공급자가 되어 모뎀칩셋 등 부품 제조사, 휴대폰 제조사, 통신장비 제조사 등에게 특허기술을 라이선스하고 그 대가로 실시료를 받는다. 퀄컴은 CDMA 표준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특허의 90% 이상을 차지했지만, WCDMA 표준에서 LTE 표준으로 이동하는 시대에는 점차 그 비중이 낮아져 WCDMA에서는 27%, LTE에선 16%까지 내려앉았다.
홍 교수는 “이처럼 휴대폰 부품 시장에서 퀄컴의 지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표준별 모뎀칩셋 시장에서 퀄컴은 여전히 경쟁업체에 비해 경쟁상 우위를 갖고 있다”면서 “그 원인은 특허라이선스-모뎀칩셋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사업 통합과 휴대폰 단일 단계 라이선스 정책으로 요약되는 퀄컴의 사업모델에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퀄컴의 모뎀칩셋 사업부는 특허 라이선스를 내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반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는 특허 라이선스가 없는 상태에서 모뎀칩셋을 제조·판매하게 되며, 퀄컴은 자신의 모뎀칩셋을 구입하는 휴대폰 제조사에 대하여 유리한 조건으로 특허 라이선스를 하는 식으로 협상력의 우위를 갖는다.
■ 공정위가 분류한 행위 유형과 공정거래법의 적용
공정위는 이 사안에서 문제되는 퀄컴의 행위 유형을 “①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 대한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거절·제한한 행위 ②휴대폰 제조사에 대한 모뎀칩셋의 공급과 라이선스를 연계한 행위 ③휴대폰 제조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과한 행위” 세 가지로 분류했다.
②유형인 “휴대폰 제조사에 대한 모뎀칩셋의 공급과 라이선스를 연계한 행위”는 ‘라이선스 없으면 모뎀칩셋 없다(No License, No Chips)’ 정책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③유형에서는 퀄컴이 거래상대방과 사이에서 세 가지 조건을 부과한 것이 문제되었는데, (i)휴대폰 제조사에게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하면서 표준필수특허를 포함한 퀄컴 특허 포트폴리오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라이선스를 요구한 행위(포괄 라이선스 조건), (ii)성실한 협상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실시료를 전체 휴대폰 판매가격의 일정 비율로 책정한 행위(휴대폰 가격기준 실시료 조건), (iii)특허 라이선스의 대가로 휴대폰 제조사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자신과 자신의 모뎀칩셋을 구매한 고객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향후 특허침해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부과한 행위(크로스 그랜트 조건) 등이다.
사안에서 공정위가 적용한 공정거래법 규정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중 부당한 사업활동 방해행위 조항(법 제3조의2 제1항 제3호)’과 ‘불공정거래행위 중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조항(법 제23조 제1항 제4호)’이다.
홍 교수에 따르면, ‘부당한 사업활동 방해행위’의 구체적 유형은 공정거래법 제3조의2 제2항의 위임에 따라 법 시행령 제5조 제3항에 규정되어 있고, 법 시행령 제5조 제6항의 재위임에 따라 세부적인 유형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심사기준’ 고시 Ⅳ. 3.에 추가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 사건에 적용된 구체적·세부적 유형은 시행령에 규정된 ‘필수적인 요소의 사용 또는 접근의 거절·중단·제한 행위’와 위 고시에 규정된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타당성 없는 조건 제시 행위’ 및 ‘불이익 거래 또는 행위 강제 행위’이다.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경우 그 구체적 유형은 공정거래법 제23조 제3항의 위임에 따라 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 관련 [별표 1의2]에 규정되어 있는데, 이 사건에 적용된 유형은 ‘불이익제공 행위’이다.
■ 서울고법, 공정위의 행위 분류에 맞춰 판단
서울고법은 공정위가 분류한 퀄컴의 행위 유형을 바탕으로 ①~③행위에 대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여부를 먼저 판단한 뒤 ②, ③행위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을 취했다. 퀄컴은 관련 시장 획정 방법과 범위, 시장지배적 사업자 해당 여부, 불이익제공의 행위 요건 관련 쟁점 모두를 하나하나 다퉜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고법은 먼저, 문제된 세 유형의 관련시장을 세계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관련 시장과 세계적인 표준별 모뎀칩셋 관련 시장으로 획정하고, 각 시장에서 퀄컴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한다는 공정위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홍 교수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①유형: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 대한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거절·제한한 행위’에 대하여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타당성 없는 조건 제시 행위의 성립’은 인정하고 ‘필수적인 요소의 사용 또는 접근의 거절·중단·제한 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불이익 거래 또는 행위 강제 행위는 ‘②유형: 휴대폰 제조사에 대한 모뎀칩셋의 공급과 라이선스를 연계한 행위’에 대하여는 인정하고 ‘③유형: 휴대폰 제조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과한 행위’에 대하여는 인정하지 않았다.
부당성(경쟁제한성) 요건은 ①, ②행위에 대하여는 독자적으로도 인정하고 서로 연계되는 일련의 행위로서도 인정하였지만, ③행위에 대하여는 ①, ②행위와의 연계성도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부당성도 부정했다.
한편 홍 교수는 “불공정거래행위로서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거래상 지위 여부’와 ‘그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거래한 행위 여부’를 판단하는데,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거래한 행위 여부’ 판단에서 불이익제공 행위의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면서 “이 사건에서 법원은 ②, ③행위에 공통적으로 퀄컴의 거래상 지위는 인정하였지만, ②행위에 대하여는 불이익제공 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반면 ③행위에 대하여는 불이익제공 행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 서울고법 판결과 공정위 의결, ③유형 판단과 FRAND 확약 판단에서 차이
홍 교수에 따르면 ‘③유형: 휴대폰 제조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과한 행위’에 대한 판단 차이는 컸다. 먼저 공정위는 ③행위가 독자적으로 또는 ①, ② 행위와 연계하여 배제남용에 해당한다며 ③행위의 경쟁제한성을 인정했다. 이에 더하여 공정위는 휴대폰 제조사의 기술 개발 동기를 제한하여 기술혁신을 저해하는 효과, 휴대폰 제조사의 비용 증가로 인한 최종 소비자 후생 저해 효과도 지적했다.
반면 서울고법은 “③행위는 ①, ②행위에 따른 효과가 반영된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에 불과하고 퀄컴과 휴대폰 제조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 중 일부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③행위가 독자적인 경쟁제한성이 인정되는지를 평가했고, 그 결과 경쟁제한성은 부정됐다. 휴대폰 제조사에 대한 기술혁신 저해 효과와 최종 소비자 후생 저해 효과 판단도 마찬가지로 부정됐다. 서울고법이 ①, ②행위와 ③행위 간 연계성을 인정하지 않은 점이 결정적인 차이를 낳은 것으로 해석된다.
홍 교수는 “③행위의 경우 행위의 상대방은 휴대폰 제조사이나 그로 인하여 사업활동이 방해되어 경쟁제한성이 문제되는 다른 사업자는 휴대폰 제조사일 수도 있고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자에 대한 경쟁제한성이 모두 쟁점이 되었다”면서 “여기서 ③행위를 구성하는 3가지 조건(포괄 라이선스 조건, 휴대폰 가격기준 실시료 조건, 크로스 그랜트 조건)을 하나의 묶음 또는 덩어리(package)로 보아 그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었는데, 공정위 의결은 이 점을 다툰 퀄컴의 주장을 배척하였으나, 서울고법은 공정위와 다른 입장을 취하여 각 조건을 개별적으로 판단한 결과 각 개별 조건이 독자적으로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 미치는 경쟁제한성이 낮게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행위에 공통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또다른 주요 쟁점은 퀄컴이 FRAND 확약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그로 인한 효과가 ①~③ 행위의 경쟁제한성 판단에 고려될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고려된다면 그 정도이다.
표준화기구의 표준기술 선정 과정에서는 표준기술에 포함된 표준필수특허 보유자가 표준기술 선정 후 ‘사후적인 기회주의(ex post opportunism)’에 기초한 행위를 하게 될 위험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한 장치로서 FRAND 확약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로열티 기타 이용조건의 내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라이선스 제공 과정에서의 절차의 공정성 문제도 된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표준필수특허 보유자의 FRAND 확약 위반 여부는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제공 방식이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부합하는지 여부 △라이선스 계약 체결 협상 과정과 실시료 기타 거래조건의 내용이 FRAND 조건을 구성하는 공정성 요소에 반하는지 여부 △라이선스 계약의 실시료 기타 거래조건의 내용이 FRAND 조건을 구성하는 합리성과 비차별성 요소에 반하는지 여부에 근거하여 검토하게 된다.
사안에서 ‘①유형: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 대한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거절·제한한 행위’로 인한 경쟁 영향 판단에서 FRAND 확약 위반의 기여 여부와 그 정도에 대한 인식에서 서울고법과 공정위는 차이를 보였다. 서울고법은, 공정위 의결에서 경쟁제한 효과 인정의 근거로 제시한 ‘FRAND 확약 위반으로 인한 표준 설정의 이익 상실과 독점 유발, 모뎀칩셋 시장의 혁신경쟁 저해, 휴대폰 제조사에 대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 체결 강제 수단 작용’의 사정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고법은 “FRAND 조건에 따라 제한 없는 접근과 사용이 가능한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부합한다”는 전제에서 “①행위는 위와 같은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반하여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들에 대하여 타당성 없는 조건을 제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③유형: 휴대폰 제조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과한 행위’와 관련해서는 FRAND 확약 위반 여부가 특히 크게 다투어졌다. 공정위는 퀄컴이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수취하는 실시료가 FRAND 실시료율을 초과하는 것을 전제로 판단했으나, 서울고법은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수취하는 실시료율 자체가 FRAND 실시료율을 초과하는지를 공정위가 증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또한 공정위는 ③행위를 구성하는 3가지 조건 부과를 덩어리로 평가하여 ‘FRAND 협상 기회 및 합리적인 라이선스 선택권을 배제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강제하는 행위’로 인정하였는데, 서울고법은 이와 달리 각 조건을 개별적으로 살펴 다른 판단을 냈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