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사판례연구회가 지난 1월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함께 판례연구회를 개최했다. 온라인으로 개최된 이번 연구회에는 형사법학자와 실무자 등 총 40여 명이 접속해 각 주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이날 발표된 주제는 류부곤 경찰대 법학과 교수의 “사전자기록위작죄에 있어서 위작의 개념(대법원 2019도11294 전합체)”과, 허황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대법원 2015도9436 전합체)”다.
■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꾸미기 위한 조작 행위…“‘위작’의 개념이해가 중요 쟁점”
류부곤 교수가 발표한 주제는 2020년 8월 27일 선고된 2019도11294 전합체 판결 사안으로,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는 대표이사와 직원의 거래시스템 조작 행위가 문제됐다.
피고인 A는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업체인 ‘★★코인’(이하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회사 업무 전반을 총괄했고, 피고인 B는 이 회사의 사내이사로서 회사 자금 등을 관리했다. 피고인들은 인터넷상 가상자산 거래소(이하 ‘거래소’)를 개장하면서, 마치 많은 회원들이 이 거래소에서 사용 중인 가상자산 거래시스템(이하 ‘거래시스템’)을 이용해 매매주문을 내고 그에 따라 매매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처럼 꾸미고자 공모했다.
피고인들은 먼저 위 거래시스템상 차명계정을 생성하고, 그 차명계정에 실제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원화(KRW)와 가상자산을 마치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원화 포인트와 가상자산 포인트(이하 ‘원화 포인트 등’)를 허위 입력했다. 이어 자동주문 프로그램을 이용해 위 차명계정을 주문자로 하고, 위와 같이 허위 입력한 원화 포인트 등에 대한 매매주문을 냈다.
구체적으로는 2018년 1월 5일, 차명계정(ID) 5개를 생성한 후 총 30회에 걸쳐 위 차명계정에 보유량 정보를 조작 입력하여 이를 위 거래시스템상에 표시했고, 같은 해 1월 19일에는 차명계정 10개를 새롭게 생성한 후 총 60회에 걸쳐 위 차명계정에 계정별로 원화 포인트 등의 보유량 정보를 조작 입력한 뒤, 이를 위 거래시스템상에 표시했다.
류부곤 교수는 “형법 제232조의2 사전자기록위작·변작죄가 문서죄에서의 ‘위조’와 달리 ‘위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위작’도 위조와 동일하게 ‘작성권한 없는 자의 유형위조(내용이 아닌 형식의 위조)’로만 보아야 할지, 아니면 위조와는 다르게 ‘작성권한이 있는 자의 무형위조(내용이 허위인 것)’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지 논란이 있다”면서 “대상판결 사안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직접 자신이 운영하는 거래시스템에 허위의 거래정보를 입력했다는 점에서 외형상 ‘작성권한이 있는 자가 허위의 내용을 작성한 행위’로 보이고, 따라서 위와 같은 ‘위작’의 개념이해를 어떻게 할지에 따라 형법 제232조의2 사전자기록위작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 대법원도 시각차 ‘뚜렷’, 다수의견과 그에 대한 반박 요지 보니...
대법원 다수의견은 “형법 제227조의2 공전자기록등위작죄의 ‘위작’ 개념이 형법 제232조의2 사전자기록등위작죄의 ‘위작’ 개념에 그대로 적용된다”면서, 이에는 “시스템을 설치·운영하는 주체와의 관계에서 전자기록 생성에 관여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 전자기록을 작출하거나, 전자기록 생성에 필요한 단위정보를 입력하는 경우”는 물론, “시스템의 설치·운영 주체로부터 각자의 직무 범위에서 개개의 단위정보의 입력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허위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시스템 설치·운영 주체의 의사에 반하는 전자기록을 생성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봤다.
다수의견이 이러한 판단의 이유로 제시한 점은 총 7가지다.
① 문언이 가지는 가능한 의미의 범위 안에서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하여 문언의 논리적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체계적 해석을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다.
② 일반 국민은 ‘위작’의 의미를 ‘위조’의 ‘위’와 ‘허위작성’의 ‘작’이 결합한 단어이거나, ‘허위작성’에서 ‘위작’만을 추출한 단어로 받아들이기 쉽고, 해당 문언의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범죄구성요건으로서의 적절한 의미 해석을 바로 도출해 내기 어려우므로, 결국은 유사한 다른 범죄구성요건과의 관계에서 체계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③ 전자기록은 작성명의인을 특정하여 표시할 수 없는 등 문서죄에서와 같은 작성명의인이란 개념을 상정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사문서위조죄의 ‘위조’와 반드시 동일하게 해석해 그 의미를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④ 권한 있는 사람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허위의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시스템 설치·운영 주체의 의사에 반하는 전자기록을 생성하는 행위를 ‘위작’의 범위에서 제외하여 축소해석하는 것은, 입법자의 의사에 반할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대적·사회적 변화에도 맞지 않는 법 해석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⑤ 공전자기록등위작죄와 사전자기록등위작죄는 행위의 객체가 ‘공전자기록’이냐 아니면 ‘사전자기록’이냐만 다를 뿐 다른 구성요건은 모두 동일하므로, 권한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여 행한 유형위조를 사전자기록등위작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를 공전자기록등위작죄로도 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⑥ 사전자기록등위작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위작’ 이외에도 ‘사무처리를 그르치게 할 목적’과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이란 구성요건을 충족해야 하므로, 사안과 같은 경우가 ‘위작’에 해당된다고 보더라도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⑦ 우리나라 형법과 체계가 유사하여 문제점까지 동일한 일본 형법 제161조의2 제1항의 신설 당시 입법 자료에 따르면, ‘데이터를 입력할 권한을 갖는 사람으로서 진실한 데이터를 입력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시스템 설치자의 의사에 반하여 허위의 데이터를 입력하는 행위’도 ‘부정작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반대의견(이기택, 김재형, 박정화, 안철상, 노태악)은 “‘위작’에 유형위조는 물론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도 포함된다는 것은 ‘위작’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형위조와 무형위조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형법 체계에서 일반인이 예견하기 어려운 해석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다수의견이 제시한 위 7가지 이유에 대한 반박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7가지 견해를 제시했다.
① 사문서위조와 사전자기록위작을 달리 규율할 합리적 이유가 없음에도, 유형위조만을 처벌하는 사문서위조와 달리 사전자기록위작에는 무형위조를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명확한 용어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합리적 이유 없이 문언의 의미를 확장하여 처벌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이어서,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반한다.
② 형법 제232조의2에서 정한 ‘위작’에 허위의 전자기록 작성을 포함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사였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입법에 대해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창설하는 수준의 해석으로 처벌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입법의 불비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③ 전자기록의 허위작성 행위에 대한 처벌의 공백이 있다는 이유로 불명확한 규정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고,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면 적절한 입법을 통해 해결할 일이며, 공전자기록과 사전자기록에서 말하는 ‘위작’을 동일한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공전자기록의 무형위조를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사전자기록의 무형위조도 함께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④ 일본 형법의 전자기록 관련 범죄의 행위 태양은 우리나라와 달리 ‘부정작출’인 바, ‘작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무형위조를 포함하는 의미를, 그리고 그 앞에 ‘부정’이라는 용어를 추가하여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그 법문 자체에서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라는 해석을 도출할 수 있고, 이를 다른 용어를 쓰고 있는 우리 형법 해석에 참조할 수는 없다.
⑤ 우리 형법이 사문서 무형위조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공문서와 달리 사적 자치의 영역에서 국가 형벌권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함인데, 허위내용이 담긴 사전자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작성권자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모두 ‘위작’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수사권 남용을 초래할 위험이나 회사의 경영활동 위축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⑥ 다수의견은 사전자기록의 허위작성을 처벌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권한을 남용한 경우로 제한함으로써 ‘위작’에 관한 부당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형법 규정상으로는 권한남용적 허위작성이라는 해석을 도출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⑦ 사전자기록위작죄에서 말하는 ‘위작’의 의미를 다수의견과 같이 보더라도, 대표이사가 당해 회사가 설치·운영하는 시스템의 전자기록에 허위의 정보를 입력한 것은 그것이 곧 회사의 의사에 기한 회사의 행위여서, 시스템 설치·운영 주체인 회사의 의사에 반한다고 할 수 없고 권한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면서까지 처벌영역 확대, 사법부가 할 일 아냐”
류부곤 교수는 “다수의견은 공전자기록위작죄에서의 위작의 법리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권한의 남용’과 ‘주체의 의사에 반함’이라는 표현을 별다른 고민없이 사전자기록에도 적용함으로써, 사전자기록에 있어 유형위조와 무형위조의 개념 및 그 구별에 대한 심각한 해석상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대의견도 이러한 권한남용이라는 요건을 위작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일종의 절충적 선택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러한 절충적 태도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권한의 남용이라는 개념을 사전자기록에서의 일정한 행태요건으로 사용하는 것은 형법 구성요건에 대한 해석의 방식으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전자기록위작죄의 보호법익의 내용과 그에 따른 전자기록 무형위조행위의 현실적 처벌 필요성에 대해서는 류 교수도 충분히 공감했다. 다만 “그것이 현재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위작’의 개념을 결정하는 해석상의 결론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류 교수는 “사전자기록위작·변작죄가 사문서위조·변조죄 및 행사죄 등의 체계연장선상에 규정되어 있고, 유형위조만을 한정하는 ‘위조’라는 용어와 ‘위작’의 관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현실적 처벌 필요성만으로 위작의 개념을 위조와 달리 설정해 처벌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제한을 받는 사법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는 한편, “공전자기록의 경우 공문서에 대한 무형위조를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위작의 개념에 무형위조를 포함하는 해석이 지지를 받을 여지가 있으나, 공전자기록에 대한 무형위조도 처벌 대상에 추가하는 입법적 조치를 해두어서, 사전자기록위작이 받는 위와 같은 원론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