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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법철학과 법이론 입문』 펴낸 김대휘 변호사, “사법(司法)은 개별 사례에서 ‘타협 가능한 작은 정의’를 제공한다”

작성일
2021.07.26
조회수
1025
내용



법철학과 법이론의 여러 문제를 개관할 수 있는 입문서가 나왔다. 판사와 변호사 경력의 실무가, 김대휘(법무법인() 화우) 변호사가 쓴 법철학과 법이론 입문(성안당 )이다.

 

법학 중에서도 법철학은 어렵고 복잡할 뿐 아니라 문헌도 무겁고 두꺼워서, 실무가는 물론 법이론가들도 쉽게 정복하지 못하는 분야다. 김대휘 변호사는 기초법학의 부재와 소외는 종래 법철학이 외국이론에 경도되고 우리 법실무와 유리된 데서 기인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법률가와 법학도 및 법에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법철학과 법이론의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그 해결에 다가갈 길을 열어주겠다는 목표 아래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탈고하기까지는 10개월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 기간 중 점심은 거의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직접 실감한 집필의 어려움을 산고에 비유하기도 했다. 집필 과정에서 문제의 논의 및 원고 검토에 큰 도움과 힘을 준 이인복 대법관에게는 특별한 감사를 표시했다.

 

2011년 서울가정법원장을 끝으로 28년의 법관생활을 마친 그는, 같은 해부터 지금까지 이화여대 법전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세종대 법학부 석좌교수로서도 법철학 강의를 해왔다. 이 책은 그가 강의를 위해 만든 강의안을 기본 뼈대로 하고, 그 위에 살을 붙인 것이다. 우리 학계보다 앞서 있는 외국 논의는 주요 표준서적들을 참고해 반영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내 문헌과 논의를 중시하여 우리 학계와 실무에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했다. 무엇보다 예증을 우리 판례로써 한 점은, 특히 법실무가들에게 큰 편의와 이해를 도모해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법학원은 지난 726,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법철학적 논변의 3요소를 통섭, 논리, 예술(격조)’이라고 서술한 그의 글처럼,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도 통섭과 논리, 격조의 3박자가 오롯이 나타났다.


아래는 김대휘 변호사와 나눈 문답.

 

Q. 법철학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또 실무가로서 연구를 어떻게 이어가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학부 재학 중인 1977년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연수원은 졸업 후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졸업 전까지 1년 이상 남은 기간 동안 김증한 교수님의 조교를 하며, 최종고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라드부르흐의 법철학이 나온 것을 접하고는 독일어 공부도 할겸 학교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 읽었다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심헌섭 교수님을 만나게 됐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심 교수님 지도 아래 법철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심 교수님은 제가 법실무가이니, 법학방법론을 해보라고 권유하시며 라렌쯔의 책(Methodenlehre)을 주셨습니다. 박사 학위도 방법론과 법이론 쪽으로 하게 되면서, 줄곧 저는 법철학보다는 법이론과 방법론에 관심을 두고서 우리 판례를 분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가이지만 틈틈이 문헌을 찾게 되는 노력을 할 수 있었고, 한국법철학회에도 가입하여 귀동냥을 하여 오기도 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이후부터는 학부와 대학원의 법철학 강의를 맡으면서 더 자연스레 지식과 경험의 재고가 쌓였습니다."

 

Q. 분석하신 판례 중에는, 자신의 과실로 타인의 물건(사과나무)을 소훼한 경우, 형법 제170조 제2항을 근거로 하여 실화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다룬 대법원 1994. 12. 20. 선고, 9432 전원합의체 결정이 유명합니다. 판사 재직 시절에 실무가로서 논쟁에 참여하시어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실화결정으로, 대법원 해석을 두고 방법론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관련 조문을 전체적종합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취했고, 그 해석이 법규정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금지되는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위 결정에 대하여는 편집오류의 수정이라고 찬성하거나, “법률수정이라고 반대하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법해석의 목표는 입법자의 규범 목적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해석 결과인 법리를 도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그 입법자의 의사나 표현에 오류가 있거나 그것이 명백하지 않는 경우, 결국 해석자가 규범 목적과 법리를 확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합일이론입니다.

대법원의 해석은 체계적 해석의 방법에 의한 평가모순의 금지에 따른 것이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Q. 외국에서도 실무가와 학자의 논쟁이 불붙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법과 도덕에 대한 하트 교수와 데블린 판사의 논쟁이 국내에도 시사점을 줄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편집자 주.

동성애의 비범죄화와 매춘 처벌 규정을 둘러싸고 하트 교수와 데블린 판사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하트는 밀의 해악의 원리를 지지하며 사회적 해악이 아닌 경우 도덕적 훈육을 위해 법이 간섭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데블린 판사는 도덕이나 윤리 등에 대한 공통적 관념 없이 사회는 존재하지 못하며, 이는 사회를 통합시킨다고 주장했다. <법철학과 법이론 입문102p 참조>

 

"도덕이든 법이념이든 법질서에의 수용이 선험적으로 결정되거나 정당화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법과 도덕의 완전한 분리는 있을 수 없고,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라드부르흐는 법과 도덕이 긴장 관계에 있지만 법의 목적은 도덕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덕은 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나아가 도덕주의, 즉 도덕의 극대화나 전면화의 요청은 전체주의의 특징이며, 자기모순에 빠진 지배자를 보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행위가 반도덕적이라는 이유로 형사상 범죄가 되고 처벌되는 것은 도덕 과잉입니다. 도덕의 문제를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처벌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본권의 제한이나 침해를 야기합니다. 이 경우, 정책 결정자 내지 입법자가 그 해악의 존재와 처벌 필요성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 도덕의 법화와 같은 것은 법정책의 문제이므로, 정책 결정자가 그 해악의 정도뿐만 아니라 국민의식과 시대정신을 잘 살펴서 결정해야 합니다. "

Q. 심헌섭 교수님께서 주창하시고 교수님께서 견지하시는 비판적 법실증주의란 어떤 이론인가요.

 

"오늘날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은 수렴 접근하는 경향에 있습니다. 법실증주의는 신의 전능을 지상의 입법자에 이전시킨 법률적 신학이었고, 법의 법이념에의 지향을 포기합니다. 자연법론은 그 방향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보수적 기능과 혁명적 기능을 함께 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양 이론은 무엇이 정의인지, 정법인지를 달리 보는데, 어느 하나만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수렴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비판적 법실증주의의 단초는, “정의 이념은 심각한 부정의를 인식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명백하게 옳지 않는 것에 대한 배제적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부정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일치의 가능성은 대부분 더 클 것이란 생각에 기초합니다. 다만 명백히 부정의한 것에 대한 합의가 있는 곳에서만 그 배제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정법이 승인하는 법원리인 신의칙 등과 같은 것이 법내재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합니다.

, 헌법원리 등의 법원리(法原理: legal principle)가 부정의에 대한 비판적 규준이 되고, 법원리가 실정법 해석의 엄격성 및 형식성에서 비롯되는 현저히 부당한 결과를 시정하는 비판적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널리 법해석의 범주에 포함되고, 이러한 법해석은 넓은 의미에서의 규범통제에 해당하는데, 규범통제에서 법원리는 상위법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법실무에서 실제 이루어지고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비판적 법실증주의에 부합하는 측면입니다."

 

Q. ‘정의는 법학과 법철학의 핵심 화두이기도 하지만, 일반 국민 대다수가 추구하는 이상이기도 합니다. ‘정의개념은 어떻게 인식하는 게 좋을지.

 

"역사적으로 그 시대의 정의관에 따라 다양한 정의 기준이 있어 왔고, 정의는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다양한 세계관이 경합되는 자유주의적 입헌국가에서, 규율문제에 대해 불변적이고 유일하게 정당한 해결책이 되어줄 정의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예컨대 빈 라덴은 서방세계에 의해 불의한 테러범으로 처단되었지만, 지구 다른 쪽에서는 정의로운 순교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의부정론내지 비판론, 정치의 영역에서나 국민들이 기대하는 정의라는 것은 거대담론이며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존 상태를 지키려는 세력이든 이것을 바꾸려는 개혁주의 진영이든, 모두가 정의라는 명분을 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법(司法)은 개별 사례에서 타협 가능한 작은 정의를 제공할 뿐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과도하게도 사법이 진정한 정의의 수호자이길 기대합니다. 사법의 오류나 무지, 태만의 결과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사법에 대하여 국민들이 갖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불가피합니다. 인간이 만들고 적용하는 법률은 눈에 띄는 정의를 드물게 제시할 뿐이므로, 단지 일정한 관용의 한도 내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성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법률가들이 정의에의 의지를 가지고 이러한 괴리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편집자 주.

저자는 라드부르흐의 법이념의 3요소인 정의, 법적 안정성, 합목적성정당성, 안정성, 효율성으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했다. ‘정의정당성으로 치환한 것은 위 답변과 같이 사법은 개별 사례에서 타협 가능한 작은 정의를 제공할 뿐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법철학과 법이론 입문89p 참조> / 저자가 주장하는 비판적 법실증주의에서 나온 비판적 정의론(소극적 정의론)’은 절대적인 정당성은 없고 무엇이 정의인지는 합의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심각하게 부정의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 합의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 착안하여 주장된 이론이다. <법철학과 법이론 입문144p 참조>

 

Q. ‘정의란 무엇인가란 문제만큼 어려운 게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법 개념 문제인 것 같습니다. 책에서 국제법이나 관습법까지 포괄하는 법 개념을 찾기는 어렵다고 서술하신 부분은 오늘날 국제법의 중요성에 비추어 특히 주목됩니다.

 

"법 개념의 정의, 특히 주류적인 법명령설은 기본적으로 국내법에 관한 것이고, 국제법은 아직 생성 중의 법이자 국내법에 유사한 법 (law by analogy)’입니다. 국제법은 입법기관이나 집행기관이 없고 구속력이 국내법과 같지 않기 때문에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트는 국제법과 국내법은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유사점이 있고, 특히 내용의 유사성이라는 점에서 국제법만큼 국내법에 가까운 사회적 규칙은 다른 곳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제법도 국제평화나 정의와 같은 법이념을 지향하는 것이고, 국제규약이나 조약 등 실정법이 있으며, 단지 국가적 강제 등이 없지만 그에 유사한 제재가 동원될 수 있기에 국제법도 널리 법의 3차원적 관계 개념(법이념, 실정법, 법현실)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습법의 경우 그 생성이나 성립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주권자의 명령이 아니지만, 법관의 확인과 승인으로 법이 될 수 있는 판례법의 형태로 국가법에 편입되는 것이므로, 법명령설에 간접적으로 포섭될 수는 있습니다."

 

Q. 법관과 사법부가 사법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한 변호사님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법관이 좋은 재판을 해야 사법 신뢰가 회복되고 우리나라의 공기가 맑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재판을 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법관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좋은 법관이 되는 것은 법관 각자의 의식과 각성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에 대한 법률가들의 의지를 중시하는 주관적 정의론은 그러한 의지 또는 자세의 척도이자 규율로서 직업윤리의 문제를 직시하고, 법관 재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사법부는 법관 교육이나 재교육을 하여 좋은 재판을 뒷받침하고, 법관들은 행위 전범(典範)을 내면화하면서 수단적 이념인 재판의 독립을 지키고자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더욱이 입법은 불완전하고 불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관이 법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사법적 정의와 사안의 적정한 해결을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이 요구됩니다.

재판업무에서는 최고법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법관은 바람직한 법관상이나 법원의 역할에 관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대법원장이 외풍을 막기 위한 성명을 발표하거나 법관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등으로 해야할 일도 있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경우 헌법재판관의 비정치적 임명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따라서 과도한 헌법화를 막고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최고법원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며, 헌재가 고립된 섬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대법원과 헌재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대법원에 부를 두어(헌법부, 민사부, 형사부, 행정부 등) 전문화하면서, ‘헌법부가 선거소송을 포함한 헌재 관할 사항을 다루되, 관할이 중복되거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의 경우에는 대법원장 또는 통합기관의 장이 공동부를 구성해 판결하도록 하는 제도를 두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개헌 사항입니다."

 

Q. 많은 말씀 나눠보았지만, 법철학의 여러 화두는 생각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도 또는 법률가들에게 법철학의 기본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요청되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드워킨은 어려운 법적 문제에 대하여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말했지만,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 때문에 그 정답 내지 정법(正法)을 찾지 못하거나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올리버 윈델 홈스 대법관도, 나치 단종법의 선구라고 할 루이지애나주의 단종법 (sterilization law)에 대한 합헌결정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드케이스에는 정답이 잘 보이지 않거나 다양한 해결 제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관 등 권한 있는 국가기관, 즉 최종적으로는 최고법원에 결정을 위탁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 결정자들에게 윤리적이고 지적인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고, 이 점이 앞서 언급한 주관적 정의론의 단초입니다. 법률가들에게 법철학의 기본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요청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법관 모두가 드워킨이 말하는 정치철학자에 준하는 초인 헤라클레스가 되기는 어렵지만, 법관을 포함한 법률가들이 그러한 노력은 해야 하고, 이를 통해 인식이나 판단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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