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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법뉴스] 영국 대법원, “‘2010 평등법’과 기존 관련법 표현 달라도 입증책임 주체에 변화없다” 판시




영국 대법원이 새로 제정된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 2010, 이하 이 사건 법률’)의 입증책임에 관한 규정이 기존 평등 관련 법률인 1976년 인종관련법(Race Relations Act 1976, 이하 구법’)과 달리 표현되어 있다 하더라도, 입증책임 주체에 대한 실질적 변화는 없다고 판시했다(Royal Mail Group Ltd v Efobi [2021] UKSC 33). 또한 증거가 부재할 때 피청구인(고용주)에게 불리한 추정(adverse inference)을 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 사안에서 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고용심판소의 재량이라고 판시했다.

 

나이지리아 출생의 청구인(Efobi)은 피청구인 회사(Royal Mail)에서 우체부 업무에 종사하던 중 해당 회사의 관리직 혹은 기술직에 20111월부터 20152월까지 30번 이상 지원했으나 모두 불합격했다. 20156, 청구인은 불합격의 원인이 본인의 인종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차별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피청구인을 상대로 고용심판소(employment tribunal)에 소를 제기했다. 고용심판소는 청구인의 소송을 기각했고 청구인은 고용항소심판소(Employment Appeal Tribunal)에 항소했다.

 

고용항소심판소는 고용심판소가 이 사건 법률 제136조 제2항에서 규정한 입증책임에 대하여 잘못 해석하여 증거 판단에 있어 법적 오류를 범하였다고 판단하며 청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후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고용항소심판소 결정을 뒤집었고, 청구인은 해당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다. 사안의 쟁점은 법률의 변경으로 고용차별 사건에서 입증책임의 주체가 바뀌었는지 고용심판소가 잠재적 증거의 부재로 인하여 피청구인에게 불리한 추정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구법 등 관계 법률들은 이 사건 법률로 대체되면서 폐지됐고, 이 사건 법률은 차별 사건에 관한 2단계 심사를 도입했다. 1단계는, 해당 차별 대우에 대한 적절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인이 불법적인 차별행위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청구인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해당 청구는 기각되는 것이다. 다음 2단계는, 청구인이 불법적인 차별행위의 사실을 입증한 경우 입증책임은 피청구인(고용인)에게로 전환되는 것이다. , 피청구인이 스스로 청구인에게 그러한 대우를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인종(또는 차별행위로부터 보호되는 다른 특성)이 그러한 대우의 원인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차별 대우에 관한 입증책임에 대하여 구법 제54A2항은 청구인이 사실을 입증하는...경우(where...the complainant proves facts)”라고 규정하고 있었으나, 이 사건 법률 제136조 제2항에서는 1단계 심사와 관련하여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사실들이 있는 경우(if there are facts from which the court could decide)”라고 규정하여, 법률 문언상의 표현이 바뀌었다.

 

이를 두고 청구인은 이 사건 법률은 구법과 표현을 달리하므로 이 사건 법률에 따라 1단계에서는 청구인에게 입증책임이 없고, 단지 고용심판소가 제시된 모든 증거를 중립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해당 법률에서 표현이 바뀌었으나 입증책임에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구법이 적용되던 당시부터 고용심판소는 구법의 해석상 1단계 심사에서 제시된 모든 증거를 고려해야 한다고 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구법의 해석에 따르면 법률 문언의 표현이 바뀌었다고 해서 입증책임에 대하여 달리 본다고 해석하기는 어렵고, 다만 이 사건 법률은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뿐만 아니라 모든 증거를 1단계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명시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입증책임은 여전히 청구인에게 있다고 보았다. 이어 청구인이 개연성의 우위(balance of probabilities)의 기준에 따라 불법적인 차별 행위가 추정되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차별 대우에 해당하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청구인에게 있으며, 청구인에게 행한 대우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입증책임이 피청구인에게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한편 피청구인 회사는 고용심판소의 재판절차에서 청구인의 불합격을 다룬 실제 의사결정권자들을 아무도 소환하지 않았으며, 채용 과정과 일반적인 인사업무 진행에 익숙한 매니저 2명의 진술에만 의존했다. 이에 대해 청구인은 실제 의사결정권자를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아 이들로부터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고용심판소가 피청구인에 대해 합격자들은 청구인과 다른 인종 또는 민족이다, (2건을 제외하고 서류전형에서 탈락된 모든 사건에서) 청구인을 불합격시킨 채용담당자들이 심사 당시 청구인의 인종을 알고 있었다라는 불리한 추정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청구인의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고용심판소가 상식을 이용해 자유롭게 사건에 대한 추정을 하거나 그 추정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면서 특정한 증인의 부재로 인하여 한 당사자에게 불리한 추정을 할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증인이 실제로 증언을 할 수 있었는지 여부, 해당 증인이 제시할 수 있었던 증거 및 그 증거와 관련된 다른 증거, 사건 전체에서 해당 증거의 중요성을 포함한 관련 사안들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고용심판소가 피청구인에 대하여 불리한 추정을 하지 않은 것에 어떠한 법적 오류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설령 고용심판소가 그러한 추정을 했더라도, 채용담당자가 청구인의 인종을 알고 있었으며 실제 합격자가 청구인과 다른 인종이라는 사실 이외에 다른 설명이 부재한 상황에서, 청구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채용 결정에 대해 피청구인에게 입증책임이 없으며 고용심판소가 해당 청구를 기각한 것은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자료참조: 사법정책연구원 해외사법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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