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책연구원(원장 홍기태)과 한국민사소송법학회(회장 노태악 대법관),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정웅석 교수)가 지난 9월 3일, 민사전자소송 도입 10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으로 “전자소송 10년, 회고와 전망”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홍기태 원장은 “전자소송 도입 초기에는 법원 내외부에 일부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형사소송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재판 절차에서 전자소송이 시행되어 이제는 우리 법원의 새로운 ‘소송의 틀’로서 안정적으로 정착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전자소송의 기반인 정보통신기술은 그 발전 및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에, 지금까지의 전자소송 시스템이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장담할 수 없어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래의 사법 인프라를 구축할 전자소송 제도에 관하여 법원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 차세대 전자소송, “어렵고 까다로운 재판절차 개선하고 재판 접근성 혁신”
법원행정처 차세대 전자소송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유아람 부장판사는 기조발제를 통해 전자소송 추진경과, 차세대 전자소송 사업 현황 설명 및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전자소송이란 ‘종이 문서를 전자 문서로 대체하고, 절차 진행 과정에서 전산시스템을 활용하며, 변론을 온라인 방식(영상재판)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사법업무 전산화를 위한 타당성 조사’가 행해진 1979년을 시작으로 하여 1997년까지가 전산시스템 발전의 ‘초기 단계’, 1998년부터 2009년까지를 ‘확산‧발전 단계’. 2010년부터 2019년까지를 ‘고도화 단계’로 분류한다.
전자소송이 도입되기 전에는 기록제조를 위해 종이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어 노끈으로 편철하고, 500쪽마다 기록이 분리되며, 결재를 위해서는 자필서명과 인장 날인, 간인 또는 천공 등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또한 송달을 위해 서류를 봉투에 투입하고 주소를 기재하여 우편요금을 지불한 뒤 문건별 송달처리를 해야했다. 이러던 것이 전자소송이 도입된 뒤에는 자동으로 단일의 전자기록이 생성되고 보관을 위한 별도 조치가 필요하지 않게 됐으며, 비밀번호 통한 결재가 가능해졌다. 또한 무료인 이메일을 통해 송달버튼 클릭만으로 다건이 일괄송달된다. 이 같은 변화는 높은 대내외 만족도를 이끌어냈다는 게 유 단장의 설명이다.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는 전자소송 이용률이 급상승함은 물론, 법관과 실무관, 참여관의 업무부담도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확장으로 시스템의 복잡도가 심화되고 노후화로 인해 내외부 개선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 유 단장은 이러한 문제점에서 시작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의 추진 배경을 “①종이 기반 절차를 그대로 전자화한 복잡하고 노후화된 시스템의 전면 개편 필요, ②어렵고 까다로운 재판절차를 개선하고 재판 접근성 혁신, ③전자소송시스템의 주요 문제점 해결에 어려움 직면, ④급격한 사회변화와 기술진보에 대한 선제적 대응체계 마련”으로 설명했다.
사업의 추진은 ‘1차년도(분석)-2차년도(설계)-3차년도(개발)-4차년도(테스트‧전환)’의 단계로 진행된다. 현재 ‘분석’ 단계를 완료한 뒤 ‘설계’ 단계에 진입해 있다. ‘분석’ 단계에서 요구사항을 도출하고 UI(화면)를 확정한 것을 바탕으로 현행 ‘설계’ 단계에서 사용자 화면 및 보고서와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계를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개선 사항을 살펴보면, 국민의 사법서비스 이용이 절차 단계별로 “①사법정보 공개포털: 소 제기 전에 내 상황과 유사사건 판결문을 키워드 몇 개로 간편 검색 ②지능형 절차 안내: 인공지능 챗봇이 묻고 답하기 식으로 소송절차에 대해 24시간 응대 ③사법정보 공유센터: 법원이나 행정기관 방문, 서류 출력이나 스캔 필요 없이 클릭 몇 번으로 정보 연계 ④모바일 앱: 스마트폰으로 송달 문서 열람 ⑤영상재판: 집이나 사무실에서 영상법정에 접속하여 재판 ⑥사법통합민원포털: 현재 진행상태와 다음 재판일자 등을 한 번에 확인하고 자동 알람 기능” 등의 편리함을 확보하게 된다.
법원 입장에서 개선되는 사항은 “①기록 검토 측면: 기록뷰어 편의성 제고(분할화면, 서증 썸네일 제공), 사건파악에 최적화된 준비서면 양식 제공, 준비서면 중복 부분 확인 ②정보 검색 측면: 지능형 통합검색, 유사판결문 제시 학습모델, 종이서면 스캔 기록의 검색,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③문서 작성 측면: 통일감 있는 사용자 편의적 화면 제공 ④실수 방지 측면: 업무절차별 누락 방지 모니터링‧알림, 흠결사항 체크, 워크플로우(선후행 업무흐름 도식화) 제공 ⑤수작업‧중복작업 감축: 송달료 납부 자동화, 송달편의기능 강화, 전자제출 접수 문건 자동 분류, 종국 및 재배당‧이송의 일원화 처리, 일괄결재” 등이 있다.
■ “전자증거 증거조사 방식, 민소전자문서법에 맞춰 민사소송법과 동 규칙 개정해야”
성균관대 법전원 전휴재 교수는 “지난 10년간 민사전자소송의 성공적인 안착은 국내 지표 뿐 아니라 국제기구의 평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면서, 세계은행(World Bank)이 매년 발간하는 『기업환경평가보고서』(Doing Business)를 언급했다. 기업환경평가보고서에는 ‘계약분쟁해결’(Enforcing Contracts) 항목이 있어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의 민사사법절차의 신속성, 효율성, 투명성을 평가하는데, 2011년 5위였던 우리나라의 순위가 2012년 2위로 상승했고, 2017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9년도 평가에서는 1위를 차지한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세계은행은 우리나라의 이러한 순위 기록의 주된 원인으로, ‘전자소송 시행으로 인한 민사소송절차에서의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를 들었다.
전 교수는 “민사소송절차의 효율화, 투명화와 국민의 편익 증진이라는 목표 달성은 전자소송 이용률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연도별 사법연감의 통계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민사전자소송 개시 이듬해인 2012년에는 전자소송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전자소송 사건 수가 합의사건 17.9%, 단독사건 20.3%, 소액사건 46.0%였다가, 2016년에는 합의사건 67.3%, 단독사건 49.6%, 소액사건 69.5%로 대폭 상승했다. 2019년에는 합의사건 80.3%, 단독사건 87.2%, 소액사건 80.4%에 이르러, 모든 사물관할에서 전자소송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상회하게 됐다. 민사본안 사건 5건 중 적어도 4건은 전자소송시스템을 통해 접수, 처리되는 셈이다. 전 교수는 “실제 전자소송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전자소송을 이용하는 이유를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81.2%가 ‘소송서류의 접수 및 송달시간의 절약’을, 35.5%가 ‘소송비용의 절감’을, 25.7%가 ‘변론의 효율적 진행’을 그 이유로 지목했다”고 전했다.
전 교수는 전자소송 시행의 규범적 측면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전자소송이 이미 정착 단계에 들어서서 민사본안 사건 중 전자소송의 비율이 모든 사물관할에서 80%를 상회하고 있고, 앞으로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현 시점에서는 전자소송을 계속 특별법으로 규율할 것인지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자증거의 증거조사 방식에 관해서는 민사소송법과 민소전자문서법의 각 규정이 상호 저촉되는 부분이 있어, 어떤 법률을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실무상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하면서, “종이소송을 전제로 입법화된 민사소송법은 실제 소송 현실에 대한 규범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오히려 특별법인 민소전자문서법에 규정된 전자문서 제출, 전자적 송달, 전자기록화, 전자증거에 대한 증거조사 등이 민사소송의 표준이 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통일적 규율을 위해 민소전자문서법 규정의 취지에 맞추어 기본법인 민사소송법과 동 규칙을 개정함이 타당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전자증거 관련 민사소송법 개정과 관련하여서는 “△민소전자문서법에서 음성·영상 정보를 전자문서로 보아 증거조사를 서증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사소송법에서도 음성·영상 정보를 서증에 준하여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에 포함하도록 함이 적정하다는 점 △ 전자정보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기존의 증인신문, 감정, 서증, 검증, 당사자신문과는 독립된 장으로 전자증거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둘 필요가 있는 점 △우리나라 민사소송에서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가 자진하여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한 그 제출을 강제할 방법이 거의 없는데, 점점 증가하는 전자정보 관련 증거개시(e-discovery)에 대한 실효적 규율을 위해 2006년과 2015년, FRCP 개정을 통해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ESI, 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에 관한 내용을 추가한 미국 등 입법례를 우리도 참조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주장했다.
한편 현재는 민소전자문서법 제11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그에 준하는 자를 전자소송 의무이용자로 정하고 있다. 전 교수는 “컴퓨터 등 IT 기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을 갖추지 못한 당사자에게 전자문서 제출을 의무화한다면 이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이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지만, 소송서류의 접수와 송달, 기록의 조제 및 보관 등의 면에서 전자소송과 종이소송이 계속 병존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사법 비용의 증가를 초래하므로, 가능한 한 전자소송 의무이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이러한 불합리를 최소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미국, 싱가포르, 독일, 일본 모두 변호사에 대해서는 전자파일링을 의무화하거나 의무화하는 입법을 준비 중에 있는데, 우리도 우선적으로 법무법인, 법무법인(유한), 법무조합 등을 포함한 변호사에 대하여 전자소송 이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송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전자소송을 사용하기에 충분한 인적·물적 기반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금융기관이나 상장회사도 전자소송 의무이용자로 지정하여도 무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격영상재판은 유독 우리나라가 약세를 보인 부분이라는 게 전 교수의 견해다. 그는 “미국과 독일의 입법례에서는 당사자의 동의나 신청 여부와 무관하게 법원의 직권으로도 가상재판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 민사소송법은 변론기일에 있어 ‘교통의 불편 또는 그 밖의 사정으로 당사자가 법정에 직접 출석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는 때’에 ‘당사자의 신청이나 동의’가 있어야만 실시가 가능하도록 그 요건을 상당히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문제”라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이 불과 2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내에 민사재판의 전 과정을 가상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긴 하였지만, 변론기일 등의 영상재판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검토하여 보완하는 것은 과제”라고 했다.
전자소송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도입할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비교적 단순한 법률 자료 검색이나 당사자에 대한 소송절차 안내에 정도에 그치는 현 시점에서, 법률 인공지능 기술 활용에 대비한 제도를 정비한다는 것은 다소 이른 감은 있다”는 시각을 보이면서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가는 인공지능이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서치나 판결서 작성 보조, ODR(온라인분쟁해결) 등 소송 외의 분쟁해결 절차에 관여하거나 법관의 판단을 일부 대체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그 이전에 사법부의 인공지능 활용에 관해 원칙이 되는 규범 내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 “수사기관의 형사사법정보 집중 등 형사전자소송의 부정적 영향 방지할 제도 설계 필수”
정성민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는 “형사 전자소송 도입에 대해서는 실무적 필요성과 형사소송법의 이념의 실현이라는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에 대한 정보 집중과 그 남용 우려에 따른 부정적 측면이 상존하고 있다”면서 “형사 전자소송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도입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그 도입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전자소송의 부정적 영향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의 설계가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형사사건에서도 대부분의 서류는 컴퓨터로 작성되어 파일 형태로 보관되지만, 여전히 이를 출력한 종이기록을 원본 기록으로 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성에 큰 지장을 주고 있어 형사절차에도 전자소송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반면 개인정보보호와 수사기관에의 정보 집중 등을 이유로 형사 전자소송 도입에 신중을 기하자는 견해도 있다. 정 판사는 “형사 전자소송의 부작용 내지 위험성은 충분히 발생 가능한 것으로서 주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미 형사 전자소송을 도입한 독일에서도 이러한 위험을 막기 위한 제어 수단을 법률에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현행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은 수사기관이 형사사법정보를 총합하여 관리하고 있어 소위 ‘빅브라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정 판사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수사 과정에서 입수된 거의 모든 정보가 수사기관의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저장되고 있는데, 이 정보에는 피의자 외에 피해자·목격자 기타 참고인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고, 당해 수사의 목적인 피의사실과는 관련이 없으나 별건의 피의사실과 관련된 정보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는 “입수된 정보의 검색과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수적”이라며, “수사기관이 모든 전자기록을 대상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을 막고 사전에 선별한 개개의 기록에 대해서만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사 전자소송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형사사법정보의 집중·남용 문제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보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독일의 경우를 우리의 제도 설계 과정에도 참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에 따르면 법원에 기소되는 사건의 약 2/3는 약식절차(전자약식절차 포함)로 기소된다. 구약식되어 처리되는 사건이 구공판되어 처리되는 사건의 두 배인 셈이다. 이처럼 약식절차는 우리 형사사법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다른 전자소송의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함에도 전자약식사건의 비율이 답보상태인 이유는 전자약식 대상 사건이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 판사의 분석이다. 그는 “전자약식 대상 사건도 경찰의 전자약식절차에 대한 안내 및 동의 여부 확인에 따라 피의자가 동의하여야 전자약식절차로 처리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전자약식 처리에 대한 적극성 정도에 전자약식사건 비율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약식사건의 전자화를 확대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형사절차의 전자화를 크게 진전시킬 수 있고, 추후 공판사건에 전자소송을 도입하기도 쉬워지므로, 전자약식 대상 사건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자소송의 여러 성과 중 특히 ‘구술심리의 실질적 구현’을 첫째로 꼽으며 “사건기록이 전자화되고 법정도 컴퓨터·모니터·빔프로젝터·전자스크린 등을 구비한 전자법정으로 전환됨에 따라, 법정 내에서 재판부와 당사자가 함께 전자기록과 전자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 구술심리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며 “법정 내에서 법령·판례·문헌 등의 근거자료를 즉시 전자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 쟁점에 대한 토론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