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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정인진 변호사…그가 전하는 우리 사법의 적나라한 풍경

작성일
2021.10.21
조회수
980
내용




지난 4월 출간된 법 분야 대중서,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가 오랜 기간 서점사이트 분야별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책의 저자는 1980년 임관하여 24년간 법관을 하다가, 현재는 변호사 18년차를 지나는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책에서 그는 오늘날 사법 불신의 원인과 법원 개혁에 대한 소신을 정제되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담담히 써내려 간다. 또한 변호사로서 직접 겪은 법조계 내부 문제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마저 솔직하게 토로하며, 우리 사법의 우울하고 적나라한 풍경을 그린다.

한국법학원이 지난 1021, 정인진 변호사를 직접 만나 그의 생각과 책에 대한 한층 깊은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Q. 책의 서문을 나는 실패한 법관이었다고 시작하신 것이 인상깊습니다. “열정만 앞섰다”, “끔찍했다등의 표현으로 판사 생활을 회고하신 부분도 주목되는데요. 그렇게 말씀하신 구체적인 배경이나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법관으로 임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 늘 과로해야 했고, 사생활에서도 행동거지에 극도로 조심해야 했습니다. 공무원은 다들 그렇지만 급여가 많지 않아 살림에도 여유가 없었고, 계속 지방으로 전근을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건 하나하나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게 몹시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장 당직을 맡아 밤에 판사실에 혼자 앉아 구속 여부를 결정할 때면 마음 고생이 심했지요. 그런 걸 끝까지 해 내야 하는데, 세월이 갈수록 제 자신이 소진되어 간다는 느낌과 압박감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피로감이 가중되면서 더는 이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느낌, 더 이상 해 낼 수 없다는 느낌이 커졌습니다.

믿었던 선배들과 쟁쟁한 후배들이 자꾸들 느닷없이 개업하는 현실에도 놀랐습니다. 저런 이들마저 법원을 나가는데, 내가 무슨 재주로 더 해 나갈 것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잘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열정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능력이 모자랐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저는 재판에 자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성의를 다하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남이 재판하는 것을 보니, 제 자신도 심리에서든 결론에서든 당사자가 바라는 제대로 된 재판을 한 것은 아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모든 사정을 한마디로 표현한 게 그 실패라는 단어입니다. 비유하자면, 서투른 화가가 대작을 그리려다가 재주도 여건도 안 되어 화폭을 치워 버린 겁니다.”

 

Q. 책에서 소송에서 법과 판례는 불완전한 도구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여쭙고 싶습니다.

 

“‘법령으로 범위를 좁혀 말씀 드리겠습니다. 법령은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너무 세세하게 규정하면 나중에 구체적 현실에 적용할 때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으로만 규정하면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라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법령집을 보면 분량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걸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아 소송이 걸리는 것입니다.

판례는 그런 불완전성에 대한 일종의 교정책입니다. 규정을 문언 그대로 적용해서 결과가 이상하면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규정이 추상적이면 해당 사건의 유형에서 세세한 기준을 세우고, 현실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규율할 법령이 없으면 부득이 해당 분쟁에서나마 입법에 가까운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판례는 구체적 사건이 있어야만 나옵니다. 모든 문제에 다 판례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욱이 판례는 판사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나오는데, 그 세계관이 완전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러니 법령이나 판례가 사건을 심리하고 결론을 내는 도구로서 완전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번은 어느 대학교의 골프학과에서 학생들이 학습용으로 사용하는 골프연습장을 어느 사업자가 수용해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전에 대학교로부터 골프연습장을 임차해서 영업을 하면서 약정된 임대차보증금이나 임대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연습장 내에 무단으로 건물을 신축하는 등으로 여러 가지 애를 먹이기에, 대학교가 두 차례의 소송 끝에 내 보냈던 사람입니다.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몰라도 그가 사업자로서 골프연습장에 대한 수용재결을 받아 냈습니다. 대학교가 토지수용위원회와 지방법원, 고등법원을 돌며 골프연습장을 되찾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제가 그 상고 사건을 맡았는데, 법령과 판례를 아무리 찾아도 수용위 재결이 위법하다고 할 만한 사유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불완전한 겁니다.

이 수상하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사건을 놓고, 소설 쓰듯이 상고이유서를 썼습니다. “이렇게 남의 재산을 빼앗아도 되는 겁니까?”가 요점이었습니다. 다행히 대법원에서 최초로 수용권 남용을 이유로 수용재결을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해 주어 구제를 받기는 했습니다. 법령이란 그런 것이고 판례도 그런 것입니다.”

 

Q. 책에서 판결이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면, 판결이 정당성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신 부분이 명쾌하게 다가옵니다. 국민을 설득하고 신뢰를 받는 판결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건의 유형에 따라 사법에 대한 신뢰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먼저 정치적 의미를 띠거나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현재 극심한 진영 논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사건에서는 무슨 판결을 해도 반드시 한쪽에서는 비난하고 나섭니다. 이 경우에는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하여 실망할 것도 없고 그걸 굳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판사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공명심을 버려야 하고, 혹시라도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나 성향에 따라 판결해서는 안 됩니다. 치우치지 않고 또 치우쳐 보이지 않도록, 선례나 보편적 견해가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이것이 신뢰를 얻는 길입니다.

 

그런데 법원에 오는 사건 중 대다수는 정치적 성격을 띤 게 아닙니다. 이런 사건들에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판결입니다. 드물기는 하나, 어떤 판사를 보면 멀쩡히 법이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이상하게 원님재판 하듯 판결을 내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보다 많이 보는 예는 원님재판과는 방향이 다른데, 잘못되어 있거나 어딘가 부족한 법령이나 판례를 맹종해서 결과가 부당하거나 이상한 결론을 내리는 것, 또는 법령이나 판례를 잘못 해석해서 답답한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는 심리방식입니다. 예단을 내려 자기 생각대로만 재판을 진행하거나, 당사자 쌍방을 공평하게 대우하지 않거나, 증거신청 등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 행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판사의 아만(我慢)에서 비롯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신뢰받는 판결이란 방금 이야기한 것과는 반대로,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고, 절차적으로 만족감을 주면서 내려진 판결입니다.

 

판결의 설득력도 판결에 대한 신뢰와 같은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덧붙이자면, 판결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유를 제대로 갖추어야 합니다. 판결의 전체적 체제를 갖추느라고 뭐라고 잔뜩 써 놓았지만, 정작 당사자가 궁금해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서너 줄 쓰고 만다든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거나 아예 판단을 하지 않아서는 곤란합니다.

또한 변호사들은 요즘의 판결들에 대해 이런 불만을 표시합니다. 판결에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쉽게 생각해서 결론을 내리거나, 판결이유를 구성하기 어려운 쪽을 피해 결론을 내린다고 의심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일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기록을 제대로 읽지 않고 내렸구나 싶은 판결들이 자꾸 눈에 띕니다.”

 

Q. 책에서 법대에 앉아서는 법의 한계와 그 너머 세계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변호사가 되어서야 법과 법원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고백의 의미를 여쭙고 싶습니다. 법대 위에서의 판단 또는 시각과 법대 아래서의 판단 또는 시각이 크게 달라진 대표적인 예를 들어주신다면.

 

질문의 범위를 좁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법원에 기소된 형사사건은 2020년에 150만 건을 넘었는데, 그 중 항소심 기준으로 무죄판결이 선고된 비율은 2% 미만이었습니다. 무죄 비율이 매년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기소된 50건 중 1건도 무죄판결이 선고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적정한 재판 결과인지 의문이 있지만, 과거 제 자신도 판사로서 실제 사건을 처리할 때 대부분의 사건에서 유죄의 심증을 세우는 데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를 하다가, 섬찟한 경험을 했습니다.

형법의 죄수론(罪數論)에는 포괄일죄와 경합범의 구별이 있습니다. 행위가 어느 쪽으로 평가받아야 피고인에게 유리한지는 죄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를 수 있지만, 뇌물죄에서는 수뢰액이 5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3천만원 이상 5천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한 번은 2천만 원, 다른 한 번은 3천만 원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이것이 포괄일죄로 평가되어 1개의 죄로 기소되어 처벌받으면 법정형이 최저 7년이고, 경합범으로 평가되어 2개의 죄로 처벌받으면 법정형이 최저 5년이 됩니다. 전자의 경우 작량감경을 해도 36개월이 되어 집행유예를 받는 것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후자의 경우 작량감경을 하면 26개월이 되어 죄질에 따라서는 집행유예도 가능합니다.

제가 개업한 지 몇 달 안 되어 변호를 맡은 사건의 피고인이 한 번은 2천만 원, 다른 한 번은 3천만 원을 받은 경합범으로 기소되어 있었습니다. 뇌물죄는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진술 말고는 별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여러 차례 읽다 보니, 혹시 한꺼번에 5천만 원을 받았는데도 기소가 잘못된 것이거나 아니면 봐줘서 그리 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물었더니 공소장 내용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수사관이라도 된 듯 예리하게 이런 저런 사정을 지적하였더니, 피고인이 진술을 바꿨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는데, 결국은 수긍이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록을 다시 읽어 보니 피고인의 진술 번복 동기를 뒷받침하는 희미한, 그야말로 희미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검사가 한꺼번에 5천만 원을 받았다는 피고인의 경찰 최초 진술(처음엔 죄가 하나라고 하면 처벌이 가벼워질 것으로 믿어 그렇게 거짓으로 진술한 것입니다. 이 진술이 담긴 피의자신문조서가 기록엔 없었습니다.)이 진실이라고 믿어 그렇게 조사하고 그렇게 기록을 꾸며 기소했을 경우를 가정하고 내가 담당판사라면 어떻게 판결했을까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공소장대로 판결을 했을 터였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생사람 잡는 판결입니다. 소송법적으로는 증거판단의 문제인데, 법대 위와 아래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그 후 고소인과 피고소인으로부터 두루 사건을 맡아 수사기관의 수사실무를 접하면서, 이런 식으로 자기 위치에 따라 시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과 그것이 사건의 처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문제는 비슷한 일이 형사, 민사 등 유형을 불문하고 수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또 판사는 어떤 판례를 찾으면 대개 거기에 따라 심리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변호사를 하게 되면 의뢰받은 사건을 어떻게 해서든 성공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하니까, 일견 안 될 것으로 보이는 사건도 계속 궁리를 하고 기존의 판례가 가지는 정당성에 관해 깊게 의문을 가지고 검토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해의 구제를 바라는 의뢰인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다 보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즉 법현실에 눈뜨게 되고, 헌법이나 행정법에 관한 시각도 예리해지고 비판적으로 변해 감을 느끼게 됩니다.”

 

Q. 사법에 대한 불신이 부쩍 높아진 요즘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하신, 변호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본래 의미의 사법개혁이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법개혁은 사법이 제도나 운영 면에서 국민들에게 만족을 줄 만큼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제도나 운영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도에 관해서는 여러 책이나 논문에 많이 언급되어 있으니, 이 자리에서는 운영의 면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국민이라는 말에 주목해 봅니다. 법원은 국민을 위해 만든 겁니다. 판사를 위해 만든 게 아닙니다. 판사가 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위임받은 것이지요. 판사가 받는 월급도 국민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판사는 공복(公僕)으로서 국민을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겁니다. 법정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법정에 사건을 들고 나타난 당사자입니다.

사실 이 점만 제대로 인식해도 사법개혁은 거의 다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국의 법관윤리에 관해 연구해 본 일이 있는데, 심리를 종결한 후 12년이 지나서야 판결을 선고한 예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법정의 주인이고 판사는 공복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실은 미국에서의 사법개혁 운동도 우리와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다음으로 만족감이라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판결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 즉 심리에서의 절차적 만족감입니다. 재판에서 이기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승패 여하와는 별개로 당사자가 바라는 것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내고 싶은 증거를 다 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결론에서의 만족감입니다. 저는 당사자가 판결의 법리에 불복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불만을 표시하긴 해도 결국 이해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인정이 잘못된 판결에 승복하는 당사자는 없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사실 인정이란 말을, 사실에 대한 법률적 평가(법률행위해석)까지 포함하는 뜻으로 씁니다. 실제로 둘은 떼어내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당사자는 자기들끼리 벌어졌던 분쟁의 진실을 압니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내리는 결론이 문제입니다.

 

그런 걸 제대로 하는 게 무슨 개혁이냐, 당연하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 게 사법현실입니다. 우선 사법자원을 대폭 확충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법정의 민주화에 대한 의식을 확실하게 새기고 판사의 자질과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Q. 사법에 대한 변호사님의 믿음을 잃지 않게 해준 귀중한 사례로, 종립학교인 대광고 학생 강의석 사건을 맡은 경험을 소개하셨습니다. 책에서 대법관들이 고등법원 판결의 형식주의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하셨는데, 이와 관련지어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면?

 

강의석 사건에서 특이한 점은 제1심 판결과 항소심 판결의 사실 인정이 거의 같고 그 인정된 사실 중 원고에게 불리한 부분과 유리한 부분이 모두 적시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개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면 거기에 배치되는 증거는 모두 배척하고, 그 증거로 인정될 수 있었던 사실은 이유 중에 나타나지 않게 되는데, 이 사건에선 달랐습니다. 대법원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은 각각 원심 법원의 인정 사실 중 자기 결론에 맞는 부분의 사실을 떼내서 적시하고 그에 따른 법리를 판시하여 결론을 낸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학내의 종교교육이나 종교행사에 강의석이 참석하거나 참여한 것이 그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이냐 아니면 실질적으로 강제적 성격을 띤 것이었느냐였습니다. 이리 볼 수도 있고 저리 볼 수도 있는데, 학교라는 환경에서 미성년의 학생이 놓인 입장이나 처지가 어떠했는지 파악하여 이것을 고려할지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제가 책에서 말한 형식주의(formalism)’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건을 하다 보면 판사가 제대로 보아야 할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읽어내지 못할 때가 가장 답답합니다. 예를 들어 녹음테이프를 들어 보고 계약서를 읽어 보니 부드러운 목소리와 깔끔한 문안으로 되어 있어 정상적으로 체결된 것으로 인정할 만한 계약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만 보면 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계약 체결 현장을 찍은 동영상을 보니 테이블 위에 회칼이 죽 놓여 있고, 당사자 뒤에 깍두기 머리를 한 험상궂은 젊은이들이 팔짱을 끼고 서 있다면, 그 계약이 정상적으로 체결되었는지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극단적 예지만, 힘이나 지위의 불균형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의 성격과 배경 등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정의나 형평을 찾아가기 어려운 사건은 많습니다. 꼭 약자를 도와 달라는 상투적 요구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각종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는 분쟁에서 그야말로 실체적인 진실은 무엇이고 그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한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아 달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의 흑백통합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사건 판결도 미국 사회에서 미성년의 흑인 학생이 처한 입장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면서, 분리교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배척하여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세계관에 따른 판결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판결 중에는 형식적 판단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종종 있습니다. 판결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데도, 법원은 뭐가 잘못되었느냐며 고개를 외로 꼬고 있는 겁니다.

강의석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다수의견을 제 나름대로 보면, 형식주의를 뛰어넘어 실체적 진실을 보았던 아주 좋은 선례입니다.”

 

Q. 반대로 사법에 대한 변호사님의 믿음을 크게 저버린 사건을 경험하신 적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법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한 판결을 말하자면, 여럿 있습니다. 법령의 형식적 해석으로 정의롭지 못한 결론을 낸 판결, 법률행위해석에서 법은 그만두고라도 상식상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결론을 낸 판결, 판사가 예단을 가지고 아예 증거신청을 받아주지 않아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소한 판결, 기록을 제대로 읽어보고 쓴 것일까 싶은 판결…… 다양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Q. “법관은 법관직에 대한 존숭 때문에 아만과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고백하시면서, “법원은 검사, 변호사, 법무사, 법무관, 법학 교수 등 법률 사무와 법학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법 운영에 관해 사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 법률가들의 빅텐트인 한국법학원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

 

사실 책에 그렇게 쓰면서도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법률가들이 소통하고 토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기회나 공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논문이나 책을 펴내거나 읽어서 내 생각을 밝히고 남의 생각을 아는 것이 일차적인 경로이겠습니다만, 서로 대면하거나 아니면 비대면으로라도 토의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일정한 통로나 장()을 가지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법학원은 판사, 검사, 변호사, 군법무관 등의 실무가와 법학 교수를 모두 회원으로 가지고 있는 큰 법률가 단체이고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하고 강좌를 개설 운영하며 간행물을 발간하고 있으니, 안성맞춤입니다.

법원이 한국법학원의 도움을 받거나 한국법학원과 협조하면 사법운영에 관해 법률 실무가와 학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통로를 얻을 것 같습니다. 한번 이 문제에 관련한 주제를 놓고 심포지엄을 가질 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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